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시가서

시편의 세계(12-1)

은바리라이프 2008. 6. 3. 19:07

시편의 세계(12-1)
- 시편 90편: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

 

이성훈
 성결대학교 교수(구약학)

 

당신은 때로는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일을 생각하면 도망치고 싶은 때가 없지는 않은가! 직장인은 일에 대한 중압감, 목회자는 목회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마음이 두근두근 거린 적은 없는가! 일주일에도 몇 번씩 꼬박꼬박 돌아오는 설교와 새벽기도회, 강의, 회의, 세미나 인도,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의 역할, 다른 이들과의 친교를 위한 약속, 교회 공동체와의 모임, 학회활동 등을 생각하면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일정들을 적어 놓은 달력을 보노라면 마치 그물추로 인해 축 늘어져 있는 그물처럼 당신을 짓눌러 무기력하게 만들지는 않는가. 마치 솔기가 터질 정도로 솜을 틀어넣은 뚱뚱한 옷소매와 같은 일정은 우리의 모습을 더욱더 조바심을 내게 한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아직 못 마친 계획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항상 나를 짓누른다. 쉬고 있어도 이는 진정한 쉼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불안하기만 하다. 바쁘다는 것이 마치 지위의 상징이 되어 버린 현 시대에, 바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은연중 퍼져 있는 듯하다.

이런 때 당신의 삶을 명료하게 정리하여 우선순위를 정해 주시는 주님의 만져주심이 필요하다. 이러한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대처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는 영적인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며, 삶의 무게로 인한 힘겨움은 곧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다.

삶을 소유할 재산으로 생각하고 움켜쥘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환상은 종종 위기를 겪게 되고 또한 이러한 삶에 대한 비정상적인 생각은 곧 영혼의 무질서와 혼돈을 가져온다.

시편 90편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삶의 지혜를 엿보게 하는 시이며, 이러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서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와 같이 우리의 영혼의 갈증을 풀어줄 것이다.

단계 1.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알기에 삶을 투자하라
[1]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거처’라고 번역된 마온이라고 하는 히브리어는 우리말로는 피난처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어에 더 가깝다. 이는 하나님의 본성을 보여주는 가장 알맞은 말이다. 주님은 모든 이들에게 쉼을 주시는 분이시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서투른 초보자 목수가 멍에를 만들면, 이 멍에를 메는 소는 너무나 고통스러워한다고 한다. 본래 직업이 목수였던 주님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 11:30)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를 알려 준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면 평신도가 되었든 목회자가 되었든지 간에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제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 당신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무거운 멍에가 되어 당신을 힘들게 한다면 이는 영적인 위기이다. 잘못되었어도 크게 잘못되었음이 분명하다. 이는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를 나타낸다.

주는 하나님이라고 할 때에 히브리어로는 엘이라고 한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고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이라고 하는 아들을 낳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처음 나타나셨을 때에도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 이는, 너의 삶을 통하여 너는 과연 내가 전능하다고 믿고 있음을 보여주었느냐 하는 말이다. 당신이 혼란스러워할 때에 당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살펴보라. 구체적으로 물어보라.

단순히 그 분이 하나님이 되신다고 하는 지식적으로 아는 삶이 아닌, 노(老)부부가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그 분을 깊이 아는 시간이 당신에게는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그의 나이 60세가 되어서도 주님을 알기에 힘쓰지 않았던가(빌 3:12)! 주님을 알 수 있는 기도의 시간이 없다고 핑계하지 말라. 정말 그렇다면 식사시간을 줄여서라도 그 분을 알 수 있는 당신 혼자만의 장소를 찾아가 그 분을 호흡하라.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당신의 마음을 열고, 그 분과 함께 하는 고요한 시간을 가지라.

단계 2. 인생의 덧없음을 인정하라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돌아가게 하시고’, ‘돌아가라 하셨사오니’는 서로 병행을 이룸으로써 힘을 주어 당신에게 묻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당신은 하나님께 언제든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 인생은 짧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삶은 덧없는 인생임을 당신은 마음으로 알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에 가면 마사다라고 하는, 사막 한가운데 마치 요새처럼 우뚝 솟은 요새가 있다. 사막 한가운데 헤롯 대왕은 자신의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염려하여 유사시에 대비할 요새 궁전을 그곳에 지었다. 호화스러운 별궁도 지었다. 건축기술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남이야 어찌되었든 조금 더 오래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며 자신의 왕좌를 빼앗길까 하는 불안에 떨며, 아내와 자식까지 살해하였던 헤롯왕 역시 정해진 삶의 기간만을 살았을 뿐이다.

모세는 간략한 문장들로 인생이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함을 보여주었다. 인생이 천 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밤의 한 경점’에 불과할 뿐이다. 한 경점은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의 시간관념으로서 4시간을 의미한다. 밤의 한 경점은 천 년과 비교하여 볼 때 매우 짧은 시간이다.

영국에서 어느 노부부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그 분은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했으며, 또한 그가 생일에 즈음해서 받았던 생일축하카드를 보여주면서 많은 이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흐뭇해하였다. 필자 역시 그 분들이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당신이 기억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기억하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찾아올 것이며, 당신도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또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당신이 행한 놀라운 일들을 모두 잊고야 말 것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당신이 행한 일을 기억하실 분이 없다.

인생은 유한하다. 인생이란 홍수처럼 쓸려 갈 수 있으며,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과 같다. 이스라엘에서 밤에 내리는 비로 인하여 아침에 푸릇푸릇했던 풀들이, 낮 동안에 작렬하는 태양으로 인하여 모두 갈색으로 변해 있다. 모두 인생의 덧없음을 묘사하는 시어들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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