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스다롯의 사제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08-07 |
하나님께서는 본래 여자를 지으실 때 진취적인 품성을 지닌 존재로 지으셨다. 여자는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지었기 때문에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었으며 아담의 '돕는 배필' 로서 그에게 용기를 주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진취적인 품성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는 사탄의 강력한 공격을 받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하와의 진취적인 품성은 그녀로 하여금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게 했으며 그 남편에게도 그것을 먹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3:6) 그래서 사탄이 그의 음모를 시작할 때에는 반드시 여자를 이용하고 여자를 앞세운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을 반역하여 거짓의 신들을 만들어 낼 때에도 여자 신 '카르'를 만들었으며 카르의 변신인 아스다롯의 신전에서 일하고 있더 여자 사제들은 남자를 타락시키는 음녀들이 되었다. 그들은 바로 사탄의 군대를 선도하는 선발대가 되었던 것이다.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서 그 모든 타락과 퇴폐를 목격한 아브라함은 음란한 피를 지닌 여인들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문화의 혼합이란 바로 여인들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구할때 그의 종 엘리에셀을 멀리 하란 땅으로 보내어 그 자신의 친척들 가운데서 신부감을 고르도록 부탁했던 것이다.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 24:3~4) 이렇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원수로 여기시는 가나안 사람들과 혈통을 섞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엘리에셀의 기도와 그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이삭의 신부감으로 선발된 리브가는 과연 그녀가 교회의 모형이 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현숙한 여자였다. 리브가가 엘리에셀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엘리에셀의 부탁대로 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데려온 열마리의 약대에게도 물을 먹였을 정도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또 그녀는 엘리에셀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응답으로 자신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미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혼인을 승락한 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비는 며칠을 더 있다가 딸을 데려가도록 부탁했으나 엘리에셀이 곧 떠나야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리브가의 의견을 물었다.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가겠나이다" 리브가의 대답은 단호했다. 이것은 바로 주께서 부르실 때 즉시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해야하는 교회의 자세를 보여준 것이었따. 이 리브가가 교회의 모형이 라는 사실은 그녀가 아브라함의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나타난다. 그녀의 신랑이 될 이삭은 집에서 앉아 기다리지 않고 '브엘 라해로이'까지 마중을 나갔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가 '들림받음'을 예표하는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 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6~17) 이렇게 리브가의 면모는 그녀가 교회의 모형이 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만큼 완벽햇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녁 아들 야곱과 함께 그 남편 이삭의 눈을 속여서 야곱으로 하여금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도록 돕는 장면이 나온다. 리브가는 왜 그 남편을 속여서 야곱이 장자권을 차지하도록 했던 것일까? 창세게에는 야곱이 리브가의 사랑을 많이 받은 아들로 묘사되고 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익숙한 사냥꾼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창세기 25:27~28) 리브가는 왜 야곱을 더 사랑하였을까요? 그가 얌전하고 조용한 성품이어서 사랑했던가? 리브가는 여인 중에서도 매우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오히려 그녀의 성품으로는 남성적이고 활달한 에서를 더 좋아할만했다. 왜 그녀는 에서의 장자권을 빠앗아서 야곱에게 주도록 일을 꾸몄을까?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리브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왜 자기가 먼곳까지 와서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시아버지인 아브라함은 그 아들이 가나안 여자와 결혼을 하지 말도록 그 종을 멀리 하란까지 보내어 친척 중에서 리브가를 데려오도록 했던 것이다. 현명한 리브가는 왜 아브라함이 가나안 사람과의 혼인을 피했는지 그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의 여신을 만들어낸 저주 받은 백성들이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세기 9:25)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로 그녀의 장자인 에서는 부모와 의논도 하지 않고 가나안에 속하는 헷족속의 딸을 그것도 두 명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던 것이다. "에서는 40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창세기 26:34~35) 이 대목에서 보면 리브가 뿐만 아니라 이삭도 에서의 결혼 문제 때문에 근심을 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순종의 사내 이삭은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려니 하며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리브가의 생각은 달랐다. (이것은 시아버지 아브라함의 뜻도 아니며 딸서 그가 섬기는 하나님의 뜻은 더욱 아닐 것이다. 에서에게 그대로 장자권을 물려 주는 것은 하나님께 큰 잘 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마침내 리브가는 결심했다. 소극적인 남편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눈이 어두운 남편을 속여서라도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 아들의 장자권을 빼앗아야 했고 가나안 여인에게서 태어나는 아이에게 그것이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가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의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세상을 물려 받지 못하게 해야 한다. 교회 안에 가나안의 음품이 섞여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그 더러운 바람이 온 교회를 물들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것이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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