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화왕(花王)의 제자들

은바리라이프 2008. 6. 6. 14:36
제목 : 화왕(花王)의 제자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4-03-05
백과 사전을 찾아보면 무궁화는 아욱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그 학명은 ‘Hibiscus Syriacus’ 라고 하는데 이는 무궁화의 원산지가 수리아(Syria)지방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수리아’는 알렉산더 대왕 이후 네 명의 후계자 중 하나였던 셀류쿠스 왕조의 영토를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시리아와 레바논과 이스라엘 등의 지역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무궁화는 내한성 식물로 남만주에서도 자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 꽃이 환웅의 아들 단군이 나라를 열었던 아사달 즉 하얼빈이나 성스러운 샘인 천지(天地)가 있는 백두산에서 피기 시작한 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꽃의 원산지가 근동 지역의 수리아라고 한다면 도대체 누가 그 꽃을 수리아에서 한국까지 가져왔던 것일까?
동방족 또는 동이족으로 불리운 한국 민족이 아라랏 산을 넘어서 러시아 평원과 중앙 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지나 아사달까지 이동해온 것으로 본다면 그들이 메소포타미아를 떠날 때 그 곳에 남기로 한 형제들과 훗날의 재회를 기약하면서 그 꽃씨를 가지고 떠났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 꽃은 약속의 꽃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무궁화의 학명은 ‘Hibiscus Syriacus’인데 오늘의 서양 사람들은 이 꽃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민중서관’에서 나온 한영사전을 찾아보면 이 무궁화는 영어로 ‘The rose of Sharon(샤론의 장미)’라고 되어 있다. 또 이 출판사의 한영 사전에도 ‘rose’의 난에 역시 ‘rose of Sharon’이 나오는데 그 뜻은 무궁화라고 되어 있으며 성경에 나오는 ‘샤론의 장미’가 이 꽃이라는 설명도 나와 있다.
“나는 샤론의 수선화(The rose of Sharon)요 골짜기의 백합화(The lily of valleys)로구나”(아2:1)
이것은 바로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 왕의 사랑을 노래한 시가인데 인류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찬송가 89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샤론의 장미로 표현하고 있다.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이 ‘샤론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7백년 전부터 이미 선지자를 통해 예고된 것이다.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를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사35:2)
무궁화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꽃인 샤론의 장미라고 할 때 그 하얀 꽃잎은 그의 순결을 의미하며 안으로 들어갈수록 붉어지다가 한 복판에서 새빨갛게 물드는 화심은 그의 고난과 보혈을 상징하는 것이고 노란 꽃대는 황금의 면류관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샤론의 장미가 아라랏 산 아래에서 헤어진 인류의 재회를 기약하는 약속의 꽃이라면 왜 그 약속의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샤론의 장미가 아라랏 산 아래에서 헤어진 인류의 재회를 기약하는 약속의 꽃이라면 왜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바벨탑 사건 때문에 인류가 이별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나 그분과 대적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인류가 다시 한 형제로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함께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구원’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인류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므로 그를 상징하는 샤론의 장미야말로 모든 인류를 한 형제가 되게 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게 하는 귀환의 열쇠였던 것이다.
한국의 선조들은 이 샤론의 꽃씨를 가져와 그들의 땅에 심고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이 꽃을 외국에까지 가져다가 심었다. 1993년 일본의 나라시 교육위원회는 귀족 유적지의 발굴 조사 도중 나라시대의 적토층으로부터 무궁화의 꽃가루 7개를 검출하여 이 시대에 한반도에서 온 이주민들이 무궁화를 심었던 것으로 밝혀냈다(93.7.10 조선일보).
왜 한국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이 꽃을 그토록 사랑했으며 화랑의 머리에까지 그 꽃을 꽂아 주었을까? 신라 신문왕 대의 설총(薛聰)은 고승 원효대사의 아들로서 그도 중이 되었으나 나중에 갑자기 불문과 결별하는데 ‘삼국사기’의 열전(烈傳)은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한 가지 신비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어느날 왕이 그에게 말했다.
“오늘은 내 마음이 울적하니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오.”
“옛날에 화왕(花王)이 처음으로 온 이야기를 신이 듣사오매 이를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막으로써 보호하여 삼춘 가절에 예쁜 꽃을 피우니 그 아름다움이 모든 꽃보다 뛰어나서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선한 영기(靈氣)와 고운 향기를 풍기었다 합니다.”
이 ‘화왕’은 신라 사람들이 꽃 중의 꽃으로 여겼던 무궁화 즉 샤론의 장미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986년 경북 영풍군 평온면에 있는 ‘분처바위’에서 ‘야소화왕’(耶蘇花王)이라는 음각명분이 발견되었다고 보고되었다. 물론 ‘야소’는 예수의 한자 표기였다.
“이와 같이 분처바위는 이 바위의 명문을 통하여 고대 기독교의 전래와 화왕(花王)이 야소(耶蘇)임을 증명하고...”(유우식 ‘고구려 석조유적에서 발견된 고대기독교 자료’ 95. 2. 25. 크리스천 신문)
그러므로 화랑(花郞)이란 바로 화왕의 영을 받은 제자이며 그것은 단군의 때로부터 내려오는 거듭난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화랑과 같은 제도는 신라뿐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에도 모드 있었고 은(殷)의 정인(貞人) 그룹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며 이순신 장군의 ‘구사즉생(求死則生)’ 즉 십자가의 정신으로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읽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이 샤론의 장미는 설총의 말대로 푸른 막속에 숨겨져 있었다. 해동의 삼국이 들여오기 시작한 불교가 이 무궁화의 나라를 점령하기 시작하자 구원의 복음은 화랑 정신과 풍류의 신앙과 함께 오랫동안 지하에 숨어 버렸고 오직 무궁화만 방방곡곡에 피어 구원의 소망으로 피어 있었는데 또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면서 이 꽃을 말살하려 했던 것이다.
황성신문의 사장이었던 남궁억 선생은 한일합방이 되자 강원도 홍천의 보울리로 내려가 모곡 감리 교회와 모곡 보통 학교를 세우고 무궁화의 묘목을 심어 전국의 교회로 보내는 한편 ‘무궁화 동산’이라는 노래를 만들어서 보급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남궁억의 무궁화 살리기 운동은 그 열매를 맺어 지금 전국에 약 3천만 그루가 매년 그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샤론의 꽃 예수 길이 피소서....주의 영광 이 땅 위에 가득해 천하 만민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영광 돌릴 때까지”(창송가 89장)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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