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히람의 두 기둥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10-02 |
이제 두로의 기술자 히람이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 공사를 지휘하며 도대체 어떤 일들을 하였는가 살펴볼 때가 되었다. 우선 그는 커다란 놋 기둥 둘을 주조하여 성전의 낭실(廊室)앞에 세웠다. "저가 놋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그 고(高)는 각각 18규빗이라 각각 12규빗 되는 줄을 두를만 하며..."(왕상7:15) 규빗의 길이는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개 손 끝으로부터 팔꿈치까지의 길이라고 하니 1규빗을 45㎝로 환산하면 히람은 높이가 8.1m이고 직경이 1.7m나 되는 두개의 놋 기둥을 주조하여 세웠던 것이다. 또 그 위에는 각각 직경이 2m 가 넘는 머리를 얹었고 그물과 사슬 모양으로 장식하였으며 그 주위에는 2백개의 석류를 만들어 둘렀다. "이 두 기둥을 전의 낭실 앞에 세우되 우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좌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그 두기둥 꼭대기에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왕상7:21) 히람이 두 개의 기둥을 낭실 즉 성전의 현관 앞에 세웠다는 것은 그 기둥들이 건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성전 출입구의 양쪽에 독자적으로 세웠다는 뜻이다. 왜 히람은 건물의 구조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 두개의 똑 같은 기둥을 그토록 거대하게 만들어서 세웠던 것일까? 우리가 쉽게 연상할 수 있는 것은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신전앞에 세우는 기둥들이다. 가나안 사람들은 신전을 건축하고 이 '기둥' 즉 '마체바'를 신전 앞에 두 개씩 세웠는데 이는 본래 가나안 사람들이 우상 숭배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너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소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그 주상(柱像)을 타파하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출23:24~25) 또 기둥들은 가나안 족속의 바깥 성소(왕하17:10)와 바알의 신당에도 사용되었고 (왕하10:26)이를 바알의 주상이라고 했다. 아합의 아들 여호람은 이 바알의 주상을 제거하고 모압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는 저가 그 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음이라"(왕하3:2) 이렇게 가나안 사람들이 신전에 세운 '주상'들은 모두가 히람이 세운 기둥들처럼 원주를 말하는 것이다. 또 예레미야서는 애굽의 오벨리스크 즉 방첨탑도 주상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또 벧세메스의 주상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집을 불사르리라"(렘43:13) 여기에 나오는 '벧세메스'는 태양의 집을 말하는 것으로 애굽의 '온' 즉 헬리오폴리스를 히브리어로 번역한 이름이었다. 이렇게 가나안의 원주 기둥이나 애굽의 오벨리스크는 모두가 우상 숭배의 상징이엇다. 그런데 왜 히람은 예루살렘 성전 앞에다 두개의 놋 기둥을 세웠던 것일까?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신전 앞에 세웠던 두개의 똑같은 기둥은 바로 이원론의 기둥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피조물을 짝을 지어 창조하신 것을 들어서 사단은 니므롯의 때로부터 이원론을 주장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도 둘이다'라는 논리로 발전시켜 사단 스스로가 하나님과 맞서는 신이라고 주장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3~14) 히람은 이 두개의 기둥 중에서 오른편의 것을 '야긴'이라고 했는데 이는 '저가 세우리라'는 뜻이고 왼편의 것은 '보아스'라 했는데 즉 '저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비록 그 뜻이 좋앗다고 하더라도 지금 루시퍼 숭배자들은 이를 악용하고 있다. 지금도 이원론자들의 어떤 조직에서는 신입 회원들이 기초과정을 마치면 이 두개의 기둥 사이를 통과하는데'보아스'는 힘을 의미하고 '야긴'은 컨트롤을 의미한다고 하며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컨트롤이 없는 힘은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이 두개의 기둥에다 서로 상반되는 개념들을 이원론적으로 분배해 놓고 그것으로 두 세력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 상징물들을 보면 언제나 '야긴' 쪽에는 태양을 그려놓아 빛을 의도하도록 하고'보아스'쪽에는 달을 그려 놓아서 어두움을 상징하게 한다. 즉 '야긴'은 건설적이고 과학적이고 적극적이라고 주장하는 '가인'의 세력을 말하고 '보아스'는 파괴적이고 미신적이고 부정적이라고 매도하는 '셋'의 족속을 상징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의도는 '야긴'을 빛의 신인 루시퍼의 기둥으로'보아스'를 여호와 하나님의 기둥으로 몰아가서 마치 루시퍼가 여호와 하나님을 컨트롤하는 존재인 것처럼 논리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또 성경을 이용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어둠의 신'이라고 부른다. "저가 흑암으로 그 숨는 곳을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시18:11) 그러나 사실은 이것도 사단의 속임수이다. 본래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신 분이요 그분 자신이 바로 빛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1서 1:5) 그러므로 참된 빛이신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에느 주변의 모든 빛을 잃게 되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께서 흑암 가운데 나타나셨다고 표현하였다. 그런데도 성경 구절을 들어 하나님을 어둠의 신이라 하고 오히려 자신을 빛의 신이라고 내세우는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이 하도 어이없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거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고후11:14~15) 그러므로 히람이 예루살렘 성전 앞에 두개의 기둥을 세운 것은 두로 왕의 면밀한 작전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율법서에는 이런 기둥을 세우지 말라는 명령이 엄연히 기록되어 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찌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레26:1) 히람이 예루살렘 성전에 세운 것은 주상 뿐이 아니었다. 그는 또 성전 앞 마당에 2천 밧(4만5천ℓ)이 들어가는'놋바다'를 만들고 열두 마리의 소가 받치고 있게 했으며 그 받침에도 소와 사자의 상을 만들어서 (왕상 7:25~29)어떤 짐승의 형상이라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출20:4)를 위반하게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역사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의 '유대고대사'에서 이렇게 썼다. "솔로몬은 놋바다를 지탱하는 놋기둥을 소 형상으로 만들고 보좌 둘레에 사자상을 세울 때부터 이미 모세 율법을 어기고 죄를 저지른 것이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8-7) 솔로몬으로 하여금 이렇게 실족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것이 바로 두로왕의 원대한 음모였고 두로의 기술자 히람의 치밀한 공작이었던 것이다. 요세푸스는 솔로몬의 실패를 이렇게 한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꿈에 두번씩이나 나타나셔서 다윗을 본받으라고 그렇게 당부하셨건만 그는 아비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同上)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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