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우를 대신하여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08-18 |
사람은 누구나 아담과 하와의 품성을 공유하고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결백할 수 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누구나 다 한번 쯤 잘못을 저지를 수 잇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나중에 그 저지른 잚소을 처리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마 21 :28~31) 이 뉘우치고 간 아들이 곧 아버지의 뜻대로 한 아들이었다. 처음에 아버지의 편애를 불평했던 유다는 자신이 아들의 일로 슬픔을 당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아들이라야 아버지의 신임을 받고 장자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게 하지 아니하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창 44:30~31) 이렇게 호소한 유다는 마침내 자신을 아우대신 잡아달라고 간청하게 된다.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창 44:32~34) 이것이 바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서 진정한 장자권자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유다가 이렇게 간절한 음성으로 호소하자 마침내 애굽의 총리는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자기가 바로 요셉인 것을 밝히고 형들을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이것을 알게된 야곱은 유다가 그 형제들의 찬송이 되리라고 축복하였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창 49:8)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하여금 그의 열 두 아들 중에서 유다에게 장자권을 물려주도록 하셨던 이유였다. 그리고 그 유다의 지파에서 아우들을 대신하여 징계받는 장자권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는 것이다. 사실상 예수의 탄생은 유다의 혈통과 관계가 없었다. 다윗의 자손인 요셉과 동침하기 전에 이미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지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마 1:18~19) 예수의 나심이 유다 지파의 요셉과 관계가 없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씨로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거듭 약속하셨는가? 오히려 오늘날 세계는 바로 그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인 이스라엘과 아랍의 불화 때문에 끝없는 전쟁과 테러를 겪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네 '씨'로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한 그 '씨'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맞추어 순종하려 했던 그 믿음의 씨앗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가? 그 좋은 예로 우리는 '라합'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렇게도 지키려고 애를 썼던 셈의 혈통은 유다의 6대손 살몬에게 가서 결국 가나안의 피와 섞이게 된다. 살몬은 히브리 군대가 여리고 성을 공략할 때 히브리의 첩자들을 도와주었던 가나안 여인 라합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게 되는 것이다. (마 1:5) 아브라함의 때로부터 내려온 전통과 율례대로라면 살몬은 당연히 장자의 대열에서 탈락되어야 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정통성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와 결혼한 라합에 대한 찬사로 가득차 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히 11:31) 히브리서의 기자가 이렇게 라합의 믿음을 칭찬했는데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던 야고보는 또 그녀의 행함에 대해서도 칭찬을 하였다. "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 (약 2:25) 이렇게 '믿음'과 '행함' 에서 동시에 합격한 라합의 신앙고백은 매우 간절하면서도 놀라운 것이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上天) 하지(下地)에 하나님이시니라(수 2:11) 바로 이것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온 땅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기 위해 아스다롯여신을 만들었고 그들의 신은 모두 땅의 신들이었는데 라합은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분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심을 분명하게 고백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그 '씨'는 바로 이러한 신앙고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장자권 계승도 역시 유다 지파인 요셉의 혈통을 계속한 것이 아니라 '요셉은 의(義)로운 사람이라...(마 1:19)' 고 하는 그 '의로움' 의 계승이었다.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은 바로 그분의 말씀을 믿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義)로 여기시고 " (창 15:6) 장자권의 계승은 혈통이 아닌 믿음으로 계승되는 것이었다. 라합에게서 타어난 보아스도 모압 여자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오벳을 낳았는데 룻도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자였다. 룻의 소생인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나중에 다윗도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는데 그러나 이번에는 문제가 달랐다. 유갑스럽게도 밧세바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밧세바라는 여자는 남편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에 외간 남자가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예사로 알몸을 드러내고 목욕을 했을 정도로 전형적인 가나안 여인이었다. 그 밧세바의 소생인 솔로몬은 나중에 수많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여 유다 왕실을 타락케 하고 '화(禍)의 근원'이 되었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왕상 11:1)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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