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다시 들어온 여자

은바리라이프 2008. 6. 6. 15:32
제목 : 다시 들어온 여자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4-03-19
예수께서 밧모 섬의 요한을 통해 편지를 보낸 일곱 교회 중에서 에베소 교회는 사도 시대의 교회를 상징하고 서머나 교회가 박해시대의 교회를 예표한다면 버가모 교회는 로마 황제의 공인과 지지를 업은 교권 시대의 교회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버가모 교회에 대하여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당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다고 경고한 예수께서는 다시 두아디라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신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2:20)
두아디라는 버가모에서 동남쪽으로 약32km 떨어진 곳에 있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로마와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상업 도시였다. 잘 조직된 상업 조합이 있었던 두아디라의 주력 상품은 자주 즉 붉은 색 옷감이었고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을 돌보아주었던 자주 장사 루디아(행16:14)는 바로 이 두아디라 출신이었다.
두아디라에도 페니키아의 두로와 마찬가지로 염색 공업이 발달 되어 있었다. 다만 두로에서 사용하던 붉은 색 염료는 크레타 섬의 뿔고둥으로 만든 것임에 비하여 두아디라의 붉은 색 옷감을 염색하던 원료는 꼭두서니 나무의 뿌리에서 추출한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두아디라의 그 이름 자체도 두로의 이름과 어떤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페니키아의 두로는 BC 573년 바벨론에 점령당했고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을 받았으며 다시 BC 20년에 로마에 편입되어 몰락당했으나 두로의 장사ㅑ꾼들은 ‘거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상권을 장악했다. 그들은 바벨론의 시장을 독점했고 페르샤의 시장을 휩쓸었으며 두로의 여신 아스다롯의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으로 헬라를 점령하고 베누스가 되어 로마를 품에 안았다.
그런 두로의 장사꾼들이 거대한 새 세력으로 등장한 로마 교회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 날 북 이스라엘의 왕비로 들어와(왕상 16:31) 가나안의 신들을 끌어들여 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했던 두로 왕의 딸 이세벨의 이름이 두아디라 교회에 다시 등장하는 것도 당연한 과정으로 보인다.
이세벨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두아디라 교회에 들어가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요한은 그녀가 성도들을 꾀어 ‘행음하게’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했다고 기록해놓았다. 일곱 교회가 교회사를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학자들은 이 두아디라 교회의 모습이 로마 교회가 마리아에게 직접 기도하기 시작했던 AD 600년 이후의 교회사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이 기간은 교회가 호화로운 성당의 건축에 전념하던 때였다. 아마도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한 교회 지도자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어했던 다윗의 마음과 같은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삼하7:2)
두로 왕이 돌로 지어준 왕궁에 살면서 ‘다듬은 돌로 단을 쌓지 말라’ (출20:25)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 버렸던 다윗처럼 강력한 교권을 쥐게 된 로마 교회의 지도자들도 그 말씀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로마는 물론이고 유럽 각지에 거대한 성당들이 건축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마다 경쟁적으로 건축을 시작하다보니 갑자기 많은 석공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기회를 타고 활약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을 주도했던 가나안의 석공들이었다. 솔로몬의 때로부터 형성된 이들의 석공 조합은 각국의 성당 건축에 참여하면서 이 교권 시대의 경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가나안 사람들은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장사의 재능을 받은 천부적인 ‘장사꾼’들이었다. 마치 저 두로의 왕이 다윗의 왕궁을 지어 주고 성전의 건축을 지원했던 것처럼 두로의 장사꾼들은 교회로 몰려 들어와 성당의 건축을 주도했다. 그러나 성당을 건축하는 교회들은 막대한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교회들은 마침내 돈벌이를 시작했던 것이다.
건축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교회들이 시작한 ‘장사’가 곧 순례객의 유치였는데 이 때부터 로마 교회에는 소위 연옥의 교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례를 받고 교회의 사역에 동참한 사람이라도 죽은 후에는 연옥에서 정화의 단계를 거쳐야 하늘 나라에 옮겨 갈 수 있는데 교회에 바치는 헌금이나 기도에 의해서 연옥의 체재기간을 단축시켜 주거나 면제해 줄 수 있다는 비성경적인 교리였다.
이 때문에 많은 부자와 귀족들이 교회를 순례하면서 거금을 내놓기 시작했다. 서민들까지도 연옥의 체재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받기 위해서 장롱 속의 돈을 꺼내들고 교회로 몰려들었다. 성당을 건축하는 교회들이 이 순례객들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다보니 마침내 교회에 물신 숭배가 등장하게 되었다. 즉 교회마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성유물을 선전하는 판촉 활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순례객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샤르트르 성당의 간판 유물은 ‘라 상뜨 슈미즈’였다. 그들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을 때 입었던 속옷이 자기네 성당에 있다고 선전하여 많은 순례객을 유치하고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던 것이다. 예수를 낳은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이런 경로를 통해 상품화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또 막달라 마리아도 교회에 돈을 벌어 들이는데 한 몫을 했다.
“중세의 관광객은 모두 순례객이었으므로 이들을 유치하려면 성유물이 필요했고 특히 성인이 남겨 놓은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는 효과적인 관광자원이었다.”(Bamber Gascoigne 'The Christians')
베즈레 수도원의 강력한 판촉 자원은 그들이 성 막달라 마리아의 시신을 모시고 있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순례객들이 모여 들었는데 어느 날 이들 틈에 끼어들어간 린칸 성당의 사제 한 사람은 그녀의 시신에 키스를 하는 척 하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그뼈의 한 끝을 물어 뜯었다. 그 후로 린칸 성당도 막달라 마리아의 유골이 있다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헝가리의 성녀 엘리자베드가 죽었을 때에는 교황청이 곧 그녀를 성인으로 시성할 것이라는 정보를 미리 듣고 몰려온 조문객들이 그녀의 머리칼이나 손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젖꼭지까지 잘라가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게 성유물의 경쟁이 심해지다보니 결국 유물 수집의 관심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에게로까지 확대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수는 부활하여 승천했기 때문에 그 육체가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머리에 썼던 가시관의 가시라든가 그 손과 발에 박았던 못 또는 십자가의 나무조각 같은 것이 경배의 대상으로 되었다. 그러나 좀더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만한 유물을 개발하려고 궁리하던 성당의 장사꾼들에게서 마침내 색다른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흘렸다는 예수의 눈물이 소개되었고 예수가 어렸을 때 뽑았다는 유치가 나오더니 급기야는 아기 예수가 할례 받을 때에 잘라냈다는 ‘거룩한 포피’가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이 ‘거룩한 포피’는 대단한 인기가 있어서 유럽 일대에 이것이 있다고 주장한 교회만도 열다섯 군데가 있었다. 동로마 제국의 여제 이레네는 칼 대제에게 이것을 약혼기념으로 선물했고 영국 왕 헨리 5세는 그의 아내를 위해 샤르트르 대성당의 ‘거룩한 포피’를 훔쳐가기도 했다.
모든 성당에는 이러한 성유물들을 수집 보관하고 있는 보물 상자가 있었고 교회 뿐 아니라 각국의 왕들도 성유물의 수집에 열을 올렸다. 특히 교회는 온갖 성유물과 세상의 보물들이 다 모여드는 보물 창고가 되었다. 교회마다 장사꾼들이 들끓었고 구원과 속죄는 늘 돈과 연결되었다. 마치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에 돈바꾸는 자들과 물건파는 자들이 우글거렸던 것처럼 장사꾼들이 교회라는 큰 시장의 안과 밖에 들끓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교회의 예배는 어느새 다시 제사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아니라9마6:20) 교회의 제단에 그것들을 제물로 올려 놓고 구약의 제사를 완성한 예수의 고난을 무효화시켰다. 그 제물 중에는 돈도 있었고 보물도 있었고 연옥을 무사통과하기 위한 면죄부도 있었다.
가인의 때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의 시련과 환난이 장자들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던 것처럼 로마 교회의 탐욕과 타락은 결국 인류의 불행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돌로 호화롭게 건축한 성당 안에서 장사꾼들의 상혼과 이세벨의 미혹에 빠져 허덕거리고 있을 때 교회 밖에는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즉 이슬람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나타났던 것이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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