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장자의 장막에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3-05-01 |
구스의 아들임을 자칭하는 니므롯이 앗수르 왕으로 변장하고 가짜 장자권자로 행세하고 있을 때 이를 눈치채어 니므롯을 친 것이 앗수르의 동맹이었던 악카드였다. 악카드는 장자권자 수메르를 징계할 때부터 엘람, 악수르 등과 연합했던 여호와 하나님의 충복이었다. 그러나 악카드의 공격은 실패로 끝났고 천하는 완전히 음흉한 사냥꾼 니므롯의 수중에 장악되어 버렸다. "그(니므롯)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축하였으며렁렁렁"(창10:10~12) 이렇게 되자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셈 집안의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아라랏산을 넘어서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설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들은 니므롯에게 자신들의 뜻을 전달했고 니므롯은 앓던 이뽑듯이 선선하게 그들의 탈출을 허락해주었던 것이다. 중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이때의 상황이 자기네 종교의 취향대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 때의 중 일연의 본명은 김견명이며 고종 때 승과에 급제하여 나중에 대선사에 까지 올랐던 사람이다. 그는 충렬왕의 명을 받아 삼국유사를 썼는데 충렬왕은 본래 원나라 공주와 결혼을 하고 대국에 충성을 맹세했던 정신 이상자였고 불교의 광신도였다. 일연은 그의 명을 받아 삼국유사를 쓰면서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다 말살하고 위만 조선, 한사군 등의 거짓 역사를 날조하여 삽입해 놓은 장본인이며 이 민족의 역사를 완전히 불교의 역사로 개조해 놓은 위조꾼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삼국유사의 첫머리에 도입해 놓은 바벨론 신화이다. 불교 그 자체가 바벨론 종교의 범신론과 환생설에서 파생한 힌두교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삼국유사는 그 첫머리부터 사악한 마귀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무지개가 신모를 둘러 복희를 낳고 용이 여등에게 감촉되어 염제를 낳고렁렁렁"(삼국유사) 무지개가 관련되어 있는 '복희'는 곧 '노아'를 말하는 것이며 '염제'로 불리우는 '신농'은 곧 '셈'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필자는 앞서 기술한 바 있다. 또 신모 또는 성모는 니므롯의 아내였던 세미라미스를 말하는 것인데 중 일연은 노아가 바로 신모의 아들이라고 어처구니 없는 거짓말을 적어놓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아의 장자인 셈은 용 즉 루시퍼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일연은 이런 말도 안되는 억설을 써놓음으로써 후세를 미혹하려고 획책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 일연은 아사달을 중심으로 광대한 만주 일대에 정착하면서 제2의 세계사를 경영하고 있던 장자권자들의 정사를 다 없애버렸다. 그는 또 완달산인 태백산을 묘향산이라 해석하고 아사달을 개성 동쪽에 있다고 주석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 축소시켜 버렸다. 더구나 그는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지나 동방의 새로운 땅을 찾아서 수만리를 이동해 왔던 우리 민족의 영웅적인 대장정을 간단하게 신화적으로 처리해 버림으로써 민족의 정기를 그 뿌리로부터 말살할 폭거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가 삼국유사에 마지못해 남겨놓았던 소위 건국 신화를 살펴보자. “고기에 이르되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있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사를 탐내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 보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만 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라 이르니 이가 환웅 천황이란이다······“(삼국유사) 앞서 기술한대로 환웅에게 떠날 것을 허락한 환인 또는 헌원은 곧 앗수르의 가짜 장자권자였던 니므롯이었다. 일연은 이 니므롯을 불교의 신인 제석이라 주석을 달았는데 어차피 힌두교의 범신론이 바벨론의 인본주의 종교에서 나왔으니까 그런대로 일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로부터 역사의 불교화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기록에서 환웅은 환인의 서자였다고 했으니 그는 니므롯으로부터 후사로서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 즉 앗수르의 후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앗수르에 남아있어 보았자 아무런 소망도 없다고 판단한 이 앗수르의 후예는 니므롯에게 새땅을 찾아서 떠나겠다고 간청을 했던 것이다. 마침내 니므롯의 허락은 떨어졌다. 환웅은 니므롯의 허락을 받아 3천명의 동조자와 세사람의 참모 그리고 세가지의 천부인을 가지고 정든 메소포타미아 땅을 떠났던 것이다. 그의 참모였던 풍백 우사 운사는 백성들의 신앙적인 지도자들이었을 것이다. 성경에서 바람과 비와 구름은 모두 성령과 은혜와 징조를 상징하는 어휘들이기 때문이다. 세 개의 천부인은 이 세명의 신관을 거느리는 지휘관이었다고 추측하는 학자도 있고 거울, 칼, 씨앗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환웅의 아들 단군이 임금이 아닌 제사장이었던 것으로 보아 칼은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물을 준비할 때 쓰는 제사용이었을 것이며, 거울은 제사장의 성결을 의미하고, 그들이 서쪽에서 가져온 씨앗 중에는 메시야를 상징하는 ‘샤론의 장미’ 즉 무궁화의 씨앗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셈 집안의 주축 세력인 앗수르의 후예들이 아라랏을 넘어 떠나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서 메소포타미아를 떠났을까? 우선 니므롯의 정체를 간파하고 그를 공격했다가 패전한 악카드의 남은 자들이 따랐을 것이고 수메르의 때부터 하나님편에 서서 싸웠던 엘람의 일부가 그들을 따라서 북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셈의 후예들이 북쪽으로 떠날 것을 결절했을 때 누가보다도 가장 당황했던 것은 야벳의 후손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그들의 조상인 노아로부터 셈의 장막을 따라 다녀야만 창대하게 되리라고 예언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홍수가 끝난 후의 어느 날 그들의 조상 노아는 그의 장막에서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채로 자고 있었다. 그때 그 둘째 아들 함이 아비의 장막에 들어갔다가 그 아비가 벌거벗고 있는 것을 보고 나와서 셈과 야벳에서 그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그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를 덮어주었다. 나중에 이를 안 노아가 세 아들의 후손의 장래에 대해 예언을 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 9“26) 셈의 집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드실 것이며 그 집안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예언이었다. 노아는 또 야벳에게 물질적인 축복이 임한 것을 예고했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창 9:27) 그것은 곧 야벳이 장자인 셈의 장막에 거해야 창대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것은 장차 셈의 장막에서 메시야가 오실 때에 그를 따라야 잘 살게 되리라는 의미였지만 아직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야벳 집안으로서는 자기네들의 ‘복의 조건’인 셈의 장막이 북쪽으로 옮겨 간다고 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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