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안디옥을 점령하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4-01-27 |
왜 하나님은 성령의 대폭발 이후 전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전진기지로 안디옥을 택하셨을까? 하나님의 계획과 경영은 다 그 뜻이 있고 의도가 있는 것이다. 그는 하늘의 모든 군대를 지휘하시는 ‘만군의 주’ 이며 가장 위대한 전략가이기 때문이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24:8) 이 하나님께서 직접 전쟁에 나섰으니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마귀의 무리들과 또 감히 황제를 자칭한 세상 권력자들의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시작하는 솜씨는 먼저 그 군대의 전진기지를 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전쟁에 능한 하나님께서 복음의 총사령부를 두기로 작정한 안디옥은 과연 어떤 곳이었던가?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으로는 터어키의 남부에 있는 비시다아의 안디옥(행13:14)과 오론테스 강 하구에 위치한 수리아의 안디옥이 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전진기지로 선택한 안디옥은 물론 수리아의 안디옥을 말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샤를 정복하고 인도에까지 진출하게 되자 안디옥은 헬라 지배권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다. 안디옥은 헬라가 인도에서 애굽에 이르는 천하를 지배하는데 가장 중요한 중앙의 거점이며 전략의 요충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알렉산더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가 된 네 명의 장군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헬라의 뒤를 이어서 세계를 지배한 로마에 이르기까지도 안디옥은 그 지정학적인 중요성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알렉산더가 죽은 후에 수리아와 유대를 포함하여 지중해 연안지역을 차지하게 된 셀류쿠스는 안디옥을 수리아의 수로도 정하였고 그 성읍의 이름은 구 부친의 이름 안티오쿠스를 따라 ‘안티오케이아 테스 수리아스’가 셀류쿠스에서 시작된 안티오쿠스 왕조의 역대 지배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셀류쿠스의 아들인 안티오쿠스 Ⅰ세는 알렉산더 이래 가장 위대한 도시 건설자로 인정되었고 소아시아를 골 족의 침입으로부터 막아낸 공으로 사람들로부터 소테르라는 명칭으로 불리워졌는데 그것은 ‘구세주’라는 뜻이었다. 또 안티오쿠스 Ⅱ세는 밀레도 사람들에게서 데오스 즉 ‘신’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안티오쿠스 Ⅲ세는 아르메니아를 손에 넣고 파르디아와 받트리아를 다시 복속시켜서 ‘대왕’ 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그 뒤를 이은 안티오쿠스 Ⅳ세는 BC 167년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을 세우고 돼지의 피를 뿌리고 할례를 베푼 제사장들과 그 아이들을 학살했으며 스스로 에피파네스 즉 ‘뛰어난 빛’ 이라는 칭호로 불리워지는 것을 좋아했다. 안디옥은 그 후로도 역대 로마 황제들이 동방을 지배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율리우스 가이사와 안토니우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 등이 안디옥의 발전을 도왔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렇게 안디옥은 헬라와 로마의 역대 통치자들이 가장 중요시 했던 거점 도시였고 군사적 요충이었다.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 복음의 전진기지를 설치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의 전략적 포석이었다. 적에게 급소라면 내게도 급소가 되는 것이다. 적의 가장 중요한 거점을 서슴지 않고 아군의 거점으로 삼아서 사방으로 뻗어가는 것이 교회사를 전개해 나가는 하나님의 전략이었다. 복음의 전파가 시급한 시대일수록 적의 거점과 급소를 먼저 점령하는 선교전략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의 가장 중요한 급소를 잡아 복음의 전진기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야전사령부의 인적 구성에까지도 탁월한 용병의 진수를 보여주셨다. 그 기지의 사령관으로 베드로와 같은 믿음직한 지휘관을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최전선으로 뛰는 선봉장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다가 예수를 마나서 회심한 바울을 세웠던 것이다. 예수를 믿게 된 후에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직선적이고도 맹렬한 성품은 그대로 있었다. 그는 옳다고 믿는 일이면 물과 불을 가리지 않고 나서는 사람이었다. 일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도 할례를 받게 해야 한다며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는 신참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할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것이라면 과감히 반대 논리를 전개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3:1~2) 이 문제가 시끄럽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진상 조사단을 안디옥에 파견했다. 그 때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베드로는 자신의 행동이 조사단에 의해 논란의 빌미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바로 그때 바울이 벌떡 일어서며 사령관인 베드로를 향하여 큰 소리로 그를 질타했던 것이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갈2:14) 마침내 이방인에 대한 할례 문제는 예루살렘 총회에까지 비화되었고 그 자리의 총회장이었던 야고보는 사도들과 의논한 결과 이방인에게 할례를 줄 필요가 없으며 할례는 구원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바울은 매우 직선적이고 과격했으나 하나님 쪽에서는 신속하고 과감한 선교를 추진하는 한편으로 복음이 급격한 확산 과정에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바울과 같이 논리에 강하고 투쟁적인 선봉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속한 사령관 베드로와 투쟁적인 선봉장 바울을 세우신 하나님은 또 하나의 보완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그것이 바로 성품이 부드럽고 원만한 바나바를 그들의 사이에 완충역으로 세워 놓은 것이었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사람들을 다독거리고 편안하게 해주는 최고의 중재자였던 것이다.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勸慰子)라 하니...”(행4:36) 이렇게 성령의 대폭발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튕겨져 나온 성도들은 안디옥에 기지를 건설하고 본격적으로 선교의 전선에 나서게 되었다. 이 때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전세계에 천국의 복음을 실어 보내시며 그의 교회를 계획하신대로 건설해 나가는 무서운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
*‘권위자勸慰子’ : ‘권면勸勉 하고 위로慰勞하는 다정한 사람’ 이라는 뜻의 ‘권위자勸慰子’.
헬라어로는 ‘휘오스 파라클레수스’인데 영어로는 ‘The son of conso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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