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엎친데 덮치는 법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06-13 |
오랫동안 방랑생활을 했기 때문에 비록 문화와 기술에서 뒤져있었지만 아리안족에게는 오랜 유랑생활에서 연단된 강인한 생존본증이 있었다. 또 말을 타고 달리는 기동력이 있었고 동제 무기보다 더 강한 펄제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전쟁을 하기전에 반드시 하나님께 제사와 기도를 드리고나서 출동했다. 가뜩이나 퇴폐와 향락에 빠져 있던 드라비다족은 거대한 문명을 건설했던 저력에도 불구하고 아리안족의 게릴라식 기습에 번번이 패하다가 결국 손을 들었다. 드라비다족을 완전히 굴복시킨 아리안족은 다시는 그들의 음란한 종교와 풍습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그들을 노예로 만들고 그것을 영구화하기 위해서 계급제도(Caste System)를 만들어 냈다. 이 카스트 제도를 잘 살펴보면 그것이 율법시대의 이스라엘과 매우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처럼 제사장 계급과 정치적 지도자 계급을 분리시켜 사제계급을 우위에 놓았다. 왕이 즉위할 때에는 반드시 제사장의 의식을 거쳐서 그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사제계급과 정치적 지배계급 다음에는 농공상인의 평민계급이 있었고 이스라엘이 정복한 가나안 사람들을 종으로 삼았던 것처럼 여신을 섬기고 음란한 풍습을 쫓는 드라비다족을 모두 노예로 삼아서 최하층의 수드라(Sudras)계급으로 분리시켰다. 또 그들을 영구히 격리시키기 위해서 바벨론의 환생설에서 나온 소위 '윤회와 업(業)'의 개념을 도입했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제 계급의 교만과 횡포는 결국 실패한 장자였던 셈의 전철을 반복하게 되었다. 카스트 제도의 영구화 음모에 반발한 우파니샤드 철학자들이 브라만(brahman)과 아트만(Atman)이 곧 하나라는 범아일여(梵我一女)의 사상을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일치를 주장하는 이 논리는 언뜻 보아서 성령의 내주하심을 말하는 기독교의 교리와 비슷한 것 같으나 사실은 인간에 내재하는 지성이야말로 곧 신으로 진화한다고 말하는 무식론의 시작이었고 이로부터 인간을 압제에서 해압ㄷ을 기키려는 민중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사제계급은 결국 그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드라비다족의 신앙을 인정하는 방대한 베다(Veda), 즉 힌두교의 경전을 집대성했다. 결국 이 '베다'에서 아리안족의 하나님은 창조하신 '브라흐마'가 되어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 대신 드라비다의 신이었던 '시바'가 파괴의 신으로 들어앉았고 현세를 지배하는 유지의 신 '비슈누(Visnu)'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비슈누는 태양의 신이고 빛의 신이며 큰 뱀을 타고 있는 지배자로서 바로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루시퍼와 같은 존재였다. 베다에서는 부처도 이 비슈누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마치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본딴 것 같은 이 베다의 세 신, 브라흐마와 비슈누와 시바는 각기 결혼을 하고 많은 신들을 거느리게 되어서 결국 힌두교는 드라비다의 신들과 타협하게 되었고 바벨론과 가나안 신화를 그대로 본따게 되었던 것이다. 베다의 신들 중에서도 가나안의 신화에서 도입한 대표적인 신이 바로 비슈누의 아내인 락쉬미(Laksim)이다. 가나안 사람들이 크레타 섬에서 만들어낸 '카르' 여신은 가나안에 상륙하여 '아스다롯'이 되었고 바벨론에서는 '이쉬타르'가 되고 셈 집안에 스며들어 갈 때에는 '이난나'가 되었다. 그후에 이것은 다시 그리스도로 들어가서 사랑의 여신 '아플디테'가 되었던 것이다. 힌두교에서 사랑과 행운의 여신인 '락쉬미'는 아프로디테처럼 물에서 태어났으며 '세계의 어머니"라고 불리운다(김형준 '이야기 인도신화' 211p). 아프로디테의 아들 '큐핏트'처럼 락쉬미의 아들 '카마데바' 역시 활과 화살을 가지고 있는데 누구든지 그의 화살을 맞으며 사랑의 열병에 걸리는 것이다. 아리안족의 사제계급이 이렇게 드라비다족의 신앙과 타협에서 '베다'를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새로운 종교와 사상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마하비라(BC 540-486)는 아리안족의 제사의식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살생을 금하고 극단적인 금욕으로 구우너을 얻는다는 무신론적인 종교 '자이나교'를 만들었다. 또 고따마 싯다르타(BC 566-486)는 윤회와 업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구원은 선행의 결과이고 누구나 탐욕을 버리면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상을 설법하여 카스트 제도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카스트를 거부하기 위해 무신론적 입장을 취함으로서 형을 타도하기 위해 하나님을 걷어찼던 가나안의 전절을 그대로 밟았던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부처를 비슈누 신의 화신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사랑과 자비의 여신으로 나오는 관세음보살은 바로 비슈누의 아내인 락쉬미의 화신인 셈이다. 아러한 혼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인도이다. 그곳에는 셈과 함과 야벳의 종족들과 종교들과 사상들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힌두어와 드라비다어 외에도 약 8백50개의 각종 언어와 방언이 섞여서 사용되고 있다. 중동 지역이 그렇고 미국이 그렇고 중국이 그렇듯이 인도 역시 온갖 인종이 모여 살며 종말을 기다리고 있는 세계사의 축소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도는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나라이다.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는 '쑥과 마늘'의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갈라져 나간' 중앙 아시아와 티베트와 인도차이나와 동남아에 이르는 모든 백성들에게 번져들어갔다. 그것은 타협의 종교이기 때문에 그 전파과정에서 결코 피를 흘린 적이 없었다고 그들은 자랑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뒷전으로 돌리고 타협을 거듭해온 인도의 현실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다. 그들은 과거 화려한 문명을 가진적이 있고 바벨론보다 먼저 '영(Zero)'의 개념을 발견하였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인공위성을 띄우는 실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제 복을을 기다리고 있다. AD40년에 예수그리스도의 제자 도마가 그곳에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을 가야에 전해왔던 허황옥(許黃玉) 공주의 형제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많은 사명자들이 인도에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또 많은 선교 지원자들이 인도를 최후의 선교목표지로 정해놓고 준비중에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에 우리는 모두 메소포타미아에서 한 하나님을 섬겼던 형제들임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셈과 함과 야벳의 모든 족속에게는 다 잘못이 있었으며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문을 열어놓고 모든 아들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김성일 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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