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은바리라이프 2008. 6. 24. 18:03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떠드는 소리

왕들이 내세우는 전쟁의 명분은 나라와 민족이라는 것인데
사실은 그 형체가 없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이란 사람들이 공동의 문화를
누리면서 질서 있게 살기 위해서 만들어낸 편리한 제도일 뿐이다.

2001년 9월 11일 납치된 여객기에 의해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를 공격당한 미국은 ‘알 카에다’의 근거지가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그 작전명을 ‘무한 정의(Infinite Justice)’로 했다. 그러나 이 작전명이 이슬람권 전체의 반발을 살 것으로 판단하여 하루만에 작전명을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로 바꾸었다. 그리고 10월 7일 영국군과 함께 공격을 시작했다.
나라들과 민족들이 전쟁을 할 때에는 모두가 그 명분이 있다. 전쟁의 명분이 있어야 민심의 동의를 얻을 수 있고 군사들의 사기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 3월 20일 다시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격할 때 그 작전명은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였다.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전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나 구차스러운 명분을 내세우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잠 22:10).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인류에게 천재지변보다 더 큰 충격과 공포를 준 것이 바로 전쟁이었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자식을 빼앗기고 남편이 죽는다. 전쟁은 사람들에게서 소중한 관계들을 한꺼번에 빼앗아가고 오랫동안 땀흘려 일구어 놓은 것들을 일시에 파괴해버린다. 홍수와 지진같은 것은 하늘의 뜻이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할 수 있으나 전쟁은 사람의 소행이므로 한이 더 깊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타락하여 죄악에 빠져 있을 때 땅을 흔들고 화산을 터뜨려 견책하시기도 하나 자주 전쟁으로 경고하시기도 한다. 사람을 가장 아프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일어날 수 있는 것이나 그것이 사람 자신의 죄악과 정욕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자기 가슴을 치며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약 4:1).
성경에서 홍수 이후에 처음으로 규모가 큰 전쟁을 주도했던 인물은 함의 손자요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이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창 10:8).
니므롯의 출신지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에서 시작되었고 앗수르까지 진출했다. 이들이 모두 노아의 장자 셈의 지역인 것으로 보다 니므롯이 이끄는 함의 세력이 셈의 장자권에 도전하여 큰 전쟁을 일으킨 것이었다. 함의 자손들 중에 기계 제작과 금속 기술이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아 니므롯은 맹수들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창 10:9).
그 이후 다시 아브라함의 시대에 싯딤 골짜기에서 최초의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네 나라 연합군이 싯딤 주변에 있는 다섯 나라를 공격해 온 것이다. 싯딤 지역의 나라들이 엘람 왕을 섬기다가 배반하여 조공을 중단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전쟁에서 싯딤 지역의 다섯 나라는 참패를 당했고 메소포타미아의 연합군은 재물을 약탈하고 그곳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최초의 살인으로부터 시작해서 홍수 이후 함 자손의 반란과 아브라함 시대의 세계 대전 등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얼룩져 왔다. 그럴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엄청난 과부들과 고아들이 생기고 사지를 잃어버리는 불구자들이 생겨났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이 비극을 만들어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쟁을 꾸짖고 징계하는 매로 사용하신다.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사 10:5).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백성이 타락할 때 전쟁의 소리를 들었다.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列國)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 무리가 먼 나라에서, 하늘 가에서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사 13:4-5).
앗수르 이후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견책하고 징벌하기 위해 계속해서 강대국들을 길러내셨다.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멸망시킨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꿈에 금의 머리와 은의 가슴과 놋의 배와 철의 다리 그리고 철과 흙이 섞인 발로 이루어진 이상한 신상을 보았을 때 다니엘은 그것이 장차 세계를 지배할 패권 국가들이라고 해석했다.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세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네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단 2:38-40).
이는 곧 바벨론 뒤에 일어날 메대와 바사 그리고 헬라와 로마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상의 발은 얼마는 철이고 얼마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는 마지막 때의 제국을 의미했다. 그리고 다니엘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전쟁이 계속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 9:26).
인류사의 마지막을 장식할 큰 전쟁은 아마겟돈이라는 곳에서 벌어진다.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6).
그 아마겟돈이라는 장소가 어디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이 히브리음의 철자를 하르-마겟돈으로 읽어 다볼산 곧 하르와 요시야 왕이 전사한 므깃도 골짜기를 연관시키기도 하나 발음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 전쟁이 유브라데 강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성경은 이 마지막 전쟁에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리라고 기록해 놓았다.
“요란한 소리가 땅 끝까지 이름은 여호와께서 열국과 다투시며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붙이심을 인함이라”(렘 25:31).
그것은 곧 심판의 날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욜 3:14).

더러운 전쟁

시날 땅에서 일어난 니므롯이 셈의 장자권을 탈취한 이후로 사람들은 계속해서 전쟁을 벌여왔다. 전쟁으로 얻는 것이란 오직 죽인 시체와 수많은 과부와 고아들 그리고 쇠사슬로 결박한 노예들과 약탈한 물건들 뿐이었다.
“어찌하여 열방(列邦)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시 2:1).
전쟁으로 이득을 얻는 자는 오직 개선하고 돌아온 왕들 뿐이다. 왕들은 전쟁에 이겨서 힘을 과시하고 그 힘으로 백성들을 더욱 압제하여 자리를 굳게 하고 세금을 더 많이 거둬들인다. 왕들이 내세우는 전쟁의 명분은 나라와 민족이라는 것인데 사실은 그 형체가 없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이란 사람들이 공동의 문화를 누리면서 질서 있게 살기 위해서 만들어낸 편리한 제도일 뿐이다.
왕들은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라고 요구하는데 그 기초 단위는 가족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가족 공동체가 얻는 것은 사별과 궁핍과 압제 뿐이다. 요행히 이긴 쪽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결국 모든 전쟁의 결과는 상처 뿐이고 인간성은 점점 더 파괴되어 간다. 전쟁이 끝나면 무법자들이 창검과 총기를 주워들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세상을 어지럽힌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예수께서 거라사 지방에 가셨을 때 군대 귀신이 들린 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사람들이 그를 쇠사슬로 매어 놓아도 그것을 끊고 돌아다니므로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 사이에서 나와 산에서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때리고 찢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을 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예수께서는 그를 바라보며 엄하게 명하셨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 5:8).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떠들었다.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예수께서 다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러자 다시 귀신들린 자가 대답했다.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 때 마침 많은 돼지의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었는데 군대 귀신이 그것을 보고 다시 예수께 간청했다.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귀신들이 그 자에게서 나오더니 돼지에게로 들어갔다. 그러자 거의 2천 마리나 되는 돼지의 떼가 일제히 비탈로 달려내려가 갈릴리 호수에 빠져 몰사해버렸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그것을 보고 놀라서 읍내에 들어가 알리자 사람들이 달려와 보니 귀신 들렸던 자 즉 군대 귀신이 들렸던 자는 정신이 온전해져서 옷을 입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막 5:19).
이렇게 군대 귀신은 더러운 귀신이었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아무리 훌륭한 명분을 내세워도 전쟁은 더러운 것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가 공격당한 후 16일 NBC TV에 출연한 미국의 딕 체니 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 수행을 위해 비열하고 더러운 정보 전술에도 의존하고 가능한 모든 권한을 이용할 것이라며 곧 더러운 전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팔레스타인을 지원한다면서 소위 성전을 주장하는 쪽의 투쟁도 더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내들 뿐만 아니라 부녀자들과 어린 아이까지도 자살 폭탄테러에 동원하더니 급기야는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는 여객기를 납치하여 4만명 이상이 입주하고 있는 건물을 공격했다.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더러운 짓이었다. 인류는 지금도 더러운 귀신에 미혹되어 분뇨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사 59:2-3).
인류는 지금 하나님을 떠나 더러운 세상 속에서 살면서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 더러운 냄새가 나는 자신이 너무 싫어서 자신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자신의 심장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다. 마치 거라사의 광인이 돌로 자신의 몸을 때리고 찢듯이 전쟁은 자학의 광시곡이다. 첨단의 무기로 적을 공격하고 옳은 사상을 위해 싸운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바르지 않다.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사 59:7-8).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로부터 군대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다. 전쟁의 피로 얼룩진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들이 멀리서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달려가 만나면 그분은 군대 귀신을 물리쳐 주실 것이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그러나 군대 귀신은 말한다.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그래서 전쟁은 계속된다. 마침내 모든 나라의 왕들과 군대는 아마겟돈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멸망의 탄두를 발사할 때 그분은 울고 계실 것이다.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創傷)을 인하여 망함이라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렘 14:17-18).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아무리 훌륭한 명분을 내세워도 전쟁은 더러운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