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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왕과 장사꾼의 사이

은바리라이프 2008. 6. 6. 15:19
제목 : 왕과 장사꾼의 사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4-03-15
하나님께서 처음에 함의 아들인 가나안에게 ‘장사’의 일을 시키셨을 때에는 그것이 본래 ‘봉사(奉仕:service)’하는 일이었다. 즉 장사라는 것은 물건이 남는 곳에서 그것을 받아다가 물건이 모자라는 곳에 가져다주고 그 사이에서 생활비를 얻어 쓰는 직분이었다. 동방의 기록에서도 신농의 때로부터 이미 장사가 시작되었다고 나온다.
“축융(祝融)이 시장을 만들었고......”(서량지 ‘前揭書’)
축융은 곧 신농의 신하로 불을 담당한 자였다. 이것은 구리와 철을 불로 녹이고 달구어 기계를 만들었던 함의 집안에서 그것을 농산물과 바꾸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서량지는 상업도 동이족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상업은 동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同上)
당시의 장사는 물건을 나르고 바꾸는 물물 교환의 형태였는데 동이는 본래가 기마민족으로 말과 수레를 잘 다루었으므로 원근 각지에 물품을 운반하는 일을 맡아 했을 것이다. 또 물품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으로는 곡물이나 가축 또는 직물이 화폐 대신으로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또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어디서 물건이 남고 어디서 모자라는가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뛰어난 능력이 우선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장사의 직분을 맡긴 일꾼들에게 그러한 능력을 주시는데 이 ‘능력’ 때문에 장사꾼이 교만해지면 봉사보다는 ‘돈’을 버는 일에 열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천부적인 장사꾼 ‘가나안’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 것이 이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었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퍼뜨려 사람들의 사치와 허영을 조장해야 하는데 그 점이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즉 모든 문제는 ‘일만 악의 뿌리(딤전6:10)’인 ‘돈’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본래 물물 교환의 시대에는 물건 자체가 가치의 척도였으나 장사꾼의 활동 범위가 커지면 주조된 화폐 즉 ‘돈’이 나타나게 된다. 세계 최초로 그런 화폐를 만들어 낸 것은 역시 가나안 민족이었다.
그들은 은괴를 일정한 모양으로 주조하여 화폐로 사용했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가나안의 헷 족속에게서 땅을 살 때에 은 4백 세겔을 지불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4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창 23:16)
중궁에서 주조 화폐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춘추, 전국 시대부터였다. 나라들이 난립하고 신앙이 허물어지면서 장사는 ‘치부’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장사꾼들이 여러 나라들 사이로 왕래하며 교역하기 위해서는 가치의 기준이 되는 ‘돈’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어져 나도는 주전들을 하나로 통일한 것은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진의 시황제였다. 그는 원형의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있는 주화를 채용해서 화폐를 통일햇다. 시황제가 이렇게 화폐를 통일했던 정책의 이면에는 당시의 뛰어난 장사꾼이었던 여불위(呂不韋)가 있었다.
“여불위는 양책의 큰 장사꾼이다. 그는 여러 곳을 다니며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천금의 재산을 보았다”(사기 ‘여불위 열전’)
진의 소왕 때 태자가 죽었는데 그의 둘째아들 자초는 서모의 눈밖에 나서 조 나라에 인질로 가 있었다. 장사꾼 여불위는 이미 자신의 씨를 밴 애첩을 자초에게 주고 그를 재력으로 도와서 진왕이 되게 했다. 자초는 왕이 되자 여불위를 불러 승상을 삼았으니 장사꾼인 여불위의 투자는 확실한 열매를 거둔 셈이었다.
자초 곧 장양왕이 죽자 장사꾼 여불위의 씨인 정이 왕위에 올라 스스로 시황제가 되었고 여불위는 상국(相國)이 되어 통화 개혁을 실시했으며 그는 본격적으로 서역의 장사꾼들을 끌어 들였다. 이때 서역에서 들여온 상품들은 모두 호(胡)자가 붙었는데 호마(胡麻), 호도(胡桃), 호초(胡椒)등이 그것이었다.
심지어는 서역의 몸 파는 여인들이 들어와 배꼽을 들어낸 반라의 모습으로 음란한 춤을 추었는데 이 배꼽춤은 호접무(胡蝶舞)라고 하였다. 당시 노생이라는 자가 조선에서 구해다 바친 ‘진록도서’라는 책에는 ‘호가진을 망하게 하리라(亡泰者胡也)’는 대목이 나와 있었다.
진시황제는 이 호를 동이족으로 해석하여 이 때부터 만리장성을 쌓고 동이족의 침입에 대비했는데 ‘사기’의 진시황 열전에 보면 정현(鄭玄)은 그것이 황제의 아들인 호해(胡亥)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진의 서역 즉 가나안의 장사꾼들이 들여온 호풍(胡風) 즉 음란한 풍습에 시황제 자신이 빠져버림으로써 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장사꾼들의 활약은 한(漢)의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장사꾼이었던 공근(孔僅)과 상홍양(桑弘洋)은 무제에게 건의하여 소금과 철과 술의 전매제를 실시하게 함으로써 막대한 상권을 거머쥐었다. 이렇게 장사꾼들은 강력한 통치자가 나오면 그에게 붙어서 국가 경제를 주도하고 난세가 되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여 이득을 취했던 것이다.
또 장사꾼들은 상품을 호송하기 위하여 표국(鏢局)이라는 경호(警護)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무예의 고수들을 채용하여 사람과 돈과 상품을 호송하는 이 표국 조직은 장사꾼의 사병이 되어 그들의 세력을 왕들의 세력만큼이나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장사꾼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정치의 표면에 나서지 않고 배후에서 정치 세력을 이용했던 것이다.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商賈)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계18:3)
이렇게 치부한 대륙의 장사꾼들이 노리고 있는 거대한 시장이 있었다. 즉 동쪽에 있는 ‘군자의 나라’요 하나님을 섬기는 ‘후례대의’의 세 나라였던 것이다. 장사꾼들이 볼 때에 그 시장은 크지만 그들은 결코 사치하지도 않았고 음란하지도 않았으므로 장사의 가능성이 없었다. 장사를 하려면 그들의 신앙을 무너뜨려서 서로 다투는 나라로 만들어야 했다.
그 때 해동의 삼국은 신앙의 지도국인 가야를 중심으로 형제와 같은 우의를 튼튼히 하고 있었다. 특히 신라의 유리 이사금은 수로왕비가 아유타국에서 파사(婆娑) 즉 페르샤의 돌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문양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 아들의 이름을 파사라고 하였다. 지금도 수로왕릉의 납릉정문에 남아 있는 떡 그릇과 물고기 두 마리의 그림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상징임에 틀림없다. 특히 물고기는 홍수의 때로부터 구원의 상징이었고 그리스도인의 신분 표시였으며 ‘가야’라는 이름 자체가 인도의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라는 뜻이었다.
파사 이사금은 수로왕을 매우 존경하여 AD 102년 자국내의 부족 간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그를 초청하여 가르침을 받았을 정도였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며 샤론의 꽃인 화왕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온 해동의 아름다운 세 나라가 어째서 서로 싸우게 되었으며 서로 배신하게 되었던 것일까? 그 뒤에는 바로 중국 대륙을 타락하게 만들었던 ‘장사꾼’들이 암약(暗躍)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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