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돌을 쌓는 사람들

은바리라이프 2008. 5. 26. 13:50
제목 : 돌을 쌓는 사람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3-08-21
가나안에 기근이 있어서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들어간 것은 BC 1876년이었고 이 때 그들의 수는 70명이었다.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 인이었더라.” (출 1:1~5)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본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엇다. 이미 아브라함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예고 하신 일이 있었던 것이다.
“네 자손이 이방에게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녀를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懲治)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 15:13~14)
하나님께서 왜 그들을 애굽으로 들여보내셨는지 그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가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들어간 일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때의 문제가 확대되어서 자손들에게까지 화가 미쳤는지도 모른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그들의 조상 때문에 억울한 고생을 한 셈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고생시키시는 이유가 세상의 아버지들이 그 자녀들에게 하는 것처럼 연단과 훈련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위해서 히브리 백성으로 하여금 4백년간이나 혹독한 훈련을 받게 하셨던 것일가?
BC 1446년에 애굽에서 빠져나온 히브리 백성들은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거친 후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결국 하나님의 목표는 ‘가나안 공격’ 이었던 것이다. 가나안은 이미 아브라함의 때로부터 하나님께서 징계를 계획하셨던 반역자들의 본거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가나안 공격’은 그들 족속의 징계만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건설하고 세상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히브리 백성들은 4백년 동안 모진 훈련을 받으며 강인한 체력과 함께 겸손한 사랑을 배워야 했던 것이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출 1:8~9)
애굽의 역사도 역시 왜곡된 바벨론의 역사처럼 매우 혼란스러워서 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애굽의 연대와 성경의 연대를 비교해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애굽 연대기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신 왕국 시대에 작성되었다는 ‘투린 파피루스’ 와 BC 3세기의 사제 마네토가 기록한 ‘애굽 역사’가 있고 선사시대의 연대를 추정하는 카본14의 방법이나 천문학적 지식을 활용해서 얻은 것들이 있는 정도이다.
이런 불확실한 자료들을 가지고 성경의 연대와 비교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한 일이며 다만 왕조의 승계와 왕들의 이름 정도를 확인하는데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 뿐인 것이다. 지중해 연안 지역의 역사와 그 연대를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성경뿐이다.
그런데도 학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연대를 제쳐놓고 소위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내겠다고 애를 쓴다. 아마도 성경이 ‘종교적인 자료’여서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나 학자들이 몰두하고 있는 애굽의 자료들은 모두가 점쟁이나 마술사에 가까운 애굽 사제들의 기록인 것이다. 학자들이 사건의 연대를 얼토당토 않게 계산 해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피라밋 건축의 연대 추정이다.
학자들은 투린 파피루스의 불확실한 기록을 근거로 하여 피라밋을 건축하기 시작한 제3왕조에서 제6왕조까지를 BC 2686년에서 BC2180년까지로 추정했다. 그러나 성경의 대홍수는 BC 2458년에 있었으므로 모든 피라밋의 건축연대는 홍수 이후로 끌어내려져야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모든 육지는 홍수 이후에 바다 위로 끌어 올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시 104:6~8)
그러므로 홍수 이후에 돌로 세운 건축물이 바다 속에 있다면 또 모르겠으나 그것이 땅위에 남아 있을 수는 없는 것이며 그렇다면 애굽의 피라밋은 홍수 이후에 건축되었다고 볼 수박에 없는 것이 다. 애굽은 과연 언제 피라밋을 건축했던 것일까?
본래 애굽의 조상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살다가 셈의 횡포 때문에 밀려 내려간 함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 이다(창 10:13).이것을 아카드어에서는 ‘무스리’라 하고 아랍어로는 ‘미스르’라고 한다. ‘애굽’이라는 이름은 ‘하쿠프타’에서 온 것으로 ‘프타 신의 대저택’이라는 뜻이며 프타는 철공의 신이었다. 이는 애굽도 금속 기술을 물려받은 함의 자손임을 나타내고 잇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굽 사람들은 금속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우수한 건축 기술은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아르박삿의 아들 가이난이 니므롯의 바벨탑 건축을 도와주었던 것처럼 누군가 셈의 기술자가 애굽의 피라밋 설계와 시공을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피라밋의 건축은 엄청난 인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케오프스 왕이 세웠다는 기제의 대피라밋은 그 높이가 137미터이며 3톤 이상의 돌을 2백30만개나 쌓아 올린 것이다. 헬라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이 피라밋을 10만명의 인원이 20년을 걸려서 건축하였다고 기록했다(‘역사’권2). 당시 애굽만의 인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이 피라밋 건축에 히브리 백성들이 참여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출 1:9)
야곱의 후손들이 처음 애굽에 들어갔을 때에는 그 수가 70명에 불과햇으나 그로부터 4백30년이 지난BC 1446년 그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장정의 수를 계수하였을 때 20세 이상 된 사람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장정이 60만3천5백50명이었다. 장정의 수만 그러했으므로 전체의 수는 2백만을 훨씬 넘었을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수가 애굽보다 많았다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애굽이 처음에는 비교적 엉성한 피라밋을 자신들의 힘으로 건축했을지 모르나 기제의 대피라밋처럼 규모가 크면서도 정교한 것은 히브리의 기술자와 인력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요셉을 모르는 왕들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그들은 히브리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이 피라밋을 건축하는데 히브리 백성들의 기술과 노동력을 이용했다면 애굽왕들이 본격적으로 거대한 피라밋을 건축하기 시작한 제4대 왕조에서부터 제6왕조 사이의 역사는 모두 BC 1800년 이후로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출 1:11)
‘비돔’은 피 아툼 즉 아툼 신의 것이라는 뜻이며 ‘라암셋’은 람세스 왕의 재산이라는 뜻이다. 아툼 신의 성읍인 트제쿠에서 람세스2세 때의 여러 가지 유물들이 나온 것으로 보아 히브리 백성들이 비둠과 라암셋의 건축을 위하여 동원된 것은 람세스2세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소위 고왕국이라고 일컫는 4왕조에서 6왕조 사이를 거치면서 히브리의 많은 기술자들이 피라밋의 설계와 시공에 참여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처음에는 바로의 우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히브리 사람들의 성장에 불안을 느낀 왕들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마침내 히브리 백성들은 본격적으로 피라밋 공사에 동원되었으며 그 강제노역은 람세스 2세때 비돔과 라암셋의 건설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