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낯을 뵙지 못하리니 |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에덴을 떠난 이후 인류의 역사는 자꾸만 나쁜 쪽으로 전개되어 왔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주목하시고 힘들 때에 도우시며 위태로울 때에 구하셨으나 그들의 역사는 멸망과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리고 성경의 맨 마지막에 자리한 요한 계시록은 결국 세상의 모든 세력이 결판을 내기 위해 아마겟돈에 모이고 종말과 심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적어 놓았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계 16:19-20) 아담과 하와가 먹으면 안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징계를 받은 후에 사람이 늘 악한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왕에 엎지른 물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고 잘 해보려고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아담과 하와가 징계를 받은 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을 읽을 수 있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후에 아담은 하나님의 질문을 받고 그 책임을 전가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하나님께서는 다시 여자에게 물으셨다. “네가 어찌 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대답할 말이 궁해진 여자는 다시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견디기 힘들지라도 실은 그들이 다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한 셈이었다. 아담을 위해 여자를 지은 분도 하나님이고 뱀을 만든 분도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두 사람은 모두 징계를 당했다.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과 해산의 수고를 당하게 되었고 남자는 땅을 경작하여 먹을 것을 얻는 노동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둘이 모두 징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먹었기 때문인지 여자 쪽이 더 불리해 보인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그들의 행한 일에 대한 판결이 다 끝난 후에 두 사람은 표정은 어땠을까? 당장 에덴 동산에서 나가야 하는 참담한 판결 때문에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겠지만 우선 여자는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던 아담이 미웠을 것이다. 그리고 아담은 화가 나 있는 여자를 보기가 민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짜피 이제는 세상에서 그들 둘 뿐이었다. 싫더라도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창 3:20) 이것이 토라져 있는 아내에게 제시한 아담의 타협안일 수도 있다. 그가 아내에게 지어 준 이름 하와는 생명이라는 뜻인데 창세기는 하와가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므로 그런 이름으로 지어 주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하와에는 또 하나의 뜻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생활이라는 의미이다. 그 때로부터 여자가 집안의 살림을 맡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경제를 쥐었다는 뜻도 된다. 어짜피 두렵고 힘든 세상에서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데 토라진 아내를 달래려면 그 방법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남자들은 밖에서 열심히 번 재물을 아내에게 쥐어 주고 용돈을 타서 쓰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세상의 장사꾼들은 주부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모든 상품은 여자를 위해 생산되고 여자의 주머니를 여는 일에 필사적이다.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계18:12) 그러나 일단 아담은 재산의 관리권을 아내에게 넘겨 줌으로서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질 수도 있는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남편이 벌어온 재산을 관리하게 된 여자가 그 권한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동안에는 가정의 평강이 유지되나 장사꾼들의 유혹에 빠져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자신과 가정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었다.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다시 이것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계 18:13-14) 일단 아담은 아내와 동침하여 가인을 낳았다. 비록 에덴을 떠났어도 아담은 하나님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담이 그 아내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창 4:1) 그러나 아담은 자식을 기르고 가르치는 일에 성공하지 못했다. 가인을 낳고서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했다며 감사했으나 아벨을 낳았을 때에는 그런 기사가 없다. 또 가인에게는 농사하는 일을 물려 주었으나 아벨에게는 양 치는 일을 시켰다. 당시에는 곡식과 채소를 먹고 육식을 하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에(창 3:18) 가죽을 얻기 위해서 양을 치는 일은 아벨에게 불리한 분업이었다. 가인은 아벨이 생산한 가죽을 받아 쓰면서 자신이 생산한 곡식과 채소는 공평하게 분배하지 않았다. 아벨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없어 양의 첫 새끼를 잡아 그 기름과 함께 드렸고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을 열납하셨다. 가인은 매우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 그가 하나님의 처사에 분하여 안색이 변한 것은 그의 부모가 가인을 편애하여 버릇 없고 이기적인 자로 길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창 4:6) 가인의 안색이 변했던 것은 아우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창 4:7) 결국 가인은 그 아우를 시기하여 때려 죽였고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 잠시의 분함을 참지 못하여 아우를 죽이기는 했으나 가인은 곧 그것을 후회했다. 살인자가 되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것도 두려웠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3-14) 하나님은 가인에게 표를 주어 죽임을 당하기 않게 하시고 그와 그의 자손이 농사가 아닌 다른 산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해 주셨으며 아담이 다음에 낳은 아들 셋으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셨다. 육체가 되었기에 가인은 에덴의 동쪽 놋 땅에 가서 살았는데 놋이라는 그 이름은 유리 즉 떠돈다는 뜻이었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창 4:16-17) 가인이 그 아들의 이름을 에녹이라 한 것에서 그가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올바르게 살려고 애썼다는 흔적이 나타난다. 에녹이라는 이름은 곧 ‘바친다’는 뜻이었다. 가인은 비록 하나님을 떠나서 살았으나 아벨이 양의 새끼를 하나님께 드렸듯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각오까지 나타내 보인 것이다. 즉 그 아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가르치겠다는 뜻이었다. 가인의 아들 에녹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가인의 6대손인 라멕에 이르러 또 문제가 시작된다.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창 4:19) 그는 처음으로 두 아내를 취한 사람이 되었다. 한 남자가 두 아내를 취했다는 것은 곧 본격적인 경쟁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시기했듯이 그 자손들의 시대에 두 아내가 한 남편을 놓고 서로 싸우는 본격적인 경쟁과 미움의 세상이 시작된 것이다. 경쟁이 심해지고 상대를 시기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미움과 살인이 일어나고 범죄와 타락이 만연하게 된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창 4:23)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라멕이 사람을 죽인 것은 그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자기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인했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가인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올바르게 살려고 애를 썼던 것 같은데 어찌하여 그 자손들이 다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성경에 나타난대로 살펴보면 가인의 문제는 소유의 상속에 있었다.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창 4:17) 가인의 자손은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어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즉 야발은 가축을 길러 가죽을 생산했고 유발은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것으로 생업을 삼았으며 두발가인은 철과 구리로 각종 기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 곧 제2차 산업과 3차 산업의 특징은 곧 경쟁 산업이라는 것이다. 경쟁에는 반드시 그것을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 경쟁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규칙은 모두 같은 조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그가 건축한 성을 아들의 이름으로 불렀다. 성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으로 그렇게 한 것은 좋으나 그것에 아들의 이름을 붙인 것은 곧 아들에게 그 성의 소유권을 상속했다는 의미도 된다. 경쟁 사회에서 특정인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것은 곧 불공평한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2차, 3차 산업에서는 사람들이 경쟁에 사활을 건다. 그런데 경쟁이 불공평하게 되면 대번에 불평이 비등하게 되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모두가 불공정한 경쟁에 나서게 된다. 경쟁 산업에서 서로 불공정하게 경쟁하는 방법은 오늘날까지 활용되고 있다. 원가경쟁과 가격 경쟁으로 시작하다가 결국 접대와 뇌물이 등장하게 되고 권력과 야합하여 상대를 망하게 하는 짓도 하게 된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암 5:12) 가인의 자손들 가운데서도 불공정한 경쟁이 만연하다보니 힘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억울하게 하고 불공정한 거래를 하다보니 생활의 타락이 시작되었으며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 사이에 반목과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인의 자손들이 타락하자 그것은 독버섯처럼 온 세상으로 파급되었다. 그들이 제조하던 상품의 유력한 고객이던 셋의 자손들도 그들과 함께 타락하게 되었다.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 6:1-2) 이 대목은 농사를 짓던 셋 족속의 아들들이 타락한 가인 족속의 딸들을 아내로 취하여 모두가 함께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렇게 해서 가인의 자손들과 셋의 자손들이 모두 타락하게 되었으므로 땅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게 되었다. 그 시대에 셋의 자손 중에 하나님의 마음에 드시는 한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의 이름은 가인의 아들과 같은 에녹이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 더 이상 땅에 소망이 없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백 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 그래서 마침내 홍수의 대청소가 실시되는 것이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 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6-7) 아담은 그 아내와 잘 살아보려고 애썼으나 자식을 잘못 길렀고 가인도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으나 그 자손들은 다 타락하여 홍수로 멸망했으며 셋의 자손들까지 타락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다. 그 모든 노력들이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고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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