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아우들이 떠날 때

은바리라이프 2008. 5. 26. 10:14
제목 : 아우들이 떠날 때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3-06-30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야벳 집안의 많은 형제들과 함의 장자였던 구스의 일부 자손들이 셈의 장자들을 따라서 동방의 땅 끝까지 따라온 것은 노아의 예언 때문이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 9:26)
가나안은 셈을 뒤엎으려는 니므롯을 돕기 위해서 크레타 섬에 들어가 새로운 신들을 만들어낸 족속이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가나안에서 퍼부어진 저주를 피하고 셈의 장막에 거하기 위해서 그들은 먼 길을 따라왔던 것이다.
그러나 장자를 따라온 그들이 '아사달'의 넒은 땅에 정착하여 경건한 신앙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을 때 한가지 걱정거리가 싹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늘 아우들에게 땅을 양보하며 결국 땅 끝까지 밀려온 장자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제 또 인구가 많아져서 형제간에 갈등이 생기면 형들은 또 보따리를 싸들고 떠나겠다며 날설 것 아닌가?)
그들은 바이칼 호수를 건너서 우스문을 지나 우수리 즉 블라디보스톡 지역에 이르렀을 때 거기서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본 적이 있었다.
(이곳이 결국 땅의 끝인 것 같은데 이제 형들은 더 이상 갈 데도 없지 않은가?)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수근거리며 걱정하다가 드디어 한가지 결단을 내렸다. 즉 이번에는 장자들을 기어코 아사달에 눌러 살게 하고 자신들이 새로운 땅을 찾아서 나서 보자는 것이었다.
마침내 이 아우의 집안들은 장자들을 아사달에 눌러앉게 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서 떠나기로 했다. 아우들은 떠나보내는 것이 못내 불안했지만 장자들은 그들을 축복하면서 떠나보냈다. 그러면서도 아우들에게 신앙을 굳게 지키고 형들과 자주 왕래하도록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산해관의 협곡을 지나 베이징을 거쳐서 중국 대륙으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 새로운 땅을 찾아서 떠난 이들의 지도자는 요라고 하는 인물이었고 그의 후계자는 '하우'라고 하는데 이는 모두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구스의 자손 '드단'과 하윌라'를 연상케 한다.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야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창 10:7-8)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는 요와 지가 '곡'의 아들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제곡이 진봉이 딸을 취하여 방훈을 낳고 추자의 딸을 취하여 지를 낳았다"('사기')
곡이 바로 아벳의 둘째 아들인 마곡의 후손이라면(겔 38:2) 어떻게 '요'가 함의 아들인 구스의 자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금본죽서' '제요비가'등을 보면 그 의문이 풀리게 된다.
"요의 모친 경도의 나이가 20세 되었을 때에 밖에 나가서 산과 강을 구경하는데 돌연 음풍이 일어나더니 붉은 용이 그녀와 교합한지라 그가 잉태하여 요를 낳았느니라"
이 '붉은 용' 이란 무엇이었을까? '붉은 용'이란 바벨론 사람들이 가장 위하고 섬기던 성수이며 성경에는 사탄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는 존재이고(계 12:3,9) 또 바벨론을 일으킨 니므롯의 반역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요의 혈통이 붉은 용과 관계가 있다면 그는 '구스'의 아들 니므롯의 반역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요의 혈톨이 붉은 용과 관계가 있다면 그는 '구스'의 아들 니므롯(창 10:8)과 관계가 있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그러한 요가 왜 장자들을 따라서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시베리아를 거쳐서 동방까지 오게 되었던 것일까? 사마천의 '사기'는 그의 인품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의 인덕은 하늘같이 높았고 그의 슬기는 하나님처럼 밝았다. 말문의 해처럼 포근하게 비취주는 것 같았고 구름같이 높이 떠서 모든 것을 감싸주듯이 자비로왔다······"
그는 비록 하나님을 반역한 함 집안의 혈통이었으나 경건한 사람이었으므로 니므롯의 반역에 가담하지 않고 오히려 장자들을 따라서 동방으로 왔던 것이고 새로운 땅을 찾아서 아사달을 떠난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와 '지'는 곡의 아들이 아니며 곡을 떠나 동방으로 왔던 백성들 중의 세력을 대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요는 중국 대륙에 정착한 사람들을 잘 다스리다가 순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고 하는데 '서전'은 순의 부친 이름을 '고수'라고 밝혀 놓아서 그도 역시 요와 마찬가지로 함의 아들인 '구스'와 관계가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순의 아비 고수는 완고하고 그 어미는 악하며 아우 상은 교만하나 순은 능히 효로서 화합하며 아름다고 어질어 간에 이르지 아니하였다"(요전)
나중에 중국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으로 이 두사람의 지도자 위에다가 다섯 이름을 더 넣어놓았다. 우선 그들은 불을 발명한 수인과 사냥을 시작했다는 복희 그리고 농사를 가르쳐준 신농을 삼황으로 추대했는데 필자는 이들 중 복희를 노아로 그리고 신농을 셈으로 유추해석한 바 있다. 또 불을 발명했다는 수인은 나중에 추가되었는데 이는 최초의 대장장이였던 두발가인의 조상 가인이었을 것이다.
또 그들은 요와 순 이전에 황제에 전욱과 곡 세 사람을 넣어서 오제라고 하였다. 이들 중 양면적인 모습의 황제는 실종된 앗수르의 장자권자 '헌원'을 사칭한 반역자 니므롯의 복합된 이름일 가능성이 있고 전욱도 역시 셈족 출신의 지도자였으며 제곡이란 북방을 다스리던 마곡 가문의 대표자 곡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는 곡과 요의 사이에 '지'라 이름하는 소호의 시대가 있었음을 밝혀놓고 있다.
"제곡이 추자의 딸을 취하여 지를 낳았다. 그가 제곡의 뒤를 이었으나 일찍 죽고 그의 아우 방훈을 세웠다"
그런데 산해경은 이 '소호'의 나라가 본래 바다의 동쪽에 있었다고 말한다.
"동해의 밖에 큰 골짜기가 있나니 소호의 나라이니라"('산해경')
또 대만대학의 서량지 교수에 의하면 소호가 그 수하의 모든 직분을 새의 이름으로 표시하였는데 그 이유는 소호가 다스릴 봉황새가 와서 축하하였기 때문이라 했고 소호는 새를 귀히 여기는 동이족 출신이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즉 소호인 '지'는 야벳 집안에 속하는 곡의 자손이 아니라 새를 소중히 여기는 셈의 후예였던 것이다.
이를 소호는 마곡의 땅에서 동방으로 이동해 온 동아족의 후예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셈 출신의 '지'와 함 출신의 '요'는 모두 마곡의 땅을 떠나 동방으로 이동한 백성들 중의 두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량지 교수는 본래 요동 반도에 있었던 소호가 나중에 산동 반도로 이주했다고 말한다.
"소호의 나라는 동해 밖에 있었는데 곧 지금의 요동반도이며 이로서 소호는 요동으로부터 들어와 산동에 거한 것이 분명하다"
방훈이라고 하는 '요'와 소호라고 하는 '지'가 곡을 떠나 동방으로 온 백성들 중의 중요한 두 인물이라고 한다면 요동에 거하고 있던 '지'는 왜 중국 대륙으로 들어간 '요'형제들을 따라서 산동 반도로 이동을 했던 것일까?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