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고 |
사랑과 근심 라헬을 보고 첫 눈에 반했던 야곱의 지극한 사랑이 그녀의 소생인 요셉에 대한 편애로 이어져서 요셉과 형들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후일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당사자와 집안을 파멸시키고 역사를 피로 물들이기도 한다. 왜 사랑에는 눈물과 근심도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을 처음 시작하신 하나님에서 시작된다.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 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렘 14:17) 하나님은 사랑하기 위해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며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쌍방이 함께 자발적으로 사랑을 느끼고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비록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해도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원하신다면 일방적으로 강요하실 수 없고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에 호소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아 2:14) 그러므로 두 주인공 사이에 사랑이 성사되려면 그 필수적인 조건이 바로 자유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도 사람의 사랑을 받으시려면 사람에게 자유를 주셔야만 그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유라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고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처럼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분만이 자유를 소유하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사랑 때문에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사랑을 포기한다면 사람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거나 로봇에게 하듯이 명령하고 부리면 된다. 그러나 사랑을 원하신다면 위험하더라도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을 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므로(시 25:8)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선악을 알 필요가 없었다. 사람이 만일 그 열매를 먹고 선악을 알겠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떠나기를 택하겠다는 의미였다. 사람이 그의 창조주를 떠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사람의 자유에 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줄 사랑의 교과서를 준비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사람이 그 배필을 만나 서로 사랑하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분을 사랑하게 될 것을 바라신 것이었다. 즉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하나님과의 사랑을 배우는 교과서였던 것이다. 그러나 뱀은 여자를 유혹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르치시려고 여자를 지어 사랑하도록 하셨는데 아담은 자기 여자를 사랑하여 그녀가 금단의 열매를 먹어도 나무라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가 주는 것을 함께 먹었던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고 그분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 깨진 것이 아니라 결국 아담과 하와 사이에도 금이 가게 되었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자기가 먹은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긴 것은 곧 자신의 선택을 그 여자와 하나님의 탓으로 돌린 것과 같았다. 하나님은 매우 섭섭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자신의 섭섭하심보다도 더 급한 문제가 있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금이 가서 파경이 되면 모처럼 마련해 주신 사랑의 교과서는 찢어지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얼핏 보면 이는 남자에게 매우 유리한 판결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는 여자가 수고하여 자식을 낳게 하고 남자를 아내와 자식 즉 정에 묶어 놓으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즉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에 금이 간 것을 급히 봉합해 놓으시고 남자로 하여금 가족의 생계를 떠맡게 하신 것이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8-19) 이 조치에서 하나님의 세 가지 뜻을 읽을 수 있다. 그 하나는 남자가 그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게 하여 여자와 가정을 버려둔채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흙을 갈아 농사를 짓게 하여 흙에서 태어난 자신을 생각하며 창조주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신이 취함을 입었던 흙을 갈게 하여 흙으로 지어진 자신의 몸을 갈며 뉘우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 3:23) 그렇게 긴급 조치를 해 놓으시고도 아직 하나님을 근심케 하는 것이 있었다. 금단의 열매를 함께 먹었으면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듯이 서로의 약점이나 결점을 트집삼아 서로 싸워서 파경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금단의 열매를 먹고 자신들이 벗은 것을 깨달아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몸을 가렸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비록 남편과 아내의 사이라고 하더라도 가릴 것은 가리고 살아 서로의 약점을 트집삼아 싸우지 못하도록 아예 튼튼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던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갈라서지 못하도록 세심하게 대비하신 흔적이 성경 곳곳에 배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끼어들어 지극하신 사랑을 비극으로 만들어버린 사단은 계속해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스며들어 그것을 깨뜨리고 있다. 우선 사람의 옷을 벗기는 것 부터가 사단의 계략이다. 배꼽 문화나 누드 문화도 문제이지만 남자와 여자 또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끼어들어 싸우고 갈라서게 만드는 가정 파괴와 정보 산업의 사생활 침해도 모두 사단이 역점을 두는 사업이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쾌락의 도구로 바뀌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랑의 교과서는 깨져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할 자료도 날아가는 것이다. 숨겨진 비밀 사도 요한은 그의 편지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적어 놓았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분이시므로 모든 사랑은 그분에게서 나온 것이며 또 그분 자신이 사랑하기 위해서 사람을 창조하셨던 것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자발적인 사랑을 받고 싶으셔서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것이 매우 위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작정하시고 에덴 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으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결국 그것을 먹게 되리라고 예상을 못하셨던 것일까? 아마도 하나님은 일이 그렇게 될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시 139: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 놓으시고 그것을 먹으면 죽으리라고 미리 알려 주셨어도 사람이 결국 호기심 때문에 먹게 되리라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아시면서도 왜 그런 무모한 일을 시작하셨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무모한 분이 아니시다.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잠 3:19) 그렇다고 해서 사망으로 가는 길을 스스로 택한 사람에게 특혜를 베푸셔서 살려 줄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평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사 5:16) 여기에 바로 비밀이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스스로의 종아리를 치는 아버지처럼 하나님 자신이 아픔을 당하시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대신 당하신다고 사람의 잘못이 양해될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독생자를 사람의 몸으로 보내서 사람의 잘못을 대속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기로 작정하시고 에덴 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으실 때부터 이것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래서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한 직후에 뱀을 저주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언급하셨던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숨겨 두셨던 비밀이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9) 사람은 에덴 동산을 떠나면서부터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었다. 남편과 아내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형과 아우도 서로 다투었으며 부모와 자식이 서로 욕하는가 하면 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는 다스리는 자와 섬기는 자가 서로 미워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약한 자들은 강한 자들을 저주하며 마을과 마을이 분쟁하고 민족과 민족이 서로 죽이고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6) 그래서 지상의 모든 생물을 홍수로 쓸어버리기도 하셨다.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 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7)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의 식구들을 방주에 들여보내 살아남게 하시고 그 자손들이 또 타락하여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계시다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도 하셨다. 그 후로사람들의 악행이 더욱 극심해져도 하나님께서는 즉시 독생자를 보내지 않으시고 때를 따라 구해 주시거나 환난을 겪게도 하시며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뉘우치고 바로 살기 위해 애쓰는가를 지켜보고 계셨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 2:3) 사람이 에덴 동산을 나온 후로 지금까지 서로 싸우지 않고 서로 도우며 평화스럽게 살 수는 없을까 하여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사색하였으며 주장도 하고 실천도 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다가 죽어갔고 평화를 지키려고 싸우다가 피를 흘렸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에는 싸움뿐이다. 땀과 눈물과 피를 흘려도 역사는 나쁜 쪽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 9:26)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싸우지 않도록 마련해 주신 장치들도 이제는 스스로 다 헐어내고 있다. 여자들은 자식 낳기를 싫어하고 남편들은 여자를 다스릴 엄두도 못내고 사람의 근본된 토지를 경작하라고 하셨는데 오늘날 어디를 가도 땅을 가는 사람이라고는 노인들 뿐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우리가 그분의 경륜을 따라 하나되는 길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은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9-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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