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이방의 빛을 삼아

은바리라이프 2008. 5. 27. 19:49
제목 : 이방의 빛을 삼아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4-01-29
하나님이 히브리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었다. 그 중의 하나는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서 구원자가 나와 사단의 권세를 깨뜨릴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보장한 약속이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 하였음이니라”(창22:17~18)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또 하나의 약속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가나안 땅을 그와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12:6~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약속은 그 후로 이삭에게도 재확인을 해주었고(창26:4) 야곱에게도 또 다짐하셨기 때문에(창35:12) 히브리 백성이 애굽에 들어가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도 가나안 땅은 그들에게 소망이고 꿈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빠져나올 때에도 가나안 땅은 그들의 목적지가 되었던 것이다.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젓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출3:8)
그래서 가나안 땅은 히브리 백성에게 최후의 목적지가 되었고 그들의 역사는 이 땅을 차지하고 또 그것을 지키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가 다 지나간 지금에 와서 보면 가나안 땅이란 하나님을 대적하여 최초의 여신을 만들어 낸 반역자들의 땅이며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원수의 땅을 빼앗아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겠다는 예표적인 약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자기 백성에게 주겠다고 했던 ‘약속의 땅’은 가나안 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모든 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가나안의 반역을 주도했던 ‘두로’는 BC 574년 바벨론의 공격과 BC 332년 알렉산더대왕의 점령으로 황폐하게 되었고 BC 20년 다시 로마에 귀속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지금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 두로의 문화’가 온 세계를 뒤덥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메시야를 보내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도 히브리 백성들의 구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두로의 미혹’에 사로잡혀서 농락당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메시야의 복음이 모든 이방으로 뻗어나가세 될 것을 예고하셨다.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49:6)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에서 출생한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의 부친은 베냐민 지파 출신의 유대인으로 다소에 살면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부유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베냐민 지파의 대표적 인물이었고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었던 사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청년 사울은 그 이름에 걸맞도록 자부심이 강한 유대인으로 자라났고 특히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열성적인 율법학자로 성장했다.
그는 산헤드린 공의회의 의원 중에서도 예수의 제자들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던 강경파였고 스데반을 죽일 때에 그 일을 주도했으며 예수의 제자들을 체포하고 투옥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다(행26:10~11). 그는 예루살렘뿐 아니라 외국에 흩어진 예수의 제자들까지도 모두 찾아내어 후환을 없애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나섰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행9:1~2)
그런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났던 것이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밝은 빛이 쏟아져 내려왔기 때문에 그가 놀라서 땅에 내려 엎드렸을 때 위에서 예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9:4)
그러나 그 한 마디에 손을 들고 항복할 사울이 아니었다. 모세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던 것처럼 사울도 그를 찾는 이가 누구인가를 물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그 EO 다시 예수의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그 순간부터 사울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가장 잘 본다고 여겼던 자만의 눈이 멀어버렸던 것이다.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서 다메섹으로 들어간 사울은 너무 기가 막혀서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 때 다메섹에 있던 아나니아라고 하는 예수의 제자가 환상 중에 나타난 그의 음성을 들었다.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그러자 아나니아는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그제서야 예수는 비로소 아나니아에게 그의 전략을 밝혀주신다.
그 사람이 바로 이방의 구원을 위하여 택함을 받고 그 일을 위하여 쓰임 받게 될 사람임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그것을 듣고서야 아나니아는 일어나 직가라는 거리로 가서 사울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못 보는 그의 눈에 안수하며 말했다.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하여금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그러자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고 그는 다시 보게 되었다. 사울은 그로부터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언하는 증거자가 되었고 바나바의 추천으로 안디옥 교회에 들어가서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이 때부터 바울이라는 로마식의 이름을 썼고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으로 다니며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큰 일꾼이 되었던 것이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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