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 속에 스며 있는 것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05-12 |
우리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소모의 공포'속에서 살아간다. 한국의 할머니들이 어린 아이를 재울 때에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들려주는 자장가에서부터 그 한의 가락은 시작된다. "···아버지가 장에 가서 밤 한말을 사다가 선반 위에 두었더니 머리 감은 새앙쥐가 들락달락 다 까먹고 알밤 한톨 남은 것···" 우리의 할머니들이 넋두리처럼 들려주었던 그 자장가는 바로 한국의 운명을 그대로 노래한 것이었다. 저 우랄 산맥과 중아 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지나서 동방으로 이동해 온 우리의 조상들은 하얼빈을 중심으로한 만주 대륙의 대평원에 정착의 터를 잡았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그 넓은 땅이 이리저리 다 찢겨나가더니 밤새 들락거린 새앙쥐가 밤 한말을 다 까먹듯 줄어들다가 겨우 한반도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겨우 남은 한반도마저 두 동강이 나서 민족 상잔의 전쟁을 겪고 젯더미로 변하게 되었다. 우리 할머니들의 자장가도 바로 그런 식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알밤 한톨 남은 것 밑빠진 솥에다 삶아서 밑빠진 조리로 건져서 껍데기는 언니주고 버미는 누나 주고 알맹이는 너랑 나랑 둘이서만 나눠먹자···" 이런 끝없는 소모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라난 아이들이 자라나서 부르는 애국가도 역시 소모적인 노래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것은 바로 언제인가부터 우리 민족의 정서가 현실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흘러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땅은 우리의 것이므로 그저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네 삶의 저변에 깔리고 있던 정서였고 바탕이었다. 이러한 현실 부정의 앙금들이 세월과 함께 가라앉으면서 그것은 소위 '한이라는 응어리로 남게 되었다. 우리는 삶 속에는 목으로 내는 소리이든 숨결로 불어내는 대풍류나 손으로 뜯어대는 줄풍류에도 '시나위'라는 이름의 가락이 전해져 내려왔다. 그것은 사람의 살갗에 소름이 돋게 할 정도로 처절한 한을 뿜어대는 가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서운 한은 드디어 '작별'이라는 개념으로 승화한다. 우리가 잠시 얹혀 사는 이 땅은 우리의 땅이 아니다.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대개 한국의 이야기들은 주인공들이 홍길동이나 허생원처럼 바람같이 떠나가는 것으로 끝이난다. 김동리의 아름다운 단편소설 '역마'는 이렇게 끝나고 있다.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어,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갈 무렵 하여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갈아입은 옥양목 고의 적삼에 명주 수건까지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새로 맞춘 하얀 엿목판을 짊어진 채로 화개장터를 떠나는 주인공 성기의 그 모습을 바로 한을 가슴깊이 삭여 내리며 미련없이 삶의 터를 떠나왔던 우리네 조상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러한 작별의 미학이 고여 있는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었던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신비한 가락의 근원을 캐기 위하여 광막한 시간의 골짜기를 헤매어 왔다.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전설과 민요들을 찾아다니면서 '아리랑'의 어원을 찾아다닌 사람들도 있었다. 경상남도 밀양의 아랑각 전설에 나오는 '아랑'의 이름에서 그 어원을 추측하는 이도 있고 영웅의 탄생을 상징하는 '알'에서 건국 신화를 생각하는 이도 있다. 또 강을 의미하는 '아리라'나 농가에서 나오는 '아농언'을 연결시켜 아리랑을 농민의 노래로 규정하기도 하고 하고 가슴이 '아리다'라는 말에서 한의 개념을 유추해 내기도 한다. '아리랑'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전국을 찾아다니며 연구했던 김열규 교수는 그의 저서 '아리랑··· 역사여 겨례여 소리여'의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아리랑은 결국 우리들 삶의 혈맥과 같은것이었다. 우리들 몸 구석구석 핏줄이 뻗치고 또 스며 있듯이 우리들 삶 구석구석에 아리랑은 뻗어 있고 또 스며서 울리고 있었다. 아니면 그것은 우리들 생활과 문화의 지각 밑에 고루 번져간 수맥과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새로로나 가로로나 아리랑은 우리들의 모든 것을 노래한 소리였다." 그렇다. 아리앙은 바로 우리들의 '모든것'이었다. 아리랑의 근원을 찾으려면 우리는 역사의 근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무엇인가 두고 왔다. 우리가 있는 곳은 우리의 본향이 아니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이 땅에 오기 전에 무엇인가 커다란 '작별'의 슬픔을 겪었던 것이다. 인류의 대분단··· 우리는 그것을 거론할때 아라랏 산을 빼놓을 수 없게 된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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