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데라의 회한

은바리라이프 2008. 5. 26. 10:48
제목 : 데라의 회한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3-07-14
나홀의 아들이며 아브람의 부친인 데라가 태어난 것은 BC2236년 이었고 그것은 동방으로 이동한 셈의 자손들이 아사달에 정착하여 감사의 제단을 쌓은 BC2333년부터 계산하면 97년이 지난 후였다.
이 시대는 바로 사냥꾼 니므롯의 반역으로 수립된 바벨론 정권이 화려한 반역의 문화를 꽃피우며 천하를 장악하고 있던 전성시이기도 했다.
바벨론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BC2250년 사르칼라사리에 의한 것인데 그는 부친 사른곤 왕이 시작한 악가드의 건설을 완공했다는 것이었다. 사르곤 왕은 곧 앗수르 왕이었으니 이렇듯 바벨론의 문명이라는 것은 본래 앗수르에 그 뿌리를 둔 것이며 더 올라가면 수메르 문명의 모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수메르 문명의 아들에 해당하는 바벨론 문명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다시 나타난다. 바벨론의 역사를 보면 바벨론은 무역으로나 예술로도 앗수르에 미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2-D)
본래 바벨론 문명은 인본주의 기초하고 있었으므로 창조의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인본주의를 밀어주는 사탄이라는 존재는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탄은 본래 거짓말장이로서 남의 것을 가져다가 모방하여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상투적인 버릇이 있었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바벨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수메르에서 물려받은 건축기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했고 수메르의 쐐기문자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자기들이 문자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수메르가 만든 바퀴를 자기네가 발명한 것이라고 선전하였다. 바벨론은 이렇듯 수메르의 문명을 고스란히 받아 들였으면서도 그것들을 모두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벨론의 문명은 화려했다. 그들의 통치 방법은 피라밋 모양의 조직을 구사하는 것으로 소수의 지도 그룹이 하부계층을 이끄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직의 하부에 속하는 민중은 늘 조직이 요구하는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바벨론의 화려한 문명은 바로 강력한 지배계급의 채찍의 하부 조직의 희생위에서 건설된 것이었다.
바벨론의 주신은 여신 이쉬타르였고 이쉬타르는 가나안의 아스다롯과 같은 것이었다. '벨'이라는 남성 신이 나타난 것은 이쉬타르보다 휠씬 뒤였고 벨은 본래 가나안의 '바알'과 같은 미스터 이쉬타르였다. 가나안의 두로와 시돈이 아스다롯의 성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바벨론도 역시 이쉬타르의 도성이었다. 바벨론의 성문은 이쉬타르의 문이라고 불리웠고 바벨론에는 1백80여개의 이쉬타르 신전이 있었던 것이다.
이 바벨론의 주도세력이 바로 갈대아 사람들과 아모리 족속이었다. 갈대아 또는 갈두사람들은 니므롯과 함께 혁명을 일으켰던 세력이었고 BC627년 이후 후기 바벨론을 중훙시킨 느부갓네살의 아버지 나보풀라살도 역시 갈대아 사람이었다. 이들 갈대아 세력의 중심은 수메르의 도성이었던 '우르'였는데 이 우르가 우상과 점성술의 본토로 된 것을 보면 이들 갈대아 세력은 아스아롯 여신을 처음 만들어낸 가나안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 BC1895년경 바벨론의 서쪽을 점령하고 있던 아모리 족속의 '수무아붐'이 바벨론에 들어가 왕이 되었는데 BC1792년경 그의 다섯번째 계승자가 된 사람이 바로 법전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함무라비였다. 그런데 성경은 이 아모리 족속도 역시 가나안의 아들이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과 조상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처하였더라"(창 10:15-18)
이로서 보면 가나안 족속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인본주의의 세력을 구축한 장본인들이었다. 성경 밖에서 가나안 사람들은 '페니키아' 민족이라고 불리워지는데 이 페니키아란 붉은 색 물감을 가리키는 말로서 붉은색 옷감은곧 페니키아 사람들의 특산물이었다.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겔 28:4-5)
가나안 사람들의 본거지는 지중해의 크레타 섬이었고 돈을 벌어 교만해진 그들은 이 섬에서 새로운 여신 '카르' 즉 '아스다롯'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아스다롯의 탄생지인 크레타 섬의 남쪽에는 '페닉스'라는 항구가 있었다(행 27:12). 이 '페닉스' 즉 페니키아이 새는 셈에 대한 투쟁을 의미하는 '불사조'의 이름이었다.
또 가나안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의 하나는 바로 '정보의 능력'이었다. 장사꾼에게 있어야 할 필수의 도구가 바로 정보의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가나안은 나중에 그들이 하나님을 반역할 때 이 정보의 능력으로 니므롯의 집권을 돕고 그의 정권을 유지하게 했다.
정보 관리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윤리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가나안은 이것으로 백성들을 제압하는데 사용했다. 가나안의 아비함이 그가 얻은 정보로 아비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쯤되면 왜 노아가 그때 함을 저주하지 않고 그의 네째 아들 가나안을 저주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 9:25)
이 저주받은 가나안의 정보망은 앞으로 오는 마지막 때에도 인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아주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계 13:16-17)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가나안의 두로왕이 바로 사탄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두로는 바로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고 아스다롯이 최초로 상륙한 가나안세력의 총본부였던 것이다.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겔 28:2)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또 스가랴 선지자에게 가나안이 바로 하나님의 원수이며 그 가나안 사람들은 끝까지 저주받을 것을 예고하셨다.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슥 15:21)
바로 이 가나안 사람들이 주도해서 바벨론은 건설되었고 가나안 사람들의 정보망은 전세계를 지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서 에벨이 건설한 하나님의 왕국 에블라는 멸망했던 것이다. 에블라 왕국이 무너지자 에벨의 후손인 데라와 그의 가족들은 정처없이 동쪽을 향해 가다가 갈대아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우르'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