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날개에 꿈을 싣고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05-29 |
천지 창조뿐만 아니라 동방으로 이동해 온 민족들에게는 모두 충격적인 홍수의 기억이 남아 있다. 우선 알타이 어족에게 공통적으로 남아 있는 홍수의 기억들 가운데는 성경에 나오는 의문을 풀어주는 열쇠까지 들어있어서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성경에 보면 노아가 6백세 되던 해의 2월17일에 홍수가 땅을 덮었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면 하늘의 창들이 열려서 40주야 비가 땅에 쏟아졌다고 되어 있다(창 7:10-12). 즉 하늘 위의 수증기층이 다 쏟아져 내리고 땅 속의 지하수가 다 터져나와서 모든 땅은 다 물에 잠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땅들을 모두 덮어버렸던 물이 어디로 어떻게 다 빠질 수 있었느냐하는 것이다. 필자는 '성경과의 만남'의 홍수 부분에서 물이 빠진 날 수를 1백64일로 계산하고 그것은 물들이 다 증발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시간이어서 나의 의문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때 필자는 시편의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았었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여 주의 우뢰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시 104:6-8) 즉 물이 빠진 것이 아니라 땅들이 물 속에서 솟아올라왔던 것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물 속의 땅들을 끌어올려서 물 위로 나오게 하셨다. 필자는 히말라야와 알프스 등의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조개류와 해초류의 화석들을 그 증거로 들었는데 사실 이 땅의 융기와 침강에 관한 사실은 죤 위트콤 박사와 헨리 모리스 박사가 공통 집필한 논문 '대홍수(1961)'에서 이미 증명된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알타이계의 민족 설화들이 이러한 일들을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의 박시인 교수가 집필한 '알타이 신화(1994)'에는 물 가운데서 흙을 끌어 올리는 설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세상이 물바다일 때 하나님과 사람이 모두 새가 되어서 나타났다. 새가 된 사람이 바다 밑으로 들어가서 흙을 물고 나오자 하나님이 그흙을 바다 위에 놓고서 땅이 되라고 명령하니 그 흙이 점점 커켜서 땅이 되었다."(달단 족의 신화) "온 세상이 물바다일 때 하나님이 오리에게 명하여 바다 속에 들어가 흙을 가지고 나오게 했다. 하나님은 그 흙으로 땅을 만드셨다"(몽골 부리앗 족의 신화) "하나님이 바다 밑에 사는 귀신에게 명령하여 물 속의 흙을 가지고 오게 하셨다. 귀신이 물 속에 들어가서 흙을 가지고 나오자 하나님은 그 흙을 바다 위에 띄어놓고 그 위에 띄어놓고 그 위에 앉으셔서 흙으로 땅이 되게 하셨다"(시베리아 야쿠트 족의 신화) 그 밖에 이런 류의 신화는 알타이 지방의 오스티악 족과 보굴 족을 비롯하여 중앙 아시아와 시베리아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것은 저 바벨론 점토판이 홍수의 기록을 왜곡하기 위해서 악의적으로 조작된 신화들과 섞어서 만들어놓은 '길가메쉬'의 이야기보다는 휠씬 순수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알타이계의 신화들 중에서 우리가 착안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새'에 대한 개념이다. 이 계열의 신화들은 한결같이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조물주와 그를 따라다니는 협조자를 '새' '오리' 또는 '기러기'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경'에서는 이 하나님의 사자를 '검은색'로 표현한다. 알타이 사람들이 이 새를 그릴 때에는 곧잘 '해' 속에다 검은 색으로 새를 그려 넣었는데 그것은 새의 빛깔이 검어서가 아니라 환한 '빛'속에다 새를 그리려니까 새가 검은 색으로 보였던 것이다. 흔히 이 새의 발을 세개로 그렸는데 이는 성경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3.1사상 또는 삼위일체 사상이라고도 하는데 후에 한민족사상의 주요한 요소를 형성하였다. 1과 3의 관계와 그 중요성에 대해서 1은 3의 몸이 되고 3은 1의 쓰임이 된다······"(윤내현 '고조선사 연구') 집안의 오회분 4호 묘에서 발견된 벽화에도 세발 다린 검은 새가 해 속에 그려져 있고 신채호는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1931)'에서 송화강과 압록강의 고어가 모두 아리수 즉 '아리라'인데 '아리'는 곧 오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라'는 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알타이 계의 민족들이 하나님의 협조자를 '새'로 표현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날개 다린 '그룹' 또는 '스랍' 즉 천사들 사이에 계시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덩어리로 연하게 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행하게 하고······"(출 25:18-20)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1-3)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사88:8) 그래서 알타이 어군에 속하는 셈계의 민족들은 '새'를 좋아하고 그 깃털이나 날개로 머리를 장식한다. 중앙 아시아에서 발굴되는 셈계 귀족의 시신을 보면 머리를 깃털로 장식하고 있으며 베링 해협을 건너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한 셈의 후예인 아메리칸 인디언들도 새의 깃털로 머리를 장식한다. 또 이들 민족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왕들의 난생설화도 새를 거룩하게 여기는 사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시베리아를 건너와 만주에 정착했던 동방족 즉 한국의 선조들은 처음부터 봉황새로 국가의 상징을 삼았는데 그것은 봉도등이라고 하였으며(문정창 '고조선사 연구') 중국에서는 진시황이 바벨론의 용을 황제의 상징으로 삼으면서 용도등으로 그 깃발을 삼았다. 그리고 이 새와 용의 세력은 동아시아에서도 오랜 종교전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어쨋든 한국은 불교가 '용'을 끌고 들어오기까지 '새'의 나라였다. 고구려와 신라와 가야의 지도자들은 모두 '새의 알'에서 탄생했고 신라의 금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왕의 머리는 날개의 모양으로 장식을 하였으며 정부의 고관들도 그 흉배에 새를 수놓았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 문장에도 두 마리의 봉황새가 그려져 있고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샤론의 장미"가 그려져 있다. 이는 모두가 한국의 조상들이 지난 날 동방의 새 땅을 향해서 모험의 행진을 감행할 때에 그들을 빛 가운데서 인도했던 천사의 날개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하나님께서 민족의 앞날을 인도해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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