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적진 속으로 들어가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07-28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신 이유는 물론 반역자들의 핵심이었던 가나안 세력을 징계하시기 위합이었다. 그들이 비록 천하를 뒤덮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라는 '단 한사람'과 함께 그 일을 시작하셨다. 하나님 쪽으로 볼 때에는 '순종'하는 단 한사람이 천군만마보다도 더 소중했던 것이다. "제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령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창 26:4-5)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의 아들 이삭에게 주신 말씀이었다.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바라보면 순종의 신앙을 익혀왔던 아브라함이었으나 그의 외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는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 과연 어떤 논리로 그것을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들을 잡아서 번제로 바치는 것은 당시 세상을 뒤덮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신에서 제사드리는 방법이었다. 그들은 주로 자신의 아들 중에서 장자를 잡아서 제물로 바쳤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 신에게 희생 제물로 그들의 낳은 첫 아들을 죽여 바친 것이다. 이런 일은 가나안 땅 대부분의 국다들이 행했는데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도 이같이 행했다."(원용국 '성서고고학' 가나안 종교) 아스다롯 여신에게 장자를 잡아서 제물로 바친 것은 바로 '장자권'에 대한 저주였다. 그것은 동시에 장자권이란 제도를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그것은 장차 새로운 '장자권자'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저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가나안 사람들이 하는 방법대로 아브라함에게 그 독자를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저주 받은 죄인처럼 내어주어 인류의 대속제물로 주시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이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아담 이후로 죄에 빠진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고 죽음에서 살려내시려는 것이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아브라함의 순종은 그로하여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하나님의 크신 계획에 동참하도록 했던 것이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나서 고뇌에 잠겼을 것이다. (온갖 거짓의 신들을 섬기는 가나안 사람들도 자신들의 신을 위하여 그들의 자신을 잡아서 바치는데······ 어찌 창조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이러한 반성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 같이 필요한 것이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그들의 신에게 바치고 있는 그 정도의 정성이라도 들여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일까?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는 모리아 산에서 있었던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의 대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내가 네 아비가 된 것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기에 이제 내가 너를 포기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니 하나님께 너를 바치는 것을 아량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만일 제가 하나님과 아버지의 결정을 거부하고 두 분의 기쁘신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태어날 가치조차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인하여 인류에 대한 구원의 계획을 차질없이 준비하실 수 있었던 하나님께서는 그 협상의 성공이 너무나 바쁘셔서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부르셨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이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사 41:8)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의 순종은 그 아들 이삭에게로 이어졌고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의 반역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불러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실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칼이나 창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신 적이 없었다. 가나안을 공격하는 최강의 무기는 오직 이 순종뿐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들여보낸 가나안 땅은 바로 하나님을 반역한 무리들의 본거지였다. 가나안 땅에 있는 두개의 성읍 즉 '두로'와 '가사'는 바로 사탄의 두 눈과 같은 곳이었고 북방의 바벨론과 남방의 애굽은 사탄의 두 날개와 같았다. 바벨론은 사탄의 지상 정부 즉 적그리스도의 모형이었고 애굽 왕들의 무덤인 피라밋은 악령의 상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사탄의 본거지 즉 가나안 땅으로 아브라함을 끌고 들어가신 것이다. 가나안을 중심으로 하는 이들 세력들의 모양은 꼭 지중해를 향해여 날개를 벌이고 있는 큰 새와도 같았고 아브라함이 들어간 곳은 그 새의 머리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새는 지중해를 껴안으며 크레타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성경역사 > 성경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목 : 아스다롯의 사제들 (0) | 2008.05.26 |
---|---|
제목 :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0) | 2008.05.26 |
제목 : 네 씨로 말미암아 (0) | 2008.05.26 |
제목 : 아브라함의 하나님 (0) | 2008.05.26 |
제목 : 하란으로 돌아가자 (0) | 2008.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