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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생각
세상 사람들은 진리를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나 성경에서 하나님은 진리의 주인이시고 말씀의 주체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 쉽사리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자주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앞지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경우가 많은 데 야곱의 경우가 특히 그러했다.
야곱은 라헬의 소생 요셉을 편애하여 그가 수난을 당하게 만들었다. 요셉을 미워한 형들이 그를 장사꾼들에게 팔아넘겨 애굽으로 끌려가게 되었던 것이다. 후일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부친과 형제들을 초청하게 된다. 130세에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은 거기서 17년을 더 살았는데 그가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할 때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창 48:14) 그것을 보고 놀란 요셉이 부친의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로 옮겨 놓기 위해 그에게 말했다.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그 머리에 얹으소서.” 그러나 야곱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창 48:19) 그렇게 해서 야곱은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을 앞세웠던 것이다. 야곱이 왜 그런 이상한 짓을 했는지 성경에는 그 이유가 밝혀져 있지 않다. 야곱이 보기에 둘째인 에브라임이 더 똑똑하거나 신실하게 보였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는지 모르나 그런 것도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야곱은 왜 그렇게 했을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겪은 일뿐이다.
그 자신은 아우로서 형의 장자권을 훔친 사람이었다. 그는 쌍둥이 형과 모친의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웠다. 리브가는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고 하나님께 물었는데 두 민족이 네 뱃속에서부터 나누일 것이며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했다. 출산때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야곱은 부친을 속여 형의 장자권을 빼앗았으니 손자들을 축복할 때 그 일이 생각났을 것이다.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창 48:20)
즉 야곱은 자신이 형의 장자권을 훔쳤으므로 자기 생각으로 볼 때 요셉의 차남 에브라임이 그 형 므낫세보다 더 지혜롭고 신실한 자로 보였을 것이다. 므낫세를 장자로 태어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었고 에브라임을 더 낫게 생각한 자는 야곱이었다. 즉 야곱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이 내게 대답하나니 이는 내 중심이 조급함이니라”(욥 20:2)
자기 생각에 집착하는 야곱의 모습은 그가 삶을 마감하며 운명하기 직전까지도 나타난다. 147세가 된 야곱은 자신의 수명이 다 한 것을 알고 그 아들들을 불러 모아 예언을 겸한 축복의 말을 내리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우선 중요한 것은 누구를 후사로 삼아 장자권을 물려주고 형제들을 다스리게 하느냐는 문제였다. 먼저 에델 땅에서 서모 빌하와 통간했던 장자 르우벤이 탈락했다.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창 49:3-4) 또 둘째 아들 시므온과 세째 아들 레위는 세겜 성에서 그곳 사람들을 기만하여 잔혹하게 학살했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창 49:5-6) 그리고 유다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가나안 여자를 취하여 아들 셋을 낳았으나 둘을 잃었고 비록 홀로 된 며느리 다말과의 사이에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으나 며느리가 변장하여 모르고 한 일이므로 결격 사유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애굽에 갔을 때 아우 베냐민 대신 잡혀 있겠다고 총리에게 탄원하여 형제간의 화해를 이룩하게 한 공로자이니 장자권은 당연히 그에게 가야 했다.
“홀(笏)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8:10) 여기 나오는 ‘실로’라는 말은 장차 오실 구원자 즉 메시야를 의미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어쨌든 유다에게 준 야곱의 말은 분명히 장자권자에 대한 축복이었다. 그리고 다시 야곱의 유언은 다음의 아들들에게로 옮겨 갔다. 스불론과 잇사갈과 단과 갓 그리고 아셀과 납달리를 거쳐 요셉의 차례가 되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말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거기까지는 이해를 할 만한 내용이었다.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었다는 것은 그가 애굽에 들어가 창대하게 되었다는 뜻이고 활 쏘는 자가 그를 쏘며 군박하였으나 그의 활이 도리어 견강했다는 것은 형제들이 그를 미워하여 팔아넘겼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 다음의 말이 문제였다.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창 49:24)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장자권에 대한 축복이었다. 라헬에 대한 야곱의 사랑은 참으로 지독한 것이었다. 라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요셉을 편애하여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미워하게 하고 결국 고난을 당하게 했으며 라헬이 죽은 후에도 지나치도록 베냐민에 집착하여 다른 아들들을 난처하게 했다. 그러다가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도 역시 라헬 소생의 요셉에 대한 연민을 드러냈던 것이다.
결국 야곱은 유다와 요셉 양쪽에 모두 장자권을 넘겨 주는 중복된 축복을 해 준 셈이 되었다. 야곱의 아들들이 또 의아했을 것이나 당시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인데다가 혹시라도 보복이 있을까봐 두려워서 불평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야곱이 그런 이중의 축복을 했을 때 하나님은 또 얼마나 난처하셨을 것인가? 하나님도 야곱의 생각과 소원을 무시하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야곱의 우물에서
과연 하나님은 야곱의 축복에 어떻게 응답하셨을까? 그가 지나치게 자기 생각에 집착하기는 했으나 라헬이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그녀를 못잊어 몸부림치고 죽기 직전까지도 그 추억을 놓지 못하는 야곱이 측은하게 보이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소원을 둘 다 들어주기로 작정하셨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하나님은 지극히 절묘한 방법으로 야곱의 두 가지 축복을 다 들어 주셨다. 먼저 유다에 대한 축복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었으므로 유다 지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즉 유다 지파에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게 함으로써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해서 잡힐 것을 자원했던 것처럼 형제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도록 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을 구원하도록 하신 것이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계 5:5) 야곱이 유다에 대하여 축복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었다면 요셉에 대한 축복은 사람의 소원에 의한 것이었다. 요셉 지파는 특별히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두 지파를 이루었는데 야곱이 오른 손을 얹은 에브라임 지파가 요셉의 자손을 대표하였고 하나님은 그 에브라임 지파에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지휘하는 여호수아가 나오게 하셨다. 여호수아는 본래 에브라임 지파의 두령이었다.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민 13:8) 모세는 그를 여호수아라고 불렀다.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칭하였더라”(민 13:16)
그리고 모세는 그에게 지휘권을 인계하게 된다.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민 27:22-23) 그러나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 지파의 관계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지휘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나 그의 생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땅을 다 점령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땅을 미리 제비 뽑아 각 지파에 나누었다. 여호수아는 자신과 함께 광야 세대에서 살아 남은 유다 지파의 갈렙에게 땅 선택의 우선권을 주었고 그는 헤브론 산지를 택했다.
여호수아가 속해 있는 에브라임 지파는 야곱이 돌을 세웠던 벧엘과 그의 우물과 축복의 산 그리심이 있는 요지를 차지했고 자기네 땅에 성막을 안치하여 그곳을 ‘실로’라고 했다. 야곱이 유다를 축복할 때 쓴 구원자의 호칭을 그곳에 붙였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유다 지파의 옷니엘, 베냐민 지파의 에훗 등 사사들이 나와 지휘를 했으나 세력의 중심은 여전히 에브라임에 있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삿 12:1)
그러나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 지파 출신의 사사 입다를 징계하려고 나섰다가 오히려 4만 2천 명이 죽는 참패를 당했고 에브라임 지파의 권위는 크게 손상되었다. 그들이 결정적으로 몰락한 것은 블레셋과의 전쟁때문이었다. 블레셋에 패전하여 실로가 불에 타고 언약궤까지 빼앗긴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도 왕을 세워달라고 탄원하자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첫번 왕으로 지명했다.
그러나 사울이 나중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므로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시켜 유다 지파의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했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자 다윗은 베냐민 지파를 흡수하여 유다 왕이 되었고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에 열두 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아스다롯 여신을 섬겨 하나님을 배반하자 다시 판도는 달라졌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였으니”(왕상 11:26)
그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다. 다윗의 위세와 솔로몬의 명성에 눌려 있던 이스라엘 중의 열 지파가 예루살렘을 떠나 세겜 땅에서 새 왕국을 세우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했으며 유다에는 오직 베냐민 지파만 남게 되었다. 이 후로 선지자들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 불렀고 후에는 오므리 왕이 건축한 새 도성 사마리아의 이름이 북왕국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운 북왕국에서는 바아사, 시므리, 오므리 등의 반란이 계속되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두로 왕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삼은 후로 북왕국은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게 되었고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분단 70년만에 남북 대화를 시도하며 아합과 사돈을 맺어 같은 길을 걸었다. 결국 북왕국은 BC 722년 앗수르에 멸망당했고 남은 BC 586년 바벨론에 멸망당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겔 37:19)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선지자 에스겔은 그렇게 부르짖었다. 바벨론이 멸망한 후에는 메대와 바사가 유대 지역을 다스렸고 그 후에는 헬라가 지배했으며 유대는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당시 유대인들이 혹시 메시야가 아니신가고 기대했던 예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셨다가 물을 길러 나온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는데 여인은 당돌하게도 그분께 대들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 4:9) 사마리아 사람들은 메시야가 에브라엠 지파에서 나오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야곱의 인간적 소원이 1천 9백년의 세월을 넘어 그 때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 말로 여호수아 즉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마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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