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의 완전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 2:14).
성령의 강림
사사오 데쓰사부로* 글
홍순균 역
* 사사오 목사는 전 동경성서학원장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적 마귀를 십자가로 멸하셨다(히 2:14). 마귀가 제아무리 설치고 발호하여도, 사실 저는 패장(敗將)일 뿐이다.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혀온 죄악도 십자가상에서 완전히 속하여져, 이제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요 19:30). 그러나 이 큰 승리, 이 놀라운 구원에 대하여, 당시 신자도 미신자도 마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주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 아버지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시어(요 14:16), 성령을 아버지께로 받아, 기다리고 사모하는 제자들에게 부어 주심으로(행 2:33) 이미 말한 주의 승리가 나타나며, 신자의 체험으로 승리가 확정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곧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 폭발탄을 제조하시어 성령의 손으로 이를 던져 폭발케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충분히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다. 완전히 승리의 생애에 들어갈 수 없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 하심은 우리 각자를 향한 정중하고도 엄숙한 주님의 부르심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당신은 어떠한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가? 이제 오순절 성령강림의 은혜에 대하여 몇 가지 요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성결
우리가 회개하고 죄 사하심을 받는 것만으로는 아직 온전히 깨끗하지 못하다. 장래의 죄의 성질이 마음속에 남아 있어, 때때로 그 싹이 움터 죄를 범하고 넘어지게 된다. 많은 신자들은 이로 인하여 자주 그의 언행과 평화를 깨어버리고 흔히 자유와 승리를 지속하지 못함을 한탄한다. 또 이 옛 성질, 즉 자아는 신자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여 자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또는 남에 대한 배려가 없이 다만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애쓰며 시간과 소유를 사용한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손상을 입으며 주님을 근심케 하며 가슴 아프게 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와 같은 신자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크신 은혜로써 성령 즉 불세례를 베풀어 깨끗케 해주신다(마 3:11). 형제여, 자매여! 당신은 자아와 정과 욕이 죽고, 불태워져 깨끗해지기를 원하는가?
2) 위자와 희망
사람의 동정과 위자(慰藉; 위로하고 도와줌)에는 한계가 있어 자주 우리를 실망케 하지만, 성령은 참으로 안위와 선위(善慰)를 베푸신다(요 14:16, 살전 2:16).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사 66:13).
성령은 우리를 당신의 품에 안으시고 양육자가 되어 주신다(룻 4:16). 마귀는 이런저런 사정을 통해 우리의 약점을 틈타, 암흑의 세력으로 우리를 억압하며, 우리를 실망시키려 하지만, 성령은 언제나 주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심으로 영광스러운 소망을 주시며 격려하신다(롬 5:3-5).
3) 묵시와 교훈
성령은 참으로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을 밝히 살피시는 분이다(에 1:17, 18). 성령은 우리에게 주 예수님과 그 영광을 밝히 보여주신다(요 15:26, 16:14). 성령은 또한 성경의 진리를 계시하심으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고, 유명한 대가에게 물었어도 해답을 얻지 못했던 의문이 성령의 은혜로 순간적으로 해답을 얻는 경험을 자주자주 하게 된다.
4) 은혜와 능력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부어주시어, 복음의 차고 넘치는 은혜에 빠지게 하신다. 그 위에 우리에게 위로부터의 능력(눅 24:49), 즉 초자연적 능력을 부어 주시어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게 하신다(행 1:8). 이는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주된 목적이다. 주님은 우리 신자 없이는 그의 구원을 죄인에게 전하는 일을 하실 수 없다. 우리는 성령 없이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그리고 영혼을 인도할 수 없다. 성령이 충만히 우리에게 임하시면 아주 연약한 자도 가장 비천한 자도 참으로 놀라운 그릇이 된다(삿 16:15, 7:21). 특히 주 예수의 발자취를 십자가를 지고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은 성령의 은혜를 받음으로 가능하다. 아아! 귀하신 성령은 “빠져서는 아니될 한 가지이다”(눅 10:42).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9-13).
형제자매여, 세상과 육에 속한 분토와 같은 것들을 다 버리고, 온전히 몸을 주께 드리고, 오직 성령을 구하라. 성령 충만히 받기까지 끝까지 쉬지 말라. 충만으로 충만하라.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위하여 십자가에 자기를 버리신 예수를 생각하라. 저를 사랑하라. 저의 피를 믿으라. 저를 따르라. (1907년 5월 ‘불의 혀’에서)
'기독칼럼·논문·서적 > 기독논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새로운 시도: 토마스 아퀴나스의 구속사 신학 (0) | 2008.06.03 |
---|---|
평화에 대한 어거스틴의 성찰 (0) | 2008.06.03 |
민족사와 예수 재림신앙 (0) | 2008.06.03 |
황덕형 교수의 글에 대한 감상 (0) | 2008.06.03 |
현대 한국선교운동의 발전에 기여한 요인들 (0) | 2008.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