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야벳과 구스의 선택

은바리라이프 2008. 5. 26. 00:42
제목 : 야벳과 구스의 선택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3-05-06
바닷가에 나가서 살고 있던 야벳의 아들들은 모두 일곱이 있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창 10:2)
이 야벳의 일곱 아들들은 긴급 가족회의를 열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셈의 형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아들들도 있었고 남아야 한다는 아들들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셈의 모두가 다 떠나는 것이 아니고 그들 중의 일부가 떠나고 일부는 남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북으로 가는 형들을 따라 가야 한다느니, 남아 있기로한 형들이 있으므로 남아 있는 것이 옳다느니 그들이 아무리 격론을 벌여도 결론은 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희망에 따라서 장자들을 따라갈 자들은 따라나서고 남을 자들은 남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지중해와 흑해의 해변에 그대로 남은 것이 야벳의 네째 아들 야완의 가문과 막내 아들인 디라스의 가문이었다. 이들은 모두 지중해 바닷가를 중심으로 해서 나중에 헬라, 로마, 프랑스, 에스파니아 등 라틴 유럽을 이루는 민족들이 되었다.
이들도 나중에 모두 셈의 장막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으나 지금은 그들 모두가 가톨릭 국가가 되어 장차 어떤 위험을 당할는지 모르는 불안한 나라들이 되었다.
이들도 나중에 모두 셈의 장막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으나 지금은 그들 모두가 가톨릭 국가가 되어 장차 어떤 위험을 당할는지 모르는 불안한 나라들이 되었다.
야벳의 나머지 다섯 아들들은 모두 셈을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해서 셈의 이동 행렬은 야벳 집안의 형제들과 그 세력을 합치면서 거대한 집단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벳의 집안이 이 새로운 출발에 가담했을 때 함의 혈통 가운데서는 동조자가 없었을까?
어느 집안을 막론하고 그 가문의 장자는 책임의식 때문에 보수적으로 되게 마련이다. 함의 집안 가운데서도 구스는 보수적인 가문이었다. 구스의 후예인 에디오피아는 전통적으로 늘 장자의 가문을 사모하여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가서 그 강론을 들었으며(왕상 10:1)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대신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빌립의 세례를 받았다.(행 8:27).
그래서 에디오피아는 1974년 군사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기독교체제를 유지해 왔던 것이다. 그러한 구스 가문이므로 셈의 정통성을 따르는 보수적인 세력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셈을 뒤엎은 쿠데타의 지도자 니므롯은 구스의 아들임을 자칭하였으나 창세기 10장에 보면 니므롯은 구스의 후사를 이은 정통 후계자가 아니었던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구스 이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갑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창 10:7-8)
이렇게 되면 구스의 가문에서도 니므롯을 따라야 하느냐 하나님의 장자권자인 셈의 장자들을 따라야 하느냐 논란이 있었을 것이며 그들 중의 일부는 셈을 따라 북으로 갈 것을 선택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양의 고대사를 보면 중국에서는 처음에 서로 이질적인 두 민족이 갈등을 벌이다가 다시 동방족인 셈까지 흘러들어서 각축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초기에 나타난 두 종족의 갈등을 살펴보자.
중국의 고대사에서는 제요 이전에 이미 황제, 제전욱, 제곡이 있었고 이에 요와 순을 합하여 오제라고 부른다. 이중에서 필자는 이미 황제를 니므롯이라 추정하였고 제전욱은 동방족 출신의 무인으로 필자가 쓴 '홍수 이후'에서는 무예의 대가 라멕의 제자인 데녹이란 인물로 묘사되었다. 전욱은 본래 막능의 제자였다.
성군으로 전해 내려오는 요의 이름은 도당으로 그는 본래 붉은 용의 아들이었으나 그의 모친 경도가 제곡에게 시집가게 되어 곡의 아들이 된 자였다.
"요의 모친 경도가 나이 20세에 강변에 나가 있을 때 돌연 음풍이 일어나더니 붉은 용이 경도와 교합한지라. 잉태하여 요를 낳았느니라"
"요의 이름은 방훈이며 그는 곡과 진봉씨의 딸 사이에 태어났다"
필자가 쓴 소설 '홍수의 이후'에서 나중에 요 임금이 되는 드단은 니므롯이 두발 땅의 아마누스 강가에 사냥을 나갔다가 두발 족속 젬바오의 딸 겐다를 강간하여 낳은 아들로 묘사되어 있다. 겐다는 나중에 마곡의 왕에게 시집을 갔고 드단은 곡 왕의 양자가 되었으나 형님처럼 따르던 하노스와 함께 동쪽으로 이동해온 야벳 집안의 소년이었던 것이다.
야벳 족속을 중심으로 건설된 중국을 70년간 잘 다스린 요는 나라를 물려줄 인재를 구하기 위해 천하를 살피다가 드디어 훌륭한 인재 순을 얻어 나라를 불려주었는데 그는 '고수'의 아들이었다. 바로 이 고수의 아들과 요의 아들간의 권력 쟁탈전이 벌어지는데 이는 바로 야벳의 주축세력에 대항하여 권력 다툼을 한 '구스'의 후손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 최근 에집트의 고대 벽화에 묘사된 무술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에집의 창술이 중국 무술의 창술과 그 기본이 똑 같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이 구스 가문의 후예 가운데서 중국의 하나님 신앙을 말살하고 중국 대륙을 바베론 사상으로 오염시켜버린 진시황이 태어나고 되는 것이다.
어쨌든 정든 메소포타미아 땅을 뒤로 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서 대 이동을 감행했던 셈 집안의 행령은 야벳의 주축세력과 함 집안의 일부가 가담하여 완전한 제2의 세계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두개의 세계사는 서로 분리되어 수천년을 흘러 내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개의 거대한 역사를 조립할 방법이 없어서 고심해 왔다. 한국과 몽고와 일본의 우랄 알타이계 언어가 저 지중해 연안의 터어키와 유럽으 헝가리에서 그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정도만을 알아내었을 뿐 이들 나라와 동방족이 어떤 관계로 맺어져 있는지를 밝혀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을 밝혀내는 열쇠는 바로 성경이다. 성경의 고대사를 이 단절된 두개의 역사 사이에 있는 단애에 끼워넣어야만 비로소 두개의 역사는 하나로 조립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를 두 갈래로 나누어서 그들이 각각 별개의 역사를 이끌어가게 한 것에는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이 있으셨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때로부터 인류는 이러한 대분단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길고 긴 '나그네의 길'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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