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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와 예수 재림신앙

은바리라이프 2008. 6. 3. 19:03

민족사와 예수 재림신앙
- 기독교 종말론의 역사적 인식을 위한 신학적 단상

 

 

김용복
신학자, 한국생명학연구원장, 전 한일장신대학교 총장

 

기독교 종말론에 대한 인식은 다양하다. 교회사와 역사적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인식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어려운 교리 논쟁이 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논쟁에 관심이 없다. 오직 기독교종말론이 우리 신앙생활에 유익하게 이해되고 이에 대하여 신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제 말기 성결교회에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강렬한 신앙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일제는 예수의 재림신앙이 그들의 식민지 통치에 저해된다고 판단하고 이를 금지하였고 성결교회를 폐쇄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 사실에 대한 역사적 신앙적 의의를 간략하게 음미하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말에 이르러 교회에 대한 탄압정책이 심해지면서 43년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성결교회 복음이 일본 국체(國體)에 배치(背馳)된다는 이유로 강제 해산되었으며 많은 신도들이 순교 및 옥고를 치렀다.” 당시 수백 명의 교역자가 투옥되었고 교단지 활천도 폐쇄되었다. 교단 강제해산과 활천 폐쇄는 성결교회의 핵심신조인 재림신앙과 일제의 통치가 모순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사건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 보자. 당시는 일제가 천황을 신으로 추앙하고 국가종교인 신도(神道)를 모든 ‘신민’에게 강요하였다. 이것이 신사참배의 강요라는 사건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기독교신앙의 제일계명을 문제삼는 것이다. 즉 궁극적 신앙의 대상을 천황과 하나님 사이에 선택하는 신앙고백의 문제였다. 성결교인들은 일제의 지배에 대하여 저항하였을 뿐 아니라 천황제의 신격화, 절대화를 배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신앙적 구조 그리고 신학적 구조가 당시 신사참배 반대의 신앙이요 신학이었다. 기독교의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길 수 없었던 것이다.

일제의 천황제는 우리 민족, 일본 민족, 그리고 중국 민족 등 아시아 민족들을 불행하게 하였다. 천황제가 일제를 절대화하였던 것이다. 또 이 천황제는 신도에 의하여 신격화되었던 것이다. 천황은 곧 신이라고 고백되고 이 고백이 우리 민족에게 강요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치 종교적 제국주의적 강요는 기독교 신앙인에게는 순교적인 결단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서 성결교회의 예수 재림신앙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중요시하려는 것이다. 우선 예수 재림신앙은 우리 모든 한국교회가 지녔던 신앙이다. 그러나 성결교회는 예수 재림신앙을 중심적 신앙고백으로 지녔던 것이다. 이 점이 우선 특이하다.

예수 재림신앙은 성경의 신앙으로서 아주 역사적인 신앙이었다. 예수 재림신앙이 교리적으로야 어떠했든지(전천년설이든 후천년설이든)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가진 신앙이었다. 이것은 초역사적이거나 역사 이후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 예수 재림신앙은 현 역사의 종결을 강하게 희구하는 신앙이었다. 예수의 재림은 현 역사를 심판하는 종말을 의미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의 재림은 현재, 역사 안에서 신앙인과 인류가 당하는 고통을 종결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신앙은 새 역사를 창조하는 비전과 동력의 신앙이었다. 우리 한국 기독교 신앙인에게는 일본 천황이 신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 나는 것이 예수의 재림이었다. 그리고 일제천황의 지배하에서 당하는 수난이 종식되는 것이 예수의 재림이었다. 곧 이것은 일제의 종식을 의미하였다.

나아가서 예수의 재림은 예수의 메시아 통치의 시작을 의미하였다. 이것은 메시아의 천년왕국, 영원한 통치를 의미하였다. 이것은 정의와 평화를 기초로 한 영원한 생명의 통치 비전을 가능하게 하는 신앙이었다. 이 비전은 일제통치를 불의와 전쟁과 억압을 자행하는 죽음의 지배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일제의 통치는 요한계시록에서 서술된 바벨론의 통치, 불의와 억압과 전쟁의 제국의 통치로 노출되었다. 기독교 신앙인에게 일제의 통치는 로마제국과 같이 메시아 예수의 심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장로교 지도자였던 길선주 목사의 설교와 저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의 저서 말세론에서도 일제는 계시록의 바벨론 제국과 일치되었으며, 계시록에서 메시아왕국이 로마를 심판하듯이 예수 재림은 일제를 심판하는 것이었다. 일제는 기독교의 성경 특히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은 불온한 책으로 규정하고 정치적인 금서로 정하였던 것이다.

이 메시아의 통치의 ‘그림자’는 기독교신앙인뿐 아니라 일반 한국 민간종교 신앙의식에서도 표현되었다. 우선 한국의 민간신앙이었던 ‘정감록’은 종교적 혁명의식을 고취하는 것이었다. 시대가 암울하고 흉흉할 때면 고개를 드는 것이 민간 종말신앙이다. 일제가 우리 조선을 강점한 이래 이런 민간 종말론은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는 일제통치에 대한 종교적 저항을 사이비 종교적인 것으로 격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종말의식은 불교에서도 분출된다. 불교는 불교 나름대로 종말론을 가지고 있었다. 불교는 미륵이 도래하여 서방정토(유토피아)를 이룬다는 종말적 역사의식을 가졌던 것이다. 본래 불교의 정토사상은 현세를 정토로 여기는 호국불교의 전통이 강하였으나 현세가 일제에 의하여 강점되고 일제에 의하여 억압과 전쟁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이 미륵정토신앙은 구국불교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3.1운동 당시에 정점을 이루었던 민족종교 동학, 즉 천도교도 강력한 종말론을 실천하였다. 이것이 동학의 후천개벽론이다. 동학은 일제가 개벽을 통하여 물리쳐진다는 종말론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동학은 유불선 내지는 민간신앙을 총망라하여 통합적인 종말론을 형성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동학도들에게 있어서 역사의 종말은 곧 일제의 종말이었다.

이미 이러한 종말론적 역사의식은 전민족적인 차원에서 표출되었다. 3.1기미 독립선언은 “아 眼前에 新天地가 전개하는 도다”라고 선포하고 있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과 이사야서를 직접 인용하고 있는 듯한 강력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식이 일제하에서 수난당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내면에 깊이 뿌리를 가진 것이며, 우리 민족의 모든 종교신앙에도 깊은 뿌리를 가진 것이라고 분석된다. 3.1 기미 독립선언서는 우리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선언하고 일제 식민통치의 종식을 희구하는 심층적 역사의식의 발로요 내면적 종교신앙의식의 표현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예수 재림신앙의 실체를 다시 음미하여야 할 것이다. 혹자는 예수 재림신앙을 전혀 내세적인 것이요 현세 도피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만일 이 신앙이 현실 도피적인 것이었다면 일제가 환영하였을 것이다. 현실에 대하여 절망하고 무기력하게 내세만을 지향하는 신앙형태는 일제의 통치를 위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재림신앙을 내세적 행태로만 취급하는 이러한 신학적 태도는 예수 재림신앙의 역사 초월적 차원과 역사 내면적 차원의 역동적 관계를 간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 재림이 외형상으로 내세적인 모양으로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이 신앙은 강렬한 현세적 역동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재림신앙에 대한 합리적이고 현세주의적인 비판은 초월신앙의 역사적 동력을 축소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일제시대 특히 일제말기에 신앙되고 실천되었던 예수 재림신앙의 역사적 신학적 의미를 반추하여 보려고 한다.

먼저 예수 재림신앙은 일제에 의하여 일제의 정체(政體)를 부정하는 것이었다고 인식되었다. 재림신앙이 천황 정치체제를 부정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일제는 정체 부정을 단순히 정치적인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재림신앙은 일제의 정체가 신격화된 것을 배격하는 것이다. 일제에 대한 절대적 종교적 신앙을 거부하는 것이다. 둘째 일제의 정체 부정은 그 극단적인 불의와 억압과 전쟁과 절대적 통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셋째로 예수 재림신앙은 예수를 바벨론, 로마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살해하는 일제를 적그리스도로 규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재림신앙의 일제 정체 부정은 순수한 신앙적인 행위였고 신앙적 태도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1. 예수 재림신앙은 예수의 재림을 피동적으로 기다리는 신앙이 아니라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를 절규하면서 강렬히 기도하고 희구하는 열정적 신앙이다. 이 신앙은 무기력한 신앙이 아니다. 그러기에 일제는 백 여 명이 넘는 교역자들을 잡아 가두고 교회를 폐쇄하지 않았는가? 일제는 교회 지도자들과 신도들에게 배교의 압력을 강하게 가하였다. 더러는 굴종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항의 길, 순교의 길을 걸은 지도자와 신도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수 재림신앙은 민족의 해방을 위한 신앙적 태도였고 행동이었다.

2. 예수 재림신앙의 신앙적 열정은 역사의 촛불처럼 무기력에 빠진 민족공동체의 심지에 점화하여 역사적 동력을 일으키고 흑암을 헤치고 미래로 전진하는 역사적 의지를 발동시킨다. 이것은 수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신앙적 의지에서 기인된다. 이 신앙 속에 인내가 있고 성실함이 있고 지조가 있으며 행동의지가 그 뿌리를 둔다. 그러기에 우리는 역사변혁의 원동력을 이 메시아 통치의 신앙에서 찾는 것이다.

3. 예수 재림신앙의 실체는 민족역사는 일제가 강요하는 죽음과 절망의 늪에 영원히 갇히지 않고 예수의 메시아 통치가 주는 ‘새 하늘, 새 땅, 새 도성’에 대한 소망이다. 이 신앙은 수난 중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절망의 족쇄에 매이지 않고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재림신앙은 희망의 신앙이요 신학이다.

4. 희망의 신앙으로서의 재림신앙은 미래적 상상력을 발동한다. 현실이 아무리 캄캄하여도 빛을 보는 신앙이다. 이 신앙의 빛은 신앙적 예지를 가지고 상상의 날개를 펴면서 새 하늘의 높이를 보고 새 땅의 지평을 열며, 정의와 화평과 생명이 충만한 새 도시(새 예루살렘)를 구상하는 것이다. 일제 말기 민족과 교회의 미래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러나 예수 재림신앙은 우리 신앙인을 미래로 안내하는 생명, 새 생명의 빛이었다.

5. 이 신앙이 주었던 메시아통치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은 일제의 정치적 현실을 관통하는 신앙적 역사의식을 주었다. 일제를 단순한 외국 정치세력으로 보지 않고, 그것은 신격화되어 신앙을 강요하고, 황권을 절대화하여 생명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파괴하는 악한 권세임을 통찰하였다. 이것은 일반 정치적 분석을 뛰어넘는 역사인식이었다. 그랬기에 예수 재림신앙은 어떠한 경우에도 신격화된 그리고 절대권위를 행사하는 권력을 반대하고 그에 저항한다.

우리는 이 고귀한 역사적 신앙체험, 예수 재림에 대한 역사적 신앙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예수 재림의 신앙 속에는 좀더 심오한 초월적 진리가 숨어 있어 그 뜻이 오묘하지만 그 역사적 동력 또한 위대하다고 믿는다. 역사적 열매가 없는 신앙은 허무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동북아시아에는 어두운 역사의 징조가 일고 있다. 미, 일, 중 3대강국이 군비를 증강하고 있고 동북아에 지정학적 긴장관계가 강도 높게 상승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 재림신앙을 통하여 계시되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생명질서의 비전을 분명히 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역사적 의지를 창출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