성경주석강해/복음서

마태복음(Matthew) 안식일의 주인(마12:1-14)

은바리라이프 2008. 7. 10. 18:11

마태복음(Matthew) 안식일의 주인(마12:1-14)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휴일로 삼고 일을 멈추는 날로 1주간 중 제 7일째에 해당하는 날(출20:8-11, 신5:12-15). 안식일은 금요일 오후 해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이다. 안식일은 휴식만이 아니고 성일로 지켰다(왕하4:23).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서 안식일을 지키셨다. 그러나 평일에 한 것처럼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또 그들의 질병을 고치기도 하셨다. 따라서 바리새인들과 회당의 관원들은 종종 안식일에 선을 행한다고 그리스도를 비난하였다. 안식일에 밀 이삭을 따도록 그의 제자들을 허락한 이유를 추궁 당할 때,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의 행위를 다윗이 자신과 그의 신하들이 시장할 때에 하나님의 전에서 행하였던 일과 비교하셨다(삼상21:1-6). 이와 같이하여 그리스도는, 비록 그것이 어느 정도의 일을 내포한다 할지라도 안식일에 필요하다면 일을 하는 것이 옳음을 암시하셨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이해하는데 반대했다(마12:7, 막2:27, 요5:10).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주님의 부활이 일요일이었다는 데서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초대교인들이 지킴으로 비롯되었으며 이날이 바로 주일(성일) 이다(계1:10).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39가지 안식일 금법은 육체적 노동과 관련 있는 조항들이었다.
1. 씨뿌리지 말 것    2. 밭 갈지 말 것    3. 곡식 단을 묶지 말 것   4. 곡식을 거두지 말 것   5. 곡식을 타작하지 말 것
6. 곡식을 까불지 말 것    7.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들지 말 것   8. 곡식을 찌지 말 것    9. 채질하지 말 것    10. 반죽하지 말 것 
11. 굽지 말 것     12. 털 깍지 말 것    13. 빨래하지 말 것   14. 때리지 말 것   15. 염색하지 말 것
16. 실 짜지 말 것   17. 밧 줄 끌지 말 것   18. 두 끈 만들지 말 것     19. 두실 을 짜지 말 것  20. 두실 을 가르지 말 것
21. 매듭을 짖지 말 것    22. 매듭(끈)을 풀지 말 것    23. 바늘로 두번 깁지 말 것   24. 두뜸을 깁기 위해 찢지 말 것  
25. 사슴을 잡지 말 것   26. 죽이지 말 것   27. 껍질을 베끼지 말 것    28. 소금 치지 말  것   29. 그 가죽을 만들지 말 것
30. 머리털을 밀지 말 것   31. 그 것을 깍지 말 것    32. 두 글자를 쓰지 말 것    33. 두 글자를 쓰기 위해 지우지 말 것
34. 집 짓지 말 것   35. 헐지 말 것    36.망치로 납작하게 때리지 말 것    37. 불을 끄지 말 것     38. 불을 켜지 말 것
39.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물건을 옮기지 말 것 

12:1-8 안식일의 주인 예수
시장하여라는 포함하여 마태안식일에 "추수함"으로써 율법을 범하게 된 것은 필요에 의해서였지
도발적인 욕구에 의해서가 아님을 강조했다. 바리세인들도 익히 알만한 다윗의 일을 말함으로
그들이 안식일만을 논하는 어리석음을 꾸짖으셨다. 구약의 사무엘상 21:1-6절의 기록된 사건을
말씀하신 것이 틀림없다. 마태복음 9:13에서도 인용하신 호세아 6:6을 상기하면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하셨다. 마태가 아는 대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막2:27).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독자들의 눈을 집중시키고 있다.
8절 만일 다윗이 율법을 "범할"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다윗보다 더 크신 메시야 자신은 더욱
그러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결코 율법아래에 있지 아니함을 말하고 있다.
헬라어 시장하여 ejpeivnasan(에페이나산)는 시작을 뜻하는 단순과거이다.
따라서 [시장하게 되었다]가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마태복음, 누가복음에는 이것이 생략되었다.

12:9-21 안식의 참된 의미
10절 이 사건에 대해서는 마태보다는 누가가 더 자세히 전하고 있다(눅6:7을 보라).
안식일이라고 해도 생명이 위급한 상태이면 고쳐주는 것이 합법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기다렸다 안식일 이후에 고쳐주는 것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과도 무관하고, 자신을
송사 하려고 말했던 그 사람의 손마른 병을 고쳐주셨다.
12절 더 귀하냐 diafevrei(디아페레이) 율법에 얽매이기보다는 한 사람의 구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뜻.
20절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목숨에 관계된 일 뿐만 아니라 작은 일일 지라도 그것을 고쳐주시는
하나님임을 알도록 했다.
상한 갈대 suntetrimmevnon(숨테트림메논) 꺽어진 갈대를 뜻하며 여기서는 마귀에게 짓밟힌 마음을
뜻한다. 꺼져가는 심지 또는 tufovmenon(연기나는 삼대) (투훼메논) 불이 거의다 꺼진 심지나 삼대가
타고 있는 것을 뜻하며 여기서는 실오라기 같은, 거의 소망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21절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달 될 수 있다는 뜻을
밝히시고 아울러 이루리라는 말로 복음이 이스라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을
말씀하셨다(고전2:7, 롬11:25).
참고 :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39가지 안식일 금법은 육체적 노동과 관련 있는 조항들이 있다.

12:22-37 성령 훼방 죄
바리세인들은 초자연적인 역사를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예수가 메시야임을 고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그들의 비상한 그들의 학문에 비추어 졸렬한
억지 주장을 펴게된다. 그만큼 예수의 초자연적인 이적에 대해서 설명할 길이 없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가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놀라 말하는데 바리세인은 이것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라는 말로 방해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이라는 말씀으로 대응하셨다. 스스로 멸망할 일을
사단이라고 하겠느냐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바알세불과 사단을 동일체로 간주하고 계신다. 유대
문헌에서는 [귀신의 왕]에 대한 명칭들이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이들의 이러한 방해에 대해서 31, 32절에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은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무서운 죄가 된다.
오는 mevllont(멜론티) '...하려고 하다, ...할 것이다'의 뜻이 있는 이 단어는 현재의 세상에
만족을 얻으려고만 하고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뿐만이 아닌
오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36, 41, 42절 심판 krivsei(크리신) 결정, 재판의 뜻으로 그리스도는 심판 주(요9:39)로 오신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한 자(요12:42), 산자와 죽은 자(딤후4:1), 의인과 악인(전3:17)모두
심판을 받는다.

12:38-45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
34절에서와 같은 꾸중을 들은 이들은 비아냥거리며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고 있다.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진정한 표적은 오직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부활하시게될 그 사건인 것이다. 바리세인들이 예수를 받아들일 필수 조건으로서 요구한 표적은 귀신을 내어쫓는 일과 병고치는 일이 아닌 필시 어떤 다른 표적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들의 이러한 요구에 일일이 응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이러한 표적을 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43절 물 없는 곳으로 사막이나 광야를 가리키는데, 이곳은 귀신이 사는 곳으로 믿어졌다.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내보내는 것이나(레16:10), 예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은 것
(마4:1-11)도 관계가 있다.

12:46-50 예수 가족의 방문
마태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의 가족이 왔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이 악한 세대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응답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마가마가복음 3:21에서 그들이 온 목적에 대해서 밝히고 있으나 마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