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비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08-14 |
아비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그 명령에 순종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큰 계획을 그의 자손을 통하여 성취하리라고 약속하셨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對敵)의 문을 얻으리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遵行)하였음이니라”(창 22:17~18)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어진 이 언약은 그의 아들 이삭에게도 이어졌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順從)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창 26:4~5) 그리고 똑같은 내용의 약속이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로 그 장자권과 함께 승계되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 28:14) 야곱은 라반의 두 딸과 그들의 몸종까지 아내로 삼아서 아들을 열 둘이나 낳았다. 그러므로 야곱의 장자권이 어느 아들에게로 넘어가느냐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장자권은 실수를 저질렀던 르우벤과 난폭한 칼질로 말썽을 일으켰던 시므온과 레위를 다 제치고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에게로 돌아갔다. 야곱의 아내 레아는 첫아들을 낳았을 때 그의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였는데 그것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이었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그녀의 탄식을 ‘들으셨다’는 뜻의 시므온으로 불렀고 셋째 아들은 레위라 하였는데 그것은 ‘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남편과의 연합을 바라는 레아의 소망을 담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녀에게 마구 복을 쏟아 부으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또 아들을 낳아서 그 넷째 아들의 이름을 유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다’는 뜻이었다. 하나님께서도 레아에게 주신 아들 유다를 통하여 찬송 받으시기를 원하셨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홍수 이후에 노아가 셈의 집안에 주었던 장자권의 축복과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창 9:26)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하여금 그의 열 두 아들 중에서 유다에게 그 장자권을 물려주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다도 역시 야곱의 다른 아들들처럼 결점과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는 것을 보고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미워했었다.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창 37:4) 요셉을 미워하던 그 형들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어느날 야곱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에게 요셉을 보냈는데 그는 도단에서 형들을 만나게 되었다. 요셉을 죽일 기회를 찾고 있던 형들은 즉시 요셉의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그 때에 형제들 중의 넷째인 유다가 아우를 죽이지 말고 그를 팔아버리자고 제안을 했다.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창 37:26~27) 이렇게 해서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갔고 아버지 야곱은 아들들로부터 요셉의 찢어진 옷을 받아들고 그가 죽은 줄로 알고 통곡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끌려간 요셉으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보여주신 게시를 따라 풍년이 들었던 7년 동안 식량을 비축해 두었다가 다시 7년간 흉년이 계속될 때 굶주린 백성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었다. 이 때에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있었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은 애굽에 양곡이 잇다는 말을 듣고 곡식을 구입하러 내려가게 되었다. 그들을 만나본 애굽의 총리는 그들에게 막내아우가 또 있다는 말을 듣고서 다음에 올 때에는 반드시 그를 데려 오라고 일렀다. 애굽에서 사온 식량이 다 떨어지게 되자 야곱의 아들들은 또 애굽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막내아우를 데려오라고 한 애굽 총리의 부탁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였다. 야곱이 펄쩍 뛰면서 그의 막내아들 베냐민을 보낼 것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창 42:38) 야곱이 베냐민을 데려가지 못하게 하자 부친 앞에 유다가 나섰다. 유다도 젊어서는 아우 요셉은 물론 그를 편애하는 부친까지도 미워했으나 자신의 아들인 엘과 오난을 잃고 나서부터 그는 요셉을 사랑하는 부친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창 43:9) 아마도 야곱은 전보다 훨씬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다만을 신임 했던 것 같다. 유다가 이렇게 부친을 설득했기 때문에 그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굽의 총리를 다시 만나 좋은 대접을 받고 식량을 구한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문제가 생겼다. 잃어버렸다는 총리의 은잔이 바로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총리는 은잔을 훔친 베냐민을 잡아서 그의 종으로 삼겠다고 했다. 일이 그렇게 되자 가장 난처하게 된 것은 가나안을 떠날 때 부친에게 아우를 지키겠노라고 장담했던 유다였다. 그는 무슨 방법으로든 베냐민을 구해야 했다. 그는 총리 앞으로 나가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주여 청컨대 종으로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고하게 하소서”(창 44:18) 여기서부터 유다가 애굽의 총리인 요셉에게 호소하는 내용은 매우 감동적이다. 그 진술 속에는 아우를 장사꾼에게 팔았던 참회와 아버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아우에 대한 사랑이 가득차 있는 것이다.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비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우리가 내 주께 고하되 우리에게 아비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 노년에 얻은 아들 소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 어미의 끼친 것은 그뿐이므로 그 아비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창 44:19~20)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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