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자식이 부모를 대적할 때

은바리라이프 2008. 6. 25. 17:35
자식이 부모를 대적할 때
아비의 장막




19세기를 마감하는 1900년에 출판된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꿈의 해석’은 정신분석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킨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는 인간의 꿈과 행동의 요인을 잠재의식 속의 ‘리비도(Libido)' 즉 성적 충동에서 찾아내는 심층심리학의 새 분야를 발굴해냈던 것이다. 특히 그의 연구 과정에서 거론된 ‘외디푸스 컴플렉스’의 개념은 사회와 문화등의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류는 종교와 도덕의 궁극적 원천인 죄악감을 역사의 시초에 외디푸스 컴플렉스를 통해서 얻었을 것이다.”(‘토템과 터부’ 1913)
테베 왕 라이오스는 아내 이오카스테가 낳은 아들이 아비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그 아들을 산에 버렸다. 그러나 한 양치기가 아기를 구하여 고린도 왕에게 바쳤고 왕은 그를 양자로 삼아 이름을 외디푸스라고 했다. 외디푸스는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고 고린도를 떠났는데 길에서 한 사내와 시비가 생겨 그를 죽였다. 그가 바로 라이오스 왕이었고 그는 왕의 아내와 결혼했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외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한 두 눈을 뽑아버리고 방랑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신화에서 프로이트는 모든 사내 아기들은 그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최초의 성적 감정을 체험하게 되고 좀 더 자라면 어머니를 독점하려 할뿐만 아니라 결국 아버지를 방해물로 여기게 된다면서 이런 성향을 ‘외디푸스 컴플렉스’라고 이름 붙였던 것이다.

그의 추리가 꽤 그럴듯해 보이나 한쪽으로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흔히 부도덕한 자를 개같은 놈이라 하고 성경에도 개를 부정적으로 말하는데 이는 개가 매우 충성스러운 짐승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미와도 교미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초니마’나 서양에 ‘Mother Fucker'같은 욕설이 있는 것은 사람이 개와 달라서 모친에게 성욕을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프로이트가 그렇게 대담한 추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유태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살았던 가나안 땅과 근동 지역에 는 아비를 죽이고 그 모친을 범하는 패역의 사례들이 자주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가나안 사람들의 패역한 풍습을 따르지 말도록 강력하게 경고를 하셨다.

“네 어미의 하체는 곧 네 아비의 하체니 너는 범치 말라 그는 네 어미인즉 너는 그의 하체를 범치 말지니라”(레 18:7)

또 부모를 때리는 자는 죽이라고 명령했다.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5)

뿐만 아니라 부모를 저주하는 자도 죽이게 했다.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9)

어째서 가나안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감히 생각도 못할 이런 패역을 저질렀던 것일까? 그것은 가나안 사람들이 만든 권력 교체의 신화에서 비롯된다. 가나안 말과 히브리 말에서 하나님을 똑 같이 엘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들도 처음에는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 즉 엘 신이 자기 아들 바알에 의해 하늘로 쫓겨나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먼저 엘 신의 배우자로 땅의 여신 아세라를 만든 다음 그 사이에서 바알 신이 태어나게 하고 그가 장성하여 아버지 엘 신을 하늘로 내쫓고 모친 아세라와 결혼하게 한 것이다. 이 반역의 신화는 메소포타미아로 옮겨가 하늘의 신 아누와 땅의 여신 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엔릴의 이야기로 되었고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부친 크로노스를 쫓아낸 것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가나안 사람을 개(마 15:26)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왜 그런 패륜의 신화를 만들어 냈을까? 물론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권력 교체를 상징한 것이지만 가나안 사람들이 아비의 권위를 파괴하는 이 신화를 만들어낸 까닭은 홍수 이후에 노아의 집안에서 일어난 한 이상한 사건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노아가 다시 농사를 시작한 때였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창 9:20-22)

함에게 그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비의 하체에 덮었고 얼굴을 돌려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 나중에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사실을 알고 가나안을 저주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 9:26)

그런데 왜 노아는 함을 저주하지 않고 그 네째 아들 가나안을 저주했던 것일까? 아마도 가나안이 먼저 조부 노아가 벌거벗고 자는 것을 엿보고 자기 아버지 함에게 가서 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노아는 자신의 손자인 가나안을 저주했다. 거기서부터 가나안은 앙심을 품게 되었다. 그도 역시 노아를 저주하고 노아의 조상 셋과 셋의 하나님 여호와에게도 복수를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테베의 왕 외디푸스의 조상은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이다. 페니키아는 곧 지중해 연안의 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두로와 시돈 지역을 말하며 그 백성은 가나안의 장자 족속이다.(창 10:15) 외디푸스는 자신의 패륜을 자책하며 눈을 뽑았으나 그의 혈통은 페니키아 사람 즉 바알 신으로 하여금 아버지 신을 몰아내고 어머니 신과 결혼하게 만들었던 가나안 족속이었던 것이다.

외디푸스 왕이 자신의 눈을 뽑고 방랑자가 되자 그리스의 테베 왕가는 몰락하게 되나 갑자기 애굽의 나일 강 상류에 또 하나의 테베 왕가가 나타난다. 그들은 나중에 하류의 애굽을 점령하고 오시리스의 신화를 보급했다. 오시리스는 아우 셋(Seth)에게 살해당했는데 그 아내 이시스 여신은 유복자인 호루스에게 부친의 복수를 하라고 가르친다. 호루스는 복수를 다짐하는 복수의 신이다.

노아의 저주를 받은 가나안 민족은 그들이 노아의 자손이 아닌 가인 족속의 환생이라 하며 그 조상 셋에게도 복수를 다짐한다. 그들은 페닉스라는 불사조의 신화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페니키아의 정신을 나타내는 복수의 새이다. 이렇게 해서 가나안 민족은 조상과 아비를 저주하고 조상을 부인하기 위해 환생설을 만들고 그 조상의 하나님께 복수를 다짐하는 반역의 민족이 되었던 것이다.




내 아들 압살롬아




노아가 그 손자 가나안을 저주했기 때문에 조상과 그 하나님에 대한 가나안의 복수가 시작되었고 마침내 아들이 그 아비를 죽이는 패륜의 신화가 시작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했다.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신 7:2)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진멸하지 않았다. 그들을 살려 두어 자신들의 종으로 부렸고 다윗의 부하 중에도 헷 사람 우리아 같은 가나안 출신의 부하들이 있었다. 다윗은 가나안의 두로 왕이 지어준 왕궁을 받았으며(삼하 5:11)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왕비로 삼았다. 왕과 백성들이 모두 가나안의 해악에 소홀히 할 때에 반역의 아들 압살롬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단이 끈질기게 사람을 유혹하고 있으나 아들이 잘못되는 것은 대개 그 아비의 허물에서 오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었던 다윗은 가나안 여자와 상종하지 말라는 모세의 경고를 어겼을 뿐만 아니라 남의 아내를 탐내어 그녀와 간통하고 그 남편을 죽어 십계명 중에서 세 계명을 한꺼번에 범했다. 아비의 사생활이 그러할 때 그의 아들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강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아들 암논이 저를 연애하나 저는 처녀이므로........”(삼하 13:1)

암논은 다말을 힘으로 제압하여 강간했다. 더구나 다말의 몸을 빼앗은 후에는 그녀를 버려서 더 문제가 되었다. 다윗이 그런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자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은 마침내 암논을 죽이고 그술 땅으로 도망했다. 다윗은 평소에 압살롬을 좋아했는데 그의 외모가 아름다왔기 때문이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년말마다 깎았으며 그 머리털을 깎을 때에 달아 본즉 왕의 저울로 2백 세겔이었더라”(삼하 14:25-26)

다윗은 신하 요압의 간청으로 압살롬을 용서하여 돌아오게 했으나 이태 동안이나 그를 찾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것이 압살롬의 마음을 서운하게 했고 결국 그는 반심을 품게 되는 것이다. 압살롬은 다시 4년 동안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데 주력한 끝에 마침내 다윗이 처음 유다 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었던 헤브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윗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도망치게 되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 15:30)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에 무혈 입성한 압살롬은 먼저 이상한 짓을 했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 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삼하 16:22)

그것은 곧 가나안식의 권력 교체 의식이었다. 그는 아비의 후궁들을 공개적으로 겁탈하여 다윗의 시대가 가고 압살롬의 시대가 온 것을 선포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패역의 드라마를 연출한 압살롬을 징계하셨다. 반격을 시작한 다윗의 신하 요압의 군대와 싸우던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상수리 나무 아래로 지나다가 그 머리털이 나무에 걸려 매달리게 되고 노새는 혼자서 다라나 버렸다.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 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 죽이니라”(삼하 18:14-15)

다윗은 나중에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피 울며 부르짖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 18:33)

가나안에서 시작된 이 반역의 문화는 크레타 섬으로 건너갔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Europe)가 매우 아름다우므로 제우스 신은 황금의 털을 가진 황소로 변하여 에우로페를 태우고 크레타 섬으로 날아가 거기서 에우로페를 강간했다. 에우로페가 낳은 아들이 미노스 왕이고 그가 일으킨 미노스 문명은 그리스로 건너가 그리스 문명의 모체가 되었다.

나중에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했으나 그리스 문명은 또 로마 문명의 모체가 되었다. 그 로마는 유럽을 지배했고 에우로페는 곧 유럽의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유럽 문명은 신대륙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되었고 이제 미국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것이다. 결국 가나안 족속의 페니키아 인들이 만든 복수의 새 페닉스는 불사조처럼 살아남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럽 문화와 미국 문명의 바탕에는 아비를 몰아낸 바알의 사상이 들어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혁명의 사상이며 모든 혁명과 진보는 세대 교체를 근간으로 하게 된다. 유럽에서 시작된 사회주의 사상의 기반도 그것이고 능률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하는 자본주의 사상의 기본도 그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종말적 상황을 향해 질주할수록 기성세대의 권위는 밀려나게 된다.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赤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사 3:4-5)

세대 간의 갈등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아비가 자식을 양육할 때 하나님을 대신해야 하는데 자신의 생각대로 하던가 하나님과 멀어져 변화에 무관심하면 문제가 생긴다. 노아의 손자 가나안이 잘못된 것은 아비 함의 몰지각 때문이고 압살롬이 잘못된 것은 그 아비 다윗이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잘못을 덮어두고 자식만 꾸짖으면 더 큰 화를 부르게 된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네티즌의 시대가 되면서 세대간의 대화가 없어졌고 모든 신세대가 전체 구세대를 대적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시대를 탓할 것이 아니라 먼저 편향된 시각을 고치고 세상을 바로 보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김성일 No. 11, Read: 518, Vote: 6, Date: 2006/10/10 13: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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