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솔로몬을 죽여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10-13 |
솔로몬의 두로의 기술자를 불러들여 건설된 성전을 봉헌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수고를 인정하시고 그 성전을 받아주시면서 한가지 경고를 남기셨다.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왕상9:6) '만일'이라고 전제한 이 배반의 뒤에 오는 결과는 무서운 것이었다.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왕상9:7) 이렇게 무서운 경고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솔로몬 자신이 그 길을 택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도 사람의 교만 앞에서는 아무런 보장이 안된다는 것을 솔로몬의 사례가 증거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솔로몬의 영화가 어떠하였던가? "솔로몬의 1일분 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30석이요 굵은 밀가루가 60석이요 살진 소가 열이요 초장의 소가 스물이요 양이 1백이며 그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었더라" (왕상4:22~23)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전차대를 움직이는 말의 외양간이 4만이고 기병대만 1만2천이라고 했으니(왕상4:26) 당시로서는 대단한 병력이 아닐 수 없었다(왕상4:26). 그는 또 시위대의 방패 5백개를 금으로 만들었고 자신의 보좌를 상아로 만들어서 금으로 입혔는데 보좌에 여섯 층계를 두어 그 양쪽을 12사자상으로 장식하였다(왕상 10:16~20). 그 뿐만이 아니었다. 솔로몬의 마시는 잔은 다 금이었고 왕궁 안의 모든 그릇들도 다 정금이었다. 그 지혜로운 솔로몬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황금의 중병에 걸리게 되었던 것일까? 그가 황금에 중독된 환자가 되어버린 것은 그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솔로몬은 성전을 준공한 다음 계속해서 자신의 왕궁을 건축하여 20년만에 모든 공사가 겨우 다 끝났다. 20년이나 걸린 큰 공사에 '두로 왕' 히람이 열심으로 협력했기 때문에 솔로몬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갈릴리 땅의 성읍 20을 하사했다. 그러나 평소에 늘 인내하며 충성을 가장하고 있던 히람이 이번만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히람이 두로에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이르기를 나의 형이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하뇨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으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으니라"(왕상9:12~13) '가불'이란 가나안 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솔로몬이 처음부터 성전 건축에 '두로 왕'을 끌어들인 것도 잘못이었지만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존경하고 충성한다고 착각한 것은 더욱 큰 실수었다. 솔로몬의 이 인색한 보답으로 인하여 '두로 왕'이 솔로몬 때려 엎기 작전을 더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두로 왕' 의 '솔로몬 죽이기' 전략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까지 했던 두로 왕 히람의 다음 반응은 뜻밖에도 그에게 엄청난 황금을 바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히람이 금 1백20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왕상9:14) 당시의 금 1백20달란트라면 엄청난 것이었다. 그 때 솔로몬의 1년 세입금이 6백66금 달란트였으니(왕상 10:14) '두로 왕'은 거의 그의 국력을 다 기울여서 그 많은 황금을 솔로몬에게 바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수고에 비하여 형편없는 성읍 20을 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저희가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420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왕상9:27~18) '오빌'의 위치는 아직까지도 학자들의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으나 70인역 LXX의 여러가지 헬라어 표기 중 하나가 '소페이라'로 되어 있고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도 그의 '유대고대사'에서 오빌을 인도의 '소페레트'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빌'은 인도의 수파라(Supara)즉 지금의 '봄베이'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두로 왕'은 솔로몬의 왕금 구매사절단을 인도까지 안내하여 오빌의 금을 실어나르게 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두로는 가나안, 즉 페니키아의 최대 무역항이었고' 두로의 상인들'은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하는 한편으로 홍해에도 그들의 선단이 있어서 인도로 진출하고 있었다. 또 히람은 솔로몬이 홍해의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건조하는 일에도 협력했는데(왕상9:26) 그가 홍해에서 배를 건조한 것도 그 배를 인도로 보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중해 무역에 밝았던 히람은 솔로몬의 구매사절단을 스페인까지 안내하였다.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3년에1차씩 금과 은과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 (왕상 10:22) 이 다시스는 스페인 남부에 잇는 항구 타르테수스(Tartessus)를 가르키는 것으로 광물의 교역이 활발한 곳이었다. 에스겔은 하나님을 반역한 '두로'가 다시스와 교역한 것을 밝히고 있다. "다시스는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너와 통상하였음이여 은과 철과 상납과 납을 가지고 네 물품을 무역하였도다"(겔27:12) '두로 왕'이 이렇게 국력을 다 기울여 가며 막대한 황금을 솔로몬에게 바쳤고 또 발벗고 나서서 인도와 스페인의 금을 사 모으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것이 바로 솔로몬이 자신을 무시한테 대한 '희한한 앙갚음'이었다. 솔로몬은 이로 인하여 황금광이 되었고 마침내 부귀에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을 배반하는 길로 치닫게 되었던 것이다. "솔로몬이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왕상11:4) 왕이 제일 먼저 섬기기 시작한 이방 신은 바로 '두로 사람들'이 크레타섬에서 최초로 만들었던 여신이며 두로의 수호신이 '카르'즉 '아스다롯'이었다. 이를 보면 솔로몬을 타락하게 만든 '왕비들'의 뒤에도 역시 '두로 왕'의 끈질긴 공작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왕상11:5) 그뿐만이 아니라 이제 솔로몬은 이방의 신들을 위하여 산당 즉 그들의 신전까지 건축해주었던 것이다.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저가 또 이족의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왕상 11:7~8) 솔로몬은 완전히 가나안 사람과 똑같은 범신론자가 되어 예루살렘을 신들의 전시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말년의 그는 결국 적그리스도가 된 것이었다. 우리는 솔로몬의 황금 보좌에 6계단이 있었다는것(왕상10:19)과 아울러 그 세입금의 이상한 숫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이하게도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숫자(계13:18)인 '666'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의 세입금의 중소가 666금 달란트요..."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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