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숨겨진 땅의 역사

은바리라이프 2008. 5. 26. 00:59
제목 : 숨겨진 땅의 역사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3-05-19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아라랏산 북쪽에 살만한 땅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아라랏산 북쪽에 있는 바다를 '검은 바다'라 불렀고 그 넘어에는 오직 죽음을 의미하는 '검은 땅'만이 있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북방'에 대한 공포는 메소포타미아 사람들 사이에 뿌리깊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 북방을 통과하여 동방으로 이동해 온 뒤에도 우리 조상들은 졸은 터를 찾을 때 메소포타미아의 지형 고르는 방법을 기준으로 삼았다. 메소포타아란 어떤 곳이었던가?
그들이 살던 땅의 북쪽에는 아라랏산이 있었고 그 좌우로는 타루스 산맥과 자그로스산맥이 날개를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힛데겔강과 유브라데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좋은 땅을 찾을 때 북쪽에는 산이 둘러서 있고 남쪽에는 강이 흐르고 좌청룡과 우백호가 버티고 있는 지형을 찾았던 것이다.
네 방위에 짐승을 그려놓고 섬기는 사신의 개념도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것이었다. 니므롯 이후로 천하를 지배하던 동쪽의 바베론과 서쪽의 가나안 그리고 남쪽의 애굽이 청룡과 백호와 붉은 새로 그려졌고 죽음의 땅인 북방에는 '검은 거북'이 도사리고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메소포타미아의 인본주의 세력에 결별을 고하고 아라랏산을 넘었던 백성들은 무슨 용기로 그 무서운 검은 땅을 향하여 발길을 옮겨놓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일까? 그러나 대분단의비극이 있기 이전에 이미 북방의 검은 땅을 탐험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도전 정신'이 강한 야벳의 집안의 둘째 아들인 '마곡'의 자손들이었다. 창세기 10장 이후로 성경에서 사라져버린 이 마곡의 자손들은 북방의 땅으로 들어가서 그 땅을 개척했다. 역사 속에서 잠적해버린 이 마곡의 자손들이 있는 곳을 하나님께서는 BC 586년 유다가 멸망한 이후로 에스겔 선지자에게 가르쳐 주신다.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을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먼 북방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에 이르러···"(겔 39:1-2)
여기에 나오는 '곡'이라는 이름의 뜻이나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성경이 밝히고 있지 않다. 학자들은 그를 리디아의 '기게스'왕이나 바벨론의 '가가'신 또는 사비성의 '가기'왕과 연결시켜 생각하기도 하나, 에스겔이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의 왕이다. 메섹과 두발은 창세기 10장 2절에 나오는대로 야벳의 여섯째와 다섯대 아들이며 로스는 무엇인지 몰랐으나 10세기 이후에 러시아 민족이 흑해 북방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게 되었다.
즉 역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사와 구스와 붓과 고멜 등의 연합군을 이끌고(겔 38:5)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의 왕 곡은 곧 러시아의 왕이었던 것이다. 바사는 곧 페르샤이니 오늘날의 이란이며 구스는 에디오피아이고 붓은 리비아이며 고멜은 북유럽에 정착했던 야벳의 장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성경은 이 북방의 왕이 어떻게 그곳에 진출하였으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에스겔이 북방의 땅을 '마곡의 땅'이라고 적어 놓은 것으로 보아 창세기 10장에서 사라진 '마곡'의 자손들이 이미 그 땅에 진출해 있었으며 그들이 북상하는 셈과 야벳의 유민들을 그 땅으로 안내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고대사에서는 이 '마곡'의 땅에 도착한 백성들의 상황을 좀 더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노아와 셈으로부터 시작하여 셈의 후예로서 천하를 다스렸던 장자권자인 헌원(삼국유사에서는) 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고대사는 장자권자였던 환원과 나중에 그를 전복하고 가자 헌원이 된 황제, 즉 니므롯의 기록과 상당부분은 혼합해 놓아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어째든 중국의 고대사는 이 황제 헌원 이후에 셈에 속하는 소호출신의 전욱이 장자권자가 되었고 그 뒤를 이은 장자가 바로 '곡'임을 밝히고 있다.
이 '헌원'에서 '곡'에 이르는 중국 고대상의 유적은 중국 대륙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중국 사람들은 실제로 있지도 않았던 그들의 역사를 스스로 창작해서 기록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와 마곡의 땅에서 있었던 일을 마치 중국 대륙 안에서 있었던 일을 마치 중국 대륙 안에서 있었던 일처럼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학자들로 하여금 중국의 역사를 중국대륙 안에서만 찾아내려다가 허탕을 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학자들을 미혹하게 하는 또 한가지의 문제가 있다. 한국의 고대사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나중에 중국의 세력만 아시아를 대표하듯이 켜졌기 때문에 아시아의 문화를 모두 중국 주심으로만 해석하는데서 나오는 혼란이다. 가령 '곡'의 중국식 발음은 'ku'인데 곡을 쿠로 발음하면 성경에 나오는 곡의 비밀은 풀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의 '곡'과 중국의 '쿠'는 어느 것이 원래의 발음이었을까?
언어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발음의 변천은 복잡한데서 단순한 데로 이행된다. 만약 '쿠'가 먼저였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의 선조들이 그 발음을 복잡한 '곡'으로 고쳤단 말인가? 여기에서 바로 한자의 고향은 중국이 아니라 동방의 한국이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 한자의 유래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따로 언급하겠지만 그래서 황제의 이름도'hsuan-yuan'이 아니라 '헌원'이 맞고 사실은 '환인'이 더 가까운 것이다.
이 '곡'은 북방에 있는 작은 나라 유응국을 크게 확장하고 북방의 장자가 되어 천하를 다스렸으며 짐승들의 나라인 남방을 제압하였는데 신해경의 대황동경에는 이 '곡'에게서 백민이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가 남방의 나라들을 제압하였다는 것은 바로 장자권을 찬탈한 니므롯의 세력과 어느 정도 분쟁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장자권을 힘으로 전복시킨 니므롯의 세력을 '짐승의 무리'로 간주했다. 요세푸스의 고대사에서는 이런 사실들이 북방의 무서운 민족, 즉 '스키디아'의 활동을 나타났다.
또 '곡'은 노아의 역법을 도입하고 셈의 농경법을 연구하여 백성들의 생업을 일으켰고 활과 화살을 만들었으며 현금과 비파도 만들어 문화의 창달에도 힘썼다. 사마천은 그의 사기중 어제본기에서 이 '곡'의 치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고신이 탄생하매 신령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곡이라 하였다···. 총명하며 먼 길을 알고 밝아서 미묘한 것을 살피고 하늘의 의를 순종하고 백서의 사정에 정통하여···"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