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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키아쿰의 어거스틴

은바리라이프 2008. 6. 3. 18:49

카시키아쿰의 어거스틴

 

이규철
육군 군목(소령), 계명대 Ph.D,
『어둠에서 빛으로: 하나님을 향한 어거스틴의 회심』의 저자

 

신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을 맞았다. 각 교회에서는 여름성경학교와 여러 수련회가 열릴 것인데, 아마 교회마다 여기에 거는 기대가 클 것이다. 각박한 현대문명 속에 시달려 온 현대 크리스천에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갖는 영적 재충전과 신앙적 단련을 갖게 하는 수련회는 신앙적 자아반성을 통해 현재를 변화시켜 미래를 발견하는 새로운 용기와 비전을 갖게 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수련회가 거듭될수록 성결가족들이 신앙적으로 무럭무럭 자라리라 확신한다.

긴 방황의 기간을 정리하고 예수께로 돌아온 어거스틴 또한 종합수련회 격인 ‘카시키아쿰’(Cassiciacum)의 퇴수회(386년 9월-387년 3월초)를 통해 기독교적 지성과 영성을 새롭게 하는 값진 시간을 갖는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이 퇴수회는 세례 준비를 위한 직접적인 기간이었는데, 어거스틴은 그의 카시키아쿰에로의 인퇴(引退)의 시기를 ‘자유로운 여가’(otium leverale)라고 불렀다.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여가를 가질 수 있도록 카시키아쿰의 별장을 빌려준 이는 베레쿤두스(Verecundus)였다. 베레쿤두스는 어거스틴의 절친한 친구로서 밀라노의 수사학 문법학자였다. 베레쿤두스가 어거스틴에게 자기 별장을 사용하도록 빌려줄 때 그는 아직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으나 그의 아내는 충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이후 베레쿤두스는 병상에서 어거스틴에게 세례를 받고(397년), 세상을 떠났다.

어거스틴의 카시키아쿰 수련회에 동참한 이는 어머니 모니카를 비롯해서 ‘알리피우스’와 ‘리켄티우스’(Licentius), ‘트리게티우스’(Trygetius), 그리고 어거스틴의 아들 ‘아데오다투스’(Adeodatus)였다. 어거스틴은 카시키아쿰의 이 작은 공동체에 함께 기거하면서, 성경을 끊임없이 읽었으며, 특히 시편을 읽는 중 감격하여 소리치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그런데 카시키아쿰 퇴수회의 정수는 수사학적 가르침이나 성경적 경건생활뿐 아니라 헬라 고대적 사유와 히브리적 사유가 조우하여 정리되는 열띤 토론의 장(場)에 있다. 어거스틴은 자기와 함께 한 이들과 성경연구, 특히 철학적 토의에 몰두하였다. 이때 이루어진 토의를 속기사가 정리하고 어거스틴의 교정과정을 거쳐 책으로 편집되었다. 그것은 『아카데미학파 논박』(Contra Academicos), 『복된 삶』(De Beata Vita), 『질서론』(De Ordine) 그리고 『독백』(Soliloquia) 등인데, 후대의 사가들은 이를 카시키아쿰의 “대화록”(Dialogues)이라 부른다.

이 대화록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어거스틴의 초기 사상을 이해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책이다. 우리는 이 “대화록”을 통해 어거스틴의 회심 초기의 사상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카시키아쿰의 어거스틴이 제일 먼저 논한 것은 『아카데미학파 논박』이다. 이 책은 어거스틴이 지혜와 진리 추구의 빛이라는 주제를 그의 젊은 친구들에게 대화형식의 토론을 통해 가르치려는 의도하에 시도된 것이다. 특히 어거스틴은 키케로의 저서 『아카데미카』(Academica)의 내용을 기본 자료로 하여, 키케로가 속한 회의주의 학파인 신아카데미학파를 비판하였다. 당시 회의주의를 이끈 키케로(Marcus T. Cicero, BC 106-43)는 후기 아카데미학파에 속한 자로서, 절충주의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키케로는 독창적인 사상가는 아니었으나 매우 박식한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사상을 소개한 이였고, 어거스틴은 고대철학에 관한 많은 부분을 키케로에게서 받아들였다.

특히 어거스틴은 『아카데미학파 논박』에서 사물에 대한 감각적 확실성에 기초하여 아카데미학파의 회의주의적 경향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렇게 아카데미학파에 대한 비판을 통해 진리 인식의 확실성에 기초한 개연성을 긍정한 어거스틴의 『아카데미학파 논박』은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기초로 한 어거스틴의 인식론의 초기 성격을 엿보게 하는 책이다.

카시키아쿰의 어거스틴이 두 번째로 논한 책은 『복된 삶』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인간이 원하는 행복과 어거스틴의 행복한 삶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추구”이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과 행복의 문제가 하나님을 소유하는 최고의 규범 곧 “내가 곧 진리이다”라고 선언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짐을 선언한다. 어거스틴의 이 입장은, 행복해지는 길이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는 것인데, 그 하나님의 지혜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그의 확고한 인식과 선언에 기인된다. 이런 점에서 『복된 삶』은 진리를 소유하는 자가 행복하다는 기본적 인식을 기초로 하여 진리 소유의 문제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관성을 축으로 한 기독론적 신 인식을 통한 행복론이라고 평할 수 있다.

카시키아쿰의 어거스틴이 남긴 세 번째의 책은 『질서론』이다. 이 책의 중심 소재는 하나님의 섭리와 악의 문제이다. 특히 하나님의 섭리론에 입각한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논의는 도덕적 악의 문제까지는 다루지 않았지만 ‘우주의 무질서로서의 악’을 고찰하는데 집중된다. 악에 대한 어거스틴의 기본적인 입장은 악이 하나님의 창조물도 아니고 하나님과 같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비존재(non-being)이다. 이런 면에서 악 또한 하나님의 통제하에 놓여 있다. 때문에 어거스틴은 동물의 세계에서 강자와 약자, 승리자와 패배자가 있고 동시에 그 속에 자연의 질서의 아름다움이 있듯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악의 문제를 접근한다. 이런 점에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섭리와 악의 기원에 관한 것을 질서의 측면에서 이해한다. 이 질서의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어거스틴이 『질서론』에서 결정적으로 확립한 개념은 하나님의 불변성이었다. 정리하면,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섭리와 악의 문제를 다루면서 하나님의 불변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식하고 소유함의 두 길로서 신앙과 이성을 제시하고, 이를 기초로 하여 그의 지식론과 인식론의 체계 및 방법론을 설정한다.

카시키아쿰의 어거스틴이 남긴 네 번째의 책은 『독백』이다. 그런데 이 책은 앞서 살핀 세 권의 책들이 수련회 참석자들의 실제 대화를 기초로 하여 작성된 것에 반하여, 『독백』은 어거스틴과 이성(理性)과의 대화라는 허구적 형태를 취한 독백의 형태라는 점에서 특별한 점이 있다. 어거스틴이 『독백』을 통해 추구한 영혼의 문제는 ‘하나님을 알고 영혼을 아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같이 하나님과 영혼을 아는 데 주력한 어거스틴은 진리와 함께 하는 영혼의 불멸에 대해 논증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진리가 인간의 영혼에 있는 한, 인간의 영혼은 불멸한다는 추론적 결론을 짓는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조차 형태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마니교와 확실성을 의심하는 회의주의를 배격하려는 어거스틴의 입장에서 기인한다. 이런 면에서 『독백』은 영혼의 본질과 불멸성의 문제를 논함을 통해 마니교와 회의주의를 비판하면서, 하나님과 진리 그리고 인간 영혼의 연결점인 영혼불멸의 유추적 확증을 통해 하나님의 불멸성을 확고히 하는 신학적 논의이다.

어거스틴이 그의 동행자들과 카시키아쿰에서 행한 이 대화록은 완벽한 신학적 논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광범위한 신학적 성찰의 추구라는 기독교적 성격을 띤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어거스틴의 카시키아쿰 수련회는 ‘한 기독교인이 철학적 숙고를 통해 기독교적 형이상학을 검토하는 심포지엄을 겸한 깊은 신앙수련회’였다. 어거스틴은 이 수련회를 통해 기독교 지성을 선도하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바라기는 해마다 열리는 각 교회의 신앙수련회가 그저 일과성 단순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카시키아쿰의 어거스틴과 함께한 이들의 퇴수회처럼 신앙적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