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蚩尤)의 분노 B.C 2380년경
하나님에게 반역하는 바빌론 왕 니므롯의 전횡을 보다 못한 노아의 장남 셈은
니므롯을 이집트를 순행하는 사이 그를 잔치에 초대하여 이집트의 72명의 판관들과
비밀리에 모의하여 군사 수백,수천으로 니므롯을 포위하여 죽인다.
그는 니므롯이 자신의 조카임에도 토막을 내 죽여 버리고 그 토막들을 중동의 모든 왕들에게
보내어 경고로 삼는다.
셈이 민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던 제왕을 죽여 버리자 당시 그는 공포 그 자체로
여겨지게 된다.
고대 중국에도 그 이야기가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져 전쟁의 신 치우(蚩尤)로 불리게 되며
이집트에는 악의 신 세트(Seth)로 불리게 된다.
(중국 한나라 시기의 산동의 무덤의 벽화에 그려진 치우의 모습)
앗시리아의 임금인 앗수르(헌원,환인)를 죽이고 앗수르처럼 가장하여
앗시리아를 장악한 니므롯은 환웅이 떠난 이후에도 바벨탑 공사를 멈추지않으니
니므롯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드디어 일어나 니므롯을 단죄하였다.
니므롯은 중국 신화에선 황제 헌원(黃帝 軒轅)을 죽이고 헌원 행세를 한 사냥꾼 '예'로 나오는데.
그 가짜 헌원과 싸운 세력을 동방의 기록들에서 치우(蚩尤)와 72명의 형제라고 기록하고있다.
(漢學堂叢書 - 龍魚河圖,述異記)
중국 신화에 따르면 치우와 72명의 형제는 가짜 헌원과 수차례 전쟁을 하여 헌원의 죄악을
꾸짖었다고한다.(한국의 기록인 환단고기,규원사화에선 치우가 이겼다하고
중국의 기록에선 반대로 헌원이 이기고 치우를 죽여 토막냈다고 진술)
(치우와 헌원의 전쟁을 그린 중국의 옛 그림)
치우(蚩尤)의 모습과 업적에 대해 중국의 여러 기록은 그가 옛날의 천자(天子)였고(史記 五帝本紀 注)
또 그는 구려(九黎)라는 나라의 임금이며(戰國策,史記 五帝本紀 正義 引 孔安國,漢書 藝文志)
쇠를 잘 제련하여 각종 무기를 만들고
(黃氏逸書考 - 遁甲開山圖,管子,太平御覽,世本 作篇,路史,呂氏春秋)
소의 두 뿔이 달린 철과 구리의 투구를 써서 전장에 나서니 헌원의 무리들이 두려워하며 달아났다고
전한다.(述異記,漢學堂叢書 - 龍魚河圖,太平御覽)
그리고 구름과 안개를 부리고 비와 바람이 불도록 하늘에 기도하여 그 위세가 대단했다고도
한다.(路史,述異記,太平御覽,古今注,山海經)
중국 신화에 따르면 그는 거인족속인 '과보족(當父族)'을 거느리고 헌원과 싸웠다.(山海經)
또 그의 출신 성분에 대해 기록에 따라 그가 신농(神農)의 후예이고 소호와 함께
금속을 제련했다고 하는데.(路史,黃氏逸書考)
말하는데. 소호와 신농이 동이족이므로 치우 역시 동이족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서방의 이집트에서도 이와 유사한 신화가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을 말해보자면
옛날. 이집트에는 성군(聖君)이 있어 문명을 발전시킨 군주가 있어 그의 이름을 '아사르'라고 했는데.
그리스인들은 '오시리스'라고 부른다. 그는 포도주의 신이며 풍성한 곡식의 신이다.
이는 우리민족의 시조인 헌원의 이름인 '앗수르'와 유사한데.
그는 그의 동생인 세트와 싸우다가 세트와 세트를 따르는 72명의 재판관들에게 사로 잡혀
토막이 났고 후에 오시리스의 아내인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토막난 시신들을 모두 붙여서
자신의 몸에서 호루스로 환생시켰다고 한다.
(오시리스를 처형하는 세트와 세트의 부하들)
세트는 사막에 산다고하는데. 이는 치우가 오곡(五穀)을 먹지않고 모래와 돌을 먹는다는 기록과의
유사성을 볼 수 있고(漢學堂叢書 - 龍魚河圖,太平御覽-龍魚河圖,軒轅本紀)
그리고 세트는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데. 치우의 깃발은 붉은 깃발이고 치우의 무덤에서
붉은 기운이 솟아오른다는 기록과 유사하다.(皇覽)
또 세트는 이집트에 아시아인(황인종)인 힉소스인들이 와서 힉소스 왕조를 세웠을 때
힉소스인들은 세트를 그들의 신으로 여긴 점으로 보아 세트는 셈족 출신의 사람이다.
또 세트가 72명의 판관과 함께 그의 적과 싸웠다는 점은 치우와 완전 판박이인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 볼 점은 중국의 기록이 치우가 헌원에게 잡혀 토막이 났다고 거짓말로
기록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이집트의 신화는 세트가 오시리스를 토막냈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고대 파피루스 그림. 왼쪽이 오시리스. 오른쪽이 매의 얼굴을 한 사람이 호루스)
그런데 이런 유사한 이야기는 가나안(페니키아) 지역에도 나타나는데.
가나안에선 오시리스에 해당하는 주신(主神)이자 오시리스와 마찬가지로
포도주와 풍성한 곡식의 신인 바알은 그의 적인 '모트'에게 패배하여 죽으나
그의 아내 '아나트'의 분투로 다시 부활하여 모트를 패배시켰다고 나온다.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를 보면 바빌론의 왕 '두무지(탐무즈)'가 저승의 쿠르(Kur)라는
세력과의 대결에서 패해 죽어 저승으로 끌려가는데. 두무지의 아내인 이쉬타르가
두무지를 구해내 부활시켰다고 나온다.
두무지 역시 풍성한 곡식의 신이고 그의 누이는 포도주의 여신으로
바알,오시리스와 그 속성이 유사하다.
유대인의 전승에는 두무지(탐무즈)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나온다.
칼데아어의 모든 학문에 깊은 조예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유대인 학자 마이모니데스(Maimonides)가 전하는 이야기이다.
"탐무즈라고 하는 거짓 대언자가 한 왕에게 일곱 별과 12궁도의 열두 궁(宮)을 경배해야만 한다고 선포하였다.
그러자 왕은 그를 무시무시한 죽음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그가 죽던 날 밤 전 세계의 모든 형상들이 땅 끝에서부터
바빌론에 있는 신전으로 몰려들었고 하늘과 땅 사이에 걸려 있었던 태양의 위대한 금형상 앞에 서 있었다.
그 태양의 형상이 탐무즈에게 일어날 일을 말하자 모두 엎드렸다. 형상들은 밤새 울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 후 아침에 각자 땅 끝으로 자기가 놓여 있던 신전으로 떠나갔다.
이리하여 매 년 담무즈의 달 첫 째 날에 그를 위해 애도하고 애곡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알렉산더 히슬롭의 '두 개의 바빌론' , More Nevochim, p. 426.)
(수메르의 유물에 그려져있는 포박되어있는 두무지)
이런 유형의 유사한 신화,전설들은 고대 중동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이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고대의 왕 혹은 신이 누군가와 전쟁 혹은 다퉈서 살해당하고
그의 아내가 살려줬다는 내용들이다.
아무튼 이렇게 여러 신화,전설간에 일치하는 점이 보이는건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방의 역사학자인 '알렉산더 히슬롭'은 그의 저서 '두 개의 바빌론'에서
이 신화들을 모아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렸는데. 그 해석의 요지는 이렇다.
"오시리스는 니므롯이며 오시리스를 죽인 세트는 노아의 장남 '셈'이다. 세트와 셈은
모두 동일한 뜻을 가지고있음이 어원 연구를 통해 드러난다.
세트는 창세기에 아담의 아들의 이름이자 노아의 조상의 이름으로 나오는데.
노아의 장남 '셈'은 하나님을 경건히 섬긴 '세트'의 전통을 이어받았기에
그는 이집트 신화에서 세트라 불렸다.
셈은 니므롯의 죄악을 징벌하기위해 이집트의 72명의 재판관과
의기투합하여 그를 잡아서 죽이고 토막내게하여 그 몸 조각들을 니므롯의 바빌론 제국에 속해있는
영지로 보내게하여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았다."
알렉산더 히슬롭의 해석이 타당한건 먼저 성경에 보면 사사기의 한 이스라엘 지파의 한 부부에 관련된 이야기나
이스라엘의 사울 왕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데.
한 지파의 한 남자의 아내가 어떤 지파의 사내들에게 강간당해 죽자 남자는 분해서 아내의 시신을
토막내서 조각들을 이스라엘의 모든 부족에게 배달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부족으로 하여금 죄지은 지파를 벌하게했고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에 오른 뒤 백성들의 신임을 잘받지못했는데. 이웃 나라가 침공해오자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의분(義忿)이 일어나 소를 토막내서 조각들을 모든 지파에게 전달하여
징병을 하지않으면 이렇게될것이라고 경고했다.
즉 유대인들은 어떤 죄지은 세력들을 벌할 때 어떤 걸 토막내서 그 조각들을 각각 부족들에게 배달하여
경고하는 동시에 싸울 것을 독촉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인데.
옛날의 전설적인 임금 혹은 영웅,신이 어떤 존재에게 살해당해 토막당한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적혀있는 이스라엘인의 전통적 관습과의 관련성을 살펴볼 수 있다.
중국의 기록에 사냥꾼 '예'로 기록된 니므롯은 그의 제자에게 불의의 암살을 당하는
모습이 나와있다. (孟子맹자) 또 논어(論語)는 그가 비명횡사를 당했다고 전한다.
이로 보아 니므롯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해 토막당한건 사실인듯하다.
그러면 치우 혹은 세트로 표현된 그 누군가는 누구인가? 치우에 대해 중국 기록은
그를 천자(天子)라 적고 동이족 출신이라 기록한다.
니므롯 당시에 동이족 즉 셈족 출신으로서 하늘의 아들이라 불릴 정도의 위치를
가진 인물은 셈족의 조상이 되는 '셈' 밖에 없다. 당시에는 수명이 길었기에 셈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집트에서 그를 '세트'라 적는 이유는 세트라는 이름은 본래 아담의 셋째 아들인
'세트(셋)'의 이름으로 노아의 조상이며 모든 장자(長子)의 시초가 되는 인물이다.
노아의 장자인 셈은 신앙심이 대단하여서 셋이란 이름으로도 당대에 불리웠을
가능성이 있다.
니므롯은 사사로이는 자신의 조카이지만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께 반역했으므로
셈은 더이상 그 반역을 묵과할수 없었다.
더욱이 셈은 오랜 수명을 누리며 그의 후손들이 우바이드,수메르를 세우며 숱한
죄를 저지르는걸 보며 조용히 참고 보고만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일어나서 니므롯을 단죄하자 세상은 놀라서 두려워 떨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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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 천왕께선 역시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신자였군요..그러니 그런 대제국을 건설했겠지요 환국! 아시아 전역을 차지했던 환국..아... 수메르의문명이 즉 우리 직접적 조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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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원이 죽인 것은 치우천황이 아닌 비장 치우비입니다. 치우는 탁록전에서 한 번도 패한적이 없습니다. 중국측 기록은 과장이 심하여 믿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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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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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안 족 계열인 게르만 신화에 티우라는 신이 있는데 전쟁 신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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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지 천황은 배달국의 천제인데 환웅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연대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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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웅의 할아버지가 되십니다. 셈(소전,준,치우)-앗수르-환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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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가 환인이니, 환인의 아버지 셈입니까? 배달국 14대치우천황은 BC 2749년에 오셔서109년간 배달국을 다스리다가 기원전 2599년 1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셈은 BC2700년 앗수르는 BC2380. 환인을 황제로 보면 환인의 아버지는 대인국의 왕 소전, 그러면 대인국은 배달국? 대인국의 위치는 심양 부근 그러면 셈은 심양 부근에 살면서 홍산 문명의 주인공? 소전의 아버지는 복희, 복희는 노아이며 동이족이며 중국의 시조, 그러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어디? 황하 문명 BC 4000 메소포타미아 BC 5000 홍산 요하 문명 BC 5000~6000 년대가 너무 틀리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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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말한 그 치우천황의 연대는 환단고기의 삼성기에 나오는것입니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황하 문명 요하문명 홍산문명의 연대는 서양 학자들이 만들어낸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해
측정된것인데. 이건 연대가오래될수록오차가 많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
환단고기를 제외한 다른 문헌들 즉 규원사화 단기고사 부도지 삼국유사 대동사강에선
환인은 1명 환웅은 1명으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삼성기의 치우천황 연대는 잘못된것입니다. -
http://www.youtube.com/watch?v=jQxWLeX-vMc
다의발 환웅(배달국5대 환웅)-복희(노아)-셈(치우 배달국14대 환웅)-앗수르 환인(환웅 아버지)-환웅-단군 -
환국의 위치- 천해(지중해) 동쪽, 흑수(흑해)가 있다. 설산(아리랏산)이 있다. 파나류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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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류=설산=백산=아이사타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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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류는 파미르고원입니다. 고대 아시아어로 파마루(마늘 나라)란 뜻입니다. 설산과 파나류는 다른 곳입니다.학문하는 기본 자세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탄소측정 원리와 방법에 대해서 연구해 보셨나요? 난 연구해 본 사람입니다. 연구한 사람은 그런 이야기 못합니다. 탄소측정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실제 연대를 정확하게 알고있는 사물을 측정하면 정확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고고학에서는 의심안합니다. 자신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에 맞지 않는 것은 모조리 부인하는 태도는 올바른 학문의 자세가 아닙니다. 소설을 쓴다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민족의 거대한 역사를 그런 좁은 시각으로 보면 안됩니다.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도 더 연구해 보지요. 다음에 또.... 끝으로 저는 청사,중국 25사,양사,수산집,고사변,벽암고사고,중국민족사,중국사전사화,사기,중국고금지명대사전,산해경,강희자전,춘추,예기,규원사화,부도지,환단고기,삼국유사,삼국사,일본서기,만엽집,등 한,중,일 역사서는 물론 아랍의 서적까지 거의 다 봤습니다. 본 결과 환단고기 또한 웅혼한 배달의 역사를 다 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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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류는 하늘 천天의 고어입니다. 그렇게 환단고기에도 나옵니다. 일명 천산天山인데.
천산은 중앙아시아에도 있지만 본래 천산은 아라랏산입니다. -
파미르고원은우리민족이 지난 지역이지. 그 곳에 거대한 문명이 있을수없습니다. 그곳은
유목민족들이 있던 곳일뿐입니다. 그리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정 믿고싶으십니까?
그것은 서양의 실증사학에서 나온겁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믿자면
우리 조상들은 구석기시대 즉 b.c 70만년에서 b.c 7천년에 이르기까지 뗀석기만 쓰고
간석기는전혀쓰지못했습니다. 이 말은 즉 뗀석기는 돌을 서로 부딪혀 떼어내서 떼어내진상태로
쓰는 원시적 석기이고 간석기는 그 뗀석기를 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수십만년동안
석기 하나 제대로 갈지못했습니까? -
그리고 b.c 7천년에서 b.c 2천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은 빗살무늬토기를 줄곧
써왔는데. 같은 토기 무늬 양식이 수천년에 이르도록 변하지않았다는건 말이 안되지요.
더군다나 서양 실증사학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원숭이(유인원) 후손입니다.
우리 조상들을 멍청이로 만드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그리고 서양의 실증사학.
그리고 이 사학을 우리나라에 들여온 일본의 식민사학은 모두 쓰레기 학문들입니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은 연대가 오래될수록 그 오차가 심하기때문에 b.c 2000년 이후의 유물들에서
연대측정이 잘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에 한해서만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리고 님이 말하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연구하셨다는건 그것이 옳다는 방면만 연구한것일뿐
옳지않다는 주장에 관해서 깊이 탐구해보신적은 없지않으십니까. -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이 과연 옳다면 복희씨는 소위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신석기시대를도입한
사람인데. 복희씨의 연대는 b.c 2700년입니다.
그리고 복희씨의 조상인 수인씨는 연대가 복희씨로부터 얼마 멀지않음에도
불을 발견했다고합니다. 하지만 이의 연대도 b.c 4000년을 넘지못하죠.
하지만 방사성탄소연대측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구석기시대는 무려 b.c 70만년까지 올라갑니다.
(국사교과서)
그리고 우리 문헌과 중국 문헌 어디에 우리 조상이 원숭이 혹은 유인원이었다는 언급이 있습니까? -
청사는 아직 밝혀지지않은 문헌이고 고사변은 중국의 근대시대 사학자가 옛 역사를 자신의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지. 사료가 아니며 더군다나 그 사람은 하나라 등 상고시대 역사를 믿으려하지않는 실증주의적
사학자입니다. 중국민족사,중국사전사화 역시 중국 근현대 사학자들의 책입니다. -
삭제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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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지요. 이스라엘은 우리민족과 같은 셈(소전,준)의 후예입니다.
-
정말 대단한 내용입니다. 지금까지의 사관을 완전히 뒤엎는군요.
그렇지만 가능성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런 내용들을 어떻게 찾아내었는지 궁금합니다.
역사에 대한 구미가 다시금 확 댕기네요. 생큐^^ -
감사합니다. ㅎㅎ
-
동방과 서방의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고 이전 연구자들의 내용도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알렉산더 히슬롭의 두 개의 바빌론,김성일 장로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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