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원의 나무 아래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06-16 |
새로운 약속의 땅을 찾아서 이동을 계속해온 경건한 백성들은 마침내 천사가 가르쳐준 강 '아리라'에 그 유랑의 날개를 접었다. 추억의 땅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아라랏산을 넘었던 그들은 러시아 평원을 거쳐 다시 우랄산맥을 넘고 중앙 아시아와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대장정 끝에 '아사달'에 이르러 정착의 장막을 세웠던 것이다. 아우들에게 땅을 물려주고 나그네 정신의 긴 유량 끝에 우스의 땅에 이른 장자들에게는 그 후 신라, 고구려, 백제 등 3국의 왕권이 나타날 때까지 약 2천3백년간 왕이 없었고 오직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사장, 즉 장자권자가 그들의 신앙 공동체를 지도했다. 그것은 BC1050년 사울을 세울 때가지 왕이 없었던 히브리 백성들의 제도와 마찬가지였다.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 그래서 아사달에 정착한 장자의 백성들이 여러 지역에 흩어졌을 때에도 그들을 치리한 것을 각 부족의 장로들이었다. 신라에 왕을 세우기 전까지 존속했던 화백제도가 바로 그런 사례였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단군도 사실은 왕이 아니라 제사장이었던 것이다. 덕성여대의 이은봉 교수는 그의 논문 '단군 신앙의 역사와 의미'에서 한국인은 본래 천신, 즉 하나님을 섬기던 민족이었으며 이 천신에게 드리는 제사의 집행자를 천군이라고 하는데 후세의 사람들이 천군을 신격화하여 단군 신앙이 시작되었다고 발표했다(서울대학교 출판부'단군').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천3백년간을 지속해 온 이 경건한 시절의 역사는 모조리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일제의 총독부에서 일하면서 역사 변조의 현장을 목격했던 사학자 문정창은 민족사의 절반이 소실되어버린 이 통탄할 사건의 원인은 삼국시대 이후 계속된 외적의 침입과 군국 일본의 악랄한 공작 때문이라고 하였다('고조선사 연구' p64). 그러나 신채호는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외부가 아닌 우리의 내부에 있었다고 밝혔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우리의 고대사를 자신들의 종교적인 주장에 꿰어 맞추기 위해 없애버리거나 개작해버린 김부식과 중 일연이 민족의 역사를 없애버린 장본인들이라는 것이다. "부식이 이에 그 사대주의를 근본하여 삼국사기를 지은것이다. 고로 동북 양부여를 빼어 조선문화의 소자출을 진토에 묻으며 발해를 버려 삼국 이래 결정된 문명을 초개에 던지며 이문과 한역의 구별에 어두워······(중략) 사대사상의 고취자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그 부용인 '삼국유사'가 전할밖에 없게 되었다."(신채호'조선상고사') 즉 유학자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쓸때 삼국 이전의 역사를 송두리째 없애버림으로서 민족의 뿌리를 뽑아버렸고 중 일연은 2천3백년간의 민족사를 어거지로 불경에 맞추어 개작함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신성한 역사를 난신의 잡설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김부식과 일연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다 없애버렸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고대사를 없애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대 우리 민족의 흔적을 찾으려면 중국의 사서를 뒤져야 하는데 바로 그 중국의 고대사가 우리 민족은 하나님을 공경한 '군자의 나라'였음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시월이 되면 반드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말씀을 읽으며 밤에는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데 이를 무천이라고 했다"('후한서' 예전). "시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성회가 있는데 이를 동맹이라 했다"('삼국지' 고구려). "성마다 한 사람을 세워 천신께 드리는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를 천군이라 했고 그 제단을 수두라고 했다"('삼국지' 진한). 중국의 고대사들 뿐만 아니라 '규원사화'도 단군이 하늘에 제사드리는 제사장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단군이 이미 하늘에 제사 지내고 교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고 도를 이뤄 행하게 한지 몇해 동안의 백성들이 모두 감화되어 악은 없어지고 천하는 잘 다스려지게 되었다" 즉 단군이란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을 말하는데 이 제사가 신단수 아래에서 진행되었으므로 단군이라고 호칭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신단수는 또 무엇이엇을까? 본래 사람이 처음 살았던 에덴에는 사람의 접근을 금지하는 두개의 나무가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사람은 사단의 유혹 때문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사람에게는 생명나무로 상징되는 구원의 소망이 남아 있었다. 신단수는 바로 이 구원의 소망을 나타내는 생명나무였을 것이다. 이 생명나무는 사람이 스스로 구원을 얻겠다고 달려들면 그 나무에 둘러놓은 화염검에 맞아서 죽게 되어 있다.(창 3:24).오늘날 인구폭발과 식량부족 그리고 환경오염과 불치병 등 종말적 현상으로 인류 사회를 구원하는 길은 오직 생명공학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불나비처럼 이 일에 매달리고 있으나 그것은 오히려 종말을 자초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나무'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진정한 생명나무였던 것이다. 동방에 온 장자들의 제단에 서 있었던 이 신단수는 바로 이 구원의 나무를 말하는 것이었고 단군은 그 구원의 나무를 지키는 제사장이었을 것이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니······"(벧전 2:24)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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