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금빛 하늘의 파수꾼들

은바리라이프 2008. 5. 26. 10:21
제목 : 금빛 하늘의 파수꾼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3-07-03
소호의 서은 김천이라고 한다. 음양오행설에서 금은 서쪽을 의미하는데 소호는 서쪽의 금빛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김천이라는 성을 가진 것으로 보아 서쪽으로 파견되었던 동방족의 감독자이며 후원자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즉 요와 그의 일행을 서쪽으로 보내면서 동방의 장자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도하기 위해서 '지'를 산동반도에 파견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김을 '친'이라고 발음하는데 산동성 이남으로 내려가면 지금도 우리와 똑같이 '김'이라고 읽는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김유신이 바로 소호 김천씨의 후예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유신의 비석에 그가 헌원의 후예이고 소호의 자손이라고 하였는데 그는 가야 왕의 후손이므로 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성도 그의 동성이다"(삼국사기)
이를 보아 소호 김천씨는 바로 니므롯의 간계로 밀려난 앗수르의 '헌원'의 직계 자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셈과 야벳과 함의 형제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찾아서 대장정을 감행한 주도세력이었다. 그들은 또 '요'가 새 땅을 개척하기 위해서 아사달을 떠났을 때 직접 그를 지원하기 위해서 산동성으로 들어갔으며 '순'을 도와준 '부루'도이 김천씨였다.
본래 함과 야벳의 혼합된 형제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간 '요'가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그들을 지도하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회남자'는 요가 처음에 이 중국 남방의 형제들을 다스리느라고 애를 많이 먹었던 사실을 상징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요의 때에 해가 열매나 생겨나서 나락과 곡식을 먹을 것이 없어졌고, 이 때 많은 괴물들이 나와서 백성을 괴롭히고 해하였다"('회남자')
해가 열개나 생기고 많은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에 많은 혼선과 이단이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남자'는 이 모든 문제를 '요'가 홀로 해결한 것처럼 기록하고 있으나 사실은 동방에서 그를 도와주기 위해 '지'의 전도단이 산동반도로 들어가서 그를 도와주었다. 즉 산동반도에 파견한 소호 김천씨의 자손들은 모두 중국남반의 형제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고 양육한 하나님의 '파수꾼'들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고대사는 앙소와 용산의 두 문화권으로 크게 나뉘어진다(이춘식 '중국사'). 하남성 양소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앙소문화권은 중국의 주도세력인 한족의 유적으로 그들의 언어는 야벳계의 언어와 같은 주어-서술어-목적어의 언어구조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산동성의 용산현 부근에서 출토되고 있는 용산문화권의 토기와 청동기들은 동이족의 문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주로 서쪽에 분포되었던 앙소문화권은 곧 '요'와 함께 이동했던 함과 야벳의 생활권이었고 산동성의 용산문화권은 이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동방으로부터 파견되었던 소호 김천씨의 지역이었다. '요'의 뒤를 이어서 지도자가 된 '순'의 제자 '우'는 동이족의 도산국 여자와 결혼하였으며('서전') 그 처가의 도움으로 황하의 범람을 해결하여 명성을 얻고 순의 후계자가 되었다.
"우는 형산에서 창수사자로부터 금간옥첩을 얻었다"('역대신성통감')
이 창수사자는 동방족 출신의 지도자였으며 세종실록지리지는 그가 단군의 아들인 '부루'였다고 말한다.
"우는 도산 회의에 참석한 부루로부터 금간옥첩을 받았다"('세종실록지리지')
또 그는 동방의 지도자를 방문하여 가르침을 받고 그들의 역법과 절기를 모두 동방의 것에 맞추었다.
"드디어 동방의 군장을 알현하고 사시외 저기를 모두 동방 군장의 나라와 합일하게 하고 도량형의 제도를 동률로 하였으며 오례를 모두 수정했다"('사기')
요는 그의 후계자를 물색하다가 같은 함 계열의 순에게 지도자의 자리를 물려주었고 순도 역시 그의 제자였던 우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 후 우는 자신의 아들 계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이 세습된 지도체계는 곧 반발에 부딪혀서 혼란을 야기 시켰다. 그러자 설의 아들인 탕이 강력한 지도체제를 확립하고 대륙의 질서를 바로 잡았는데 이 '탕'은 곧 산동반도에 들어와 있던 지도세력 출신어었다.
"곡의 둘째 부인이 새의 알을 먹고 설을 낳았으며 설의 아들이 곧 탕이다."('회남자')
이로부터 동방족이 직접 중국 대륙을 처리했으나 14대째의 지도자 '주가 수메르의 장자처럼 난폭하여 주의 서백창에게 쫓겨났고 그후로 또 춘추 전국시대의 혼란이 거듭되다가 마침내 중국 최초의 황제인 시 황제가 나타나서 BC221년에 천하를 통일하게 되는 것이다.
장사꾼 여불위의 혈통인 진시황 정은 실크로드를 따라 비단을 수입하러 왔던 서역의 장사꾼들로부터 바벨론의 음란한 문화를 받아들여서 용을 황제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는 또 산동의 곡부 출신이었던 공자가 '하늘의 도리'를 가르친 책들을 모두 불사르고 아사달과의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음으로써 동방의 하나님과 결별하였다. 이로부터 산동성에 거하고 있던 금빛 하늘의 파수꾼들은 차츰 한반도의 남단으로 물러가서 AD42년 '가야'를 건설하게 되었던 것이다.
진시황의 만리장성 공사에 동원되었던 유방이 황음을 일삼던 진시황을 몰아내고 야벳의 제국 한을 대륙에 세운 것은 BC202년이었으니 이는 서양에서 바벨론 세력을 꺾으면서 새로 나타난 야벳의 제국인 로마가 대제국의 기초를 확립하고 있던 때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