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을 위하여
하나님이 엿새 동안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그대로만 잘 유지되면 세상에는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고 편안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용한 세상에 예측할 수 없는 태풍의 씨들을 숨겨 놓으셨다. 그것이 바로 카오스 이론에서 말하는 ‘별난 끌개(Strange Attractor)’라는 것이다.
태풍이나 전염병의 확산과 같은 거대한 현상은 예측할 수 있는 선형 변화가 아니라 아주 작고 민감한 변화에서 시작하여 비선형적으로 불규칙하게 전개된다. 그래서 중국의 나비 한 마리가 팔랑거리면 미국의 태풍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도 그런 태풍의 씨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이다.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7)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싹튼 사랑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은(殷) 나라는 주왕과 달기의 사랑 때문에 멸망했고 로마의 율리우스 가이사는 클레오파르라와의 사랑 때문에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그래서 현자들은 늘 여자를 조심하라고 말하지만 한번 사랑이 시작되면 아무도 그것을 말릴 수 없다. 하나님조차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못말리셨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니이라”(신 7:3-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전에 우상을 섬기는 가나안 사람들과는 혼인하지 말라는 규범을 정해 놓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끼던 사람 다윗은 가나안 여자인 밧세바라는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다.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솔로몬은 잠언을 기록하면서 여자에 관한 문제를 많이 언급했다.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 7:25-27)
솔로몬은 아들을 교육하려고 잠언을 썼으나 자신이 여자들에 빠져 1천명의 여자들을 데리고 살았으며 결국 사랑의 여신 아스다롯을 섬기게 되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아비의 행위를 본받아 아내 18명과 첩 60명을 두었고 그의 시대에 남과 북이 분단되었다. 분단된 후에 북쪽의 아합 왕은 가나안 여자 이세벨과 결혼했으며 남쪽의 여호사밧 왕은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삼았다.
그러고 보면 이미 창세기서부터 큰 사건들은 여자들과 관계가 있다. 아담이 아내의 권유대로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아랍과 이스라엘의 불화는 아브라함이 본처 사라를 더 사랑하여 하갈과 그 소생의 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낸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생성과 갈등의 배경에는 라헬이라는 여인이 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삭을 가나안 여자와 결혼시키지 않으려고 그의 고향 밧단아람 지역에서 리브가를 데려다 며느리를 삼았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이 있었는데 에서가 가나안 여자를 둘이나 아내로 취했으므로 리브가는 그에게 장자권자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삭이 늙어 눈이 어두울 때 리브가는 차남 야곱을 형 에서로 가장시켜서 장자의 축복을 받게 했다.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창 27:41)
야곱은 형을 피하여 외가가 있는 밧단 아람으로 떠나는데 거기서 양을 몰고 오는 라헬을 만나게 된다. 야곱은 그 라헬을 사랑하여 그녀의 부친이며 자신의 외삼촌인 라반에게 청혼을 했다. 아마도 그는 라헬의 눈매에 반했던 것 같다.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眼力)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7년을 봉사하리이다”(창 29:16-18)
야곱은 나그네이므로 신부를 데려올 때 내는 돈이 없어 머슴 살이로 그것을 대신했던 것이다. 7년이 지나 드디어 잔치를 하고 신부를 맞았는데 아침에 보니 함께 잔 신부는 레아였다. 야곱이 그 일로 장인에게 항의하자 이곳에서는 아우를 먼저 시집보내는 일이 없으므로 그리 한 것이니 7년을 더 일한다면 라헬도 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야곱은 14년의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야곱이 두 아내가 있으면서도 라헬만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이 레아를 불쌍히 여겨서 그 쪽에 자식을 먼저 주셨다. 레아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를 줄줄이 낳자 초조해진 라헬은 자신의 여종 빌하를 남편과 동침하게 하여 단과 납달리를 낳게 했다. 그렇게 되자 레아도 자신의 시녀 실바를 남편에게 주어 갓과 아셀을 낳게 했으며 레아 자신도 또 잇사갈과 스불론을 낳아 기염을 토했다.
레아와 빌하와 실바가 열 명의 아들들을 낳은 후에야 하나님은 비로소 라헬의 태를 열어 요셉이라는 아들을 주셨다. 야곱에게는 이미 열 아들이 있었으나 그는 오직 요셉만을 편애했다. 사랑하는 라헬이 낳은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편애는 20년 동안 일하여 모은 재산과 가축들과 네 아내와 열 한 아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문제가 되었다. 형 에서가 그를 만나려고 오던 때였다.
“그가 4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창 32:6)
야곱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먼저 가축의 떼를 둘로 나누었다. 형이 한 떼를 치면 나머지 반은 피하게 할 셈이었다. 또 형의 마음을 풀기 위해 형에게 선물할 가축의 떼를 셋으로 나누어 보냈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조금씩 마음을 풀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해 놓고도 안심이 안되어 그는 식구들을 셋으로 나누었다.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두에 두고........”
형이 칼을 휘두르면 여종과 그 자식들이 먼저 당하고 다음에는 레아와 그 자식들이 당하라는 의도였고 라헬과 요셉은 꽁무니에 있다가 도망치라는 뜻이었다. 그런 부친의 처사에 열 아들의 심사가 어떠했을 것인가는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창 37:4)
생명을 구하려고
선물 때문에 마음을 푼 에서의 손을 벗어나 세겜에 도착한 야곱의 식구들은 또 시련을 겪었다. 야곱의 딸 디나가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한 것이다. 그가 디나를 사랑하여 부친과 함께 청혼하러 오자 야곱의 아들들은 성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면 허락하겠다고 했다. 그들이 모두 할례를 행하고 거동이 불편할 때 시므온과 레위가 성을 습격하여 성의 모든 남자를 죽였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창 34:30)
식구들을 데리고 세겜을 떠난 야곱이 벧엘에 올라가 단을 쌓고 다시 에브랏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라헬은 둘째 아들을 낳고 죽었다. 야곱은 그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 하고 베들레헴을 지나 아브라함이 한 때 살았던 헤브론에 그의 장막을 쳤다. 거기 살 때에 야곱은 양떼를 이끌고 나간 아들들에게 요셉을 보냈다. 도단에서 양떼를 돌보고 있던 형들은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창 37:19)
미운 아우를 잡아서 죽이려고 모의하던 형들은 그를 죽이는 대신 지나가던 미디안의 장사꾼들에게 팔아넘기고 부친에게는 염소의 피를 묻힌 요셉의 옷을 보여 죽은 것으로 알게 했다. 그러나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은 열심히 일하여 가정 총무를 맡게 되었고 주인 여자의 유혹을 거절하여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으나 거기서도 전옥의 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요셉은 마침내 감옥에서 큰 기회를 잡게 되었다. 반역의 혐의로 투옥된 관리가 꿈을 꾸고 요셉의 해석대로 혐의가 풀려서 석방되었는데 이태가 지나 왕이 이상한 꿈을 꾸고 고민 중인 것을 보자 자신이 겪은 일을 보고한 것이다. 왕에게 불려간 요셉은 그의 꿈을 해석했다. 왕이 꿈에서 본 살진 일곱 암소는 7년의 풍년이며 그것을 잡아먹은 파리한 일곱 암소는 7년의 흉년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들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요셉은 7년의 흉년에 대한 대책까지 소상하게 아뢰었다.
“그 일곱해 풍년에 애굽 땅의 5분의 1을 거두되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적치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창 41:34-36)
바로가 보기에 요셉보다 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로는 즉시 요셉을 총리로 임명하여 곡물을 비축하고 흉년에 대비하게 했다.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 쌔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창 41:56-57)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심하여 야곱은 그 아들들에게 애굽으로 내려가 양식을 구해오게했으나 라헬이 낳은 베냐민은 곁에 두고 보내지 않았다. 그녀가 죽은 후에도 그녀에 대한 야곱의 사랑은 끔찍했던 것이다. 그들이 애굽에 내려가자 총리는 막내가 하나 더 있다는 말을 듣고 다음에 올 때에는 꼭 그를 데려오라고 했는데 다시 양식이 떨어졌으나 야곱은 베냐민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창 42:38)
그러자 네째 아들 유다가 나섰다.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마침내 그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동복 아우를 본 요셉은 그를 곁에 두기 위해 그의 자루에 은잔을 숨겨 두었다가 찾아내어 그를 잡게 했다. 베냐민이 잡히게 되자 유다가 나서서 말했다.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그도 형제들과 함께 요셉을 팔았던 자였으나 자신의 아들을 둘이나 잃으면서 요셉을 사랑하는 아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창 44:33-34)
그 말에 비로소 총리는 감동하여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고 형제들과 화해하게 된다. 요셉은 그 부친과 형제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초청하여 편안히 살게 했으며 부친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더 살고 147세에 죽었다. 부친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그가 보복할까 두려워 그에게 절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을 위로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50:19-21)
그 이후로 한동안 야곱의 열 두 아들들과 그 자손들은 화목하게 살았고 특히 유다와 베냐민의 자손들은 각별한 관계가 되었다.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고 했던 BC 1876년으로부터 860년이 지난 후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은 왕의 손에 죽게 된 다윗을 피신시켜 보내면서 그와의 약속을 다시 상기시켰다.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삼상 20:42)
그 요나단은 베냐민 지파였고 다윗은 유다 지파였다. 그로부터 다시 1천 여년이 지난 후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길을 향해 달리는 바리새인 바울을 불러서 돌이켜 세웠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그의 교회를 세우는 큰 업적을 남겼다. 그 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 11:1) †
하나님이 엿새 동안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그대로만 잘 유지되면 세상에는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고 편안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용한 세상에 예측할 수 없는 태풍의 씨들을 숨겨 놓으셨다. 그것이 바로 카오스 이론에서 말하는 ‘별난 끌개(Strange Attractor)’라는 것이다.
태풍이나 전염병의 확산과 같은 거대한 현상은 예측할 수 있는 선형 변화가 아니라 아주 작고 민감한 변화에서 시작하여 비선형적으로 불규칙하게 전개된다. 그래서 중국의 나비 한 마리가 팔랑거리면 미국의 태풍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도 그런 태풍의 씨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이다.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7)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싹튼 사랑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은(殷) 나라는 주왕과 달기의 사랑 때문에 멸망했고 로마의 율리우스 가이사는 클레오파르라와의 사랑 때문에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그래서 현자들은 늘 여자를 조심하라고 말하지만 한번 사랑이 시작되면 아무도 그것을 말릴 수 없다. 하나님조차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못말리셨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니이라”(신 7:3-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전에 우상을 섬기는 가나안 사람들과는 혼인하지 말라는 규범을 정해 놓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끼던 사람 다윗은 가나안 여자인 밧세바라는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다.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솔로몬은 잠언을 기록하면서 여자에 관한 문제를 많이 언급했다.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 7:25-27)
솔로몬은 아들을 교육하려고 잠언을 썼으나 자신이 여자들에 빠져 1천명의 여자들을 데리고 살았으며 결국 사랑의 여신 아스다롯을 섬기게 되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아비의 행위를 본받아 아내 18명과 첩 60명을 두었고 그의 시대에 남과 북이 분단되었다. 분단된 후에 북쪽의 아합 왕은 가나안 여자 이세벨과 결혼했으며 남쪽의 여호사밧 왕은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삼았다.
그러고 보면 이미 창세기서부터 큰 사건들은 여자들과 관계가 있다. 아담이 아내의 권유대로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아랍과 이스라엘의 불화는 아브라함이 본처 사라를 더 사랑하여 하갈과 그 소생의 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낸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생성과 갈등의 배경에는 라헬이라는 여인이 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삭을 가나안 여자와 결혼시키지 않으려고 그의 고향 밧단아람 지역에서 리브가를 데려다 며느리를 삼았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이 있었는데 에서가 가나안 여자를 둘이나 아내로 취했으므로 리브가는 그에게 장자권자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삭이 늙어 눈이 어두울 때 리브가는 차남 야곱을 형 에서로 가장시켜서 장자의 축복을 받게 했다.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창 27:41)
야곱은 형을 피하여 외가가 있는 밧단 아람으로 떠나는데 거기서 양을 몰고 오는 라헬을 만나게 된다. 야곱은 그 라헬을 사랑하여 그녀의 부친이며 자신의 외삼촌인 라반에게 청혼을 했다. 아마도 그는 라헬의 눈매에 반했던 것 같다.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眼力)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7년을 봉사하리이다”(창 29:16-18)
야곱은 나그네이므로 신부를 데려올 때 내는 돈이 없어 머슴 살이로 그것을 대신했던 것이다. 7년이 지나 드디어 잔치를 하고 신부를 맞았는데 아침에 보니 함께 잔 신부는 레아였다. 야곱이 그 일로 장인에게 항의하자 이곳에서는 아우를 먼저 시집보내는 일이 없으므로 그리 한 것이니 7년을 더 일한다면 라헬도 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야곱은 14년의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야곱이 두 아내가 있으면서도 라헬만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이 레아를 불쌍히 여겨서 그 쪽에 자식을 먼저 주셨다. 레아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를 줄줄이 낳자 초조해진 라헬은 자신의 여종 빌하를 남편과 동침하게 하여 단과 납달리를 낳게 했다. 그렇게 되자 레아도 자신의 시녀 실바를 남편에게 주어 갓과 아셀을 낳게 했으며 레아 자신도 또 잇사갈과 스불론을 낳아 기염을 토했다.
레아와 빌하와 실바가 열 명의 아들들을 낳은 후에야 하나님은 비로소 라헬의 태를 열어 요셉이라는 아들을 주셨다. 야곱에게는 이미 열 아들이 있었으나 그는 오직 요셉만을 편애했다. 사랑하는 라헬이 낳은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편애는 20년 동안 일하여 모은 재산과 가축들과 네 아내와 열 한 아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문제가 되었다. 형 에서가 그를 만나려고 오던 때였다.
“그가 4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창 32:6)
야곱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먼저 가축의 떼를 둘로 나누었다. 형이 한 떼를 치면 나머지 반은 피하게 할 셈이었다. 또 형의 마음을 풀기 위해 형에게 선물할 가축의 떼를 셋으로 나누어 보냈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조금씩 마음을 풀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해 놓고도 안심이 안되어 그는 식구들을 셋으로 나누었다.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두에 두고........”
형이 칼을 휘두르면 여종과 그 자식들이 먼저 당하고 다음에는 레아와 그 자식들이 당하라는 의도였고 라헬과 요셉은 꽁무니에 있다가 도망치라는 뜻이었다. 그런 부친의 처사에 열 아들의 심사가 어떠했을 것인가는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창 37:4)
생명을 구하려고
선물 때문에 마음을 푼 에서의 손을 벗어나 세겜에 도착한 야곱의 식구들은 또 시련을 겪었다. 야곱의 딸 디나가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한 것이다. 그가 디나를 사랑하여 부친과 함께 청혼하러 오자 야곱의 아들들은 성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면 허락하겠다고 했다. 그들이 모두 할례를 행하고 거동이 불편할 때 시므온과 레위가 성을 습격하여 성의 모든 남자를 죽였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창 34:30)
식구들을 데리고 세겜을 떠난 야곱이 벧엘에 올라가 단을 쌓고 다시 에브랏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라헬은 둘째 아들을 낳고 죽었다. 야곱은 그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 하고 베들레헴을 지나 아브라함이 한 때 살았던 헤브론에 그의 장막을 쳤다. 거기 살 때에 야곱은 양떼를 이끌고 나간 아들들에게 요셉을 보냈다. 도단에서 양떼를 돌보고 있던 형들은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창 37:19)
미운 아우를 잡아서 죽이려고 모의하던 형들은 그를 죽이는 대신 지나가던 미디안의 장사꾼들에게 팔아넘기고 부친에게는 염소의 피를 묻힌 요셉의 옷을 보여 죽은 것으로 알게 했다. 그러나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은 열심히 일하여 가정 총무를 맡게 되었고 주인 여자의 유혹을 거절하여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으나 거기서도 전옥의 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요셉은 마침내 감옥에서 큰 기회를 잡게 되었다. 반역의 혐의로 투옥된 관리가 꿈을 꾸고 요셉의 해석대로 혐의가 풀려서 석방되었는데 이태가 지나 왕이 이상한 꿈을 꾸고 고민 중인 것을 보자 자신이 겪은 일을 보고한 것이다. 왕에게 불려간 요셉은 그의 꿈을 해석했다. 왕이 꿈에서 본 살진 일곱 암소는 7년의 풍년이며 그것을 잡아먹은 파리한 일곱 암소는 7년의 흉년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들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요셉은 7년의 흉년에 대한 대책까지 소상하게 아뢰었다.
“그 일곱해 풍년에 애굽 땅의 5분의 1을 거두되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적치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창 41:34-36)
바로가 보기에 요셉보다 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로는 즉시 요셉을 총리로 임명하여 곡물을 비축하고 흉년에 대비하게 했다.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 쌔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창 41:56-57)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심하여 야곱은 그 아들들에게 애굽으로 내려가 양식을 구해오게했으나 라헬이 낳은 베냐민은 곁에 두고 보내지 않았다. 그녀가 죽은 후에도 그녀에 대한 야곱의 사랑은 끔찍했던 것이다. 그들이 애굽에 내려가자 총리는 막내가 하나 더 있다는 말을 듣고 다음에 올 때에는 꼭 그를 데려오라고 했는데 다시 양식이 떨어졌으나 야곱은 베냐민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창 42:38)
그러자 네째 아들 유다가 나섰다.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마침내 그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동복 아우를 본 요셉은 그를 곁에 두기 위해 그의 자루에 은잔을 숨겨 두었다가 찾아내어 그를 잡게 했다. 베냐민이 잡히게 되자 유다가 나서서 말했다.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그도 형제들과 함께 요셉을 팔았던 자였으나 자신의 아들을 둘이나 잃으면서 요셉을 사랑하는 아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창 44:33-34)
그 말에 비로소 총리는 감동하여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고 형제들과 화해하게 된다. 요셉은 그 부친과 형제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초청하여 편안히 살게 했으며 부친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더 살고 147세에 죽었다. 부친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그가 보복할까 두려워 그에게 절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을 위로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50:19-21)
그 이후로 한동안 야곱의 열 두 아들들과 그 자손들은 화목하게 살았고 특히 유다와 베냐민의 자손들은 각별한 관계가 되었다.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고 했던 BC 1876년으로부터 860년이 지난 후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은 왕의 손에 죽게 된 다윗을 피신시켜 보내면서 그와의 약속을 다시 상기시켰다.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삼상 20:42)
그 요나단은 베냐민 지파였고 다윗은 유다 지파였다. 그로부터 다시 1천 여년이 지난 후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길을 향해 달리는 바리새인 바울을 불러서 돌이켜 세웠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그의 교회를 세우는 큰 업적을 남겼다. 그 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 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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