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너를 위해 기도하였노라(1)-유브라데에 던져라

은바리라이프 2008. 6. 24. 17:53
너를 위해 기도하였노라(1)-유브라데에 던져라
아라랏 산의 기슭에서 발원한 유브라에 강은 터어키의 우르파를 돌아 시리아의 락카를 지나고 다시 이라크 땅을 관통하며 2,848 ㎞를 흘러내리다가 페르샤 만으로 흘러들어간다. 성경에 보면 유브라데는 이스라엘 사람들과도 끈질긴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유브라데는 본래 에덴 동산에서 발원한 네 개의 큰 강들 중의 하나였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창 2:10-14)
그러나 노아의 때에 큰 홍수와 함께 지각 변동이 있었다.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시 104:8)
그러므로 홍수 때에 에덴 동산이 어디로 갔는지 또 거기서 발원한 네 개의 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알 수 없다. 해발 5,165 m의 아라랏 산도 물 속에서 솟아 올라왔을 것이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자손들은 산 아래로 내려와 살면서 그 땅에 나란히 흐르는 두개의 강을 유브라데와 힛데겔 즉 티그리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유브라데 강변의 시날 땅에 큰 탑을 쌓기 시작했다.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하나님은 사람들의 언어를 다르게 하여 공사를 중단시키셨고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노아의 10대손인 데라는 발리 강 상류의 하란 지역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데라는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창 11:26)
그의 부친은 나홀이었고 둘째 아들의 이름도 나홀이었다. 나홀이란 지명이 하란 지역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데라는 어떤 사정이 생겨 아브람과 하란만 데리고 유브라데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하류의 우르 지역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나 우르에서 세째 아들 하란이 죽자 그는 다시 아브람 내외와 손자 롯을 데리고 하란으로 돌아온다. 바로 그 때에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그가 아내와 조카 롯 등을 데리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자손에게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 15:18)

하나님은 그가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될 것이라며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꿔주었다. 그러나 다시 그 약속을 4백년이나 연기하는 바람에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그동안 애굽에 내려가 호된 고생을 했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를 방황하면서도 그 조상 아브라함이 받았던 약속을 기억했다.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하셨나니”(신 1:7)
유브라데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긴 강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속해서 ‘큰 강’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결국 그들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고 열 두 지파의 왕이 된 다윗은 유브라데까지의 거의 모든 땅을 점령했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브라데 강 가에서 자기 권세를 펴고자 하매 다윗이 저를 쳐서 하맛까지 이르고”(대상 18:3)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사람들의 신을 섬기다가 북과 남으로 분단되었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유브라데 강을 건너온 앗수르에 멸망당했으며 그 후에 남왕국 유다도 역시 유브라데 강 저편에서 내려온 바벨론에게 멸망당했다. 이스라엘과 유다를 잃고 통분한 하나님은 그 시대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불러서 말씀하신다.

“너는 이 책 읽기를 다 한 후에 책에 돌을 매어 유브라데 하수 속에 던지며 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앙 내림을 인하여 이같이 침륜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들이 쇠잔하리라 하라.”(렘 51:63-64)

바벨론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고생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브라데 강 가에 앉아서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언한대로 바벨론은 페르샤에 멸망당했고 페르샤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 126:1)
그들이 잡혀서 끌려갈 때에는 다메섹과 하맛을 거쳐 바벨론으로 들어갔으나 70년만에 해방이 되자 사막을 가로질러 지름길로 달려갔다. 그 길이 오늘날 암만과 바그다드를 잇는 1천 ㎞의 사막길이다. 단숨에 사막을 가로질러 본토로 돌아간 그들은 파괴된 성전을 다시 세우고 허물어진 성들을 보수했다. 그러나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지나친 율법주의로 치달았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스 10:2-3)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세가 받은 십계명 외에 613개의 금법과 규례가 생겼고 이를 어기는 자를 돌로 때려 죽이거나 공동체에서 추방했다. 율법은 사람 위한 규범이 아니라 압제의 도구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유다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제일 먼저 부딪힌 것은 바로 이 율법주의의 장벽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것이 안식일 준수에 관한 문제였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마 12:2)
안식일에 예수의 제자들이 밀밭에서 이삭을 잘라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비난하자 예수는 그들에게 대답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의 세력에 협력하는 사두개파와 저항을 주장하는 바리새파로 갈라져 있었다. 예수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눅 19:41)
그는 예루살렘의 마지막 날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눅 19: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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