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실패한 하나님의 교사들

은바리라이프 2008. 5. 23. 00:56
제목 : 실패한 하나님의 교사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3-04-14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히 4:12) 바벨론이 교육해 놓은 것들을 파죽지세로 밀어 붙이게 되었지만 나중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교사들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대적에게 기회를 주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는데 왜 그 말씀을 맡은 교사들이 자주 실패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하는 것은 교사의 '말'과 '혀'로써 되지 않고 그 행동의 '모범'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든 교사들의 모범이 되신 예수께서는 바로 이것을 실제로 보여 주셨다. 그분은 그의 인생 전부를 그가 가르치신 그대로 살다가 그대로 죽으셨던 것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요일 3:18~19)
이 모범되는 일에 실패한 전례가 바로 '지혜의 왕' 솔로몬의 경우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잠언'이라는 명문을 썼다. 잠언은 그 서두에서부터 밝힌대로 교육을 위하여 쓴 것이며 특히 그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쓴 것이었다. 이 글의 1장부터 9장 사이에는 '내 아들아'하는 간절한 호칭이 열한 번 그리고 '아들들아'하는 호칭이 네 번이나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쓴 솔로몬의 이 글은 결국 무용지물이 되었다. 솔로몬이 죽은 후에 왕이 된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건축한 노동자들이 처우의 개선을 요구했을때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자기 친구들의 가르침을 좇아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로 인하여 열 지파가 떨어져 나감으로써 이스라엘은 결국 남북으로 찢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솔로몬의 교육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그가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가 시돈과 헷 여인이라."(왕상 1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여인 특히 가나안 여인과 통혼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솔로몬은 이들을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 여인들의 숫자가 1천명이나 되었다.
"왕은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왕상 11:3)
이렇게 솔로몬이 아들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한 탓으로 그의 교육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 아들의 나라는 둘로 쪼개졌으며 결국 남북의 두 나라는 모두 가나안이 만들어낸 새로운 신들에게 점령당해서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A.D.313년에 로마 황제의 공인을 받은 이후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교회의 경우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천하 모든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면서도 그 지도자들의 생활은 전혀 복음적이 아니었다.
교황 세르지오 3세는 정부 마로지오가 낳은 사생아를 추기경으로 삼았고, 그 후로 마로지아의 자식과 손자들이 교황 자리에 올랐다. 베네딕토 8세는 돈으로 교황 자리를 사들였고, 보니파시오 8세 때에는 성직이 공공연하게돈으로 거래되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그의 두 누이와 동침하였고, 자신의 딸과도 동거하여 자식을 낳았다. 위가 이러하니 그 아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성직자가 신도의 아내들과 간통을 하고 수녀들을 유혹 겁탈하는 등의 행위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반화되어 이탈리아의 시인 복카치오는 이를 야유하는 소설 '데카메론'을 썼다.
이러한 교회의 부패는 사탄의 세력에게 또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인간의 자유를 부르짖는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고 과하과 이성을 통한 인간화를 주장하는 인본주의 사상이 다시 붙일듯이 일어났다. 마침내 사탄의 세력이 늘 활용해 온 소위 '교육의 합리화'가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공교육' 또는 '시민교육'의 개념이었다. 물론 이 개념에서 종교교육을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1774년 독일은 학교가 더 이상 종교기관이 아니며 교육은 국가 통치권에 속한다는 것을 법률로 명시하였다. 룻소의 교육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프랑스에서는 1882년 프리 메이슨 회원이었던 훼리 문교장관이 '훼리법'을 제정하여 모든 공립학교에 종교교육을 금지시켰다. 또 같은 해에 미국에서도 교육부 장관이었던 호스 만에 의해 교육에서의 종교적 중립을 유지하는 공교육법이 시행되었는데 이도 역시 프리 메이슨의 회원이었던 벤쟈민 프랑클린과 토마스 제퍼슨이 주장한 '시민을 위한 교육'의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이로부터 전세계의 교육기관들은 기독교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는 창조론을 제거하고 진화론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는 창조론을 제거하고 진화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또 사람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것처럼 곡식과 채소를 먹으며 살다가 홍수 이후에 육식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짐승을 잡아먹는 수렵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지혜가 발전하여 농사를 지은것으로 가르쳤다. 종교에 있어서 기독교는 세계의 많은 종교들 중의 하나이며 이와 같은 '고등종교'는 원시적인 무속신앙에서부터 차츰 발전하여 오늘날과 같이 진화된 형태로 되었다고 가르쳤다.
오늘날에도 우리 아이들은 이러한 세뇌교육을 받으며 자라난다. 국민학교 6년과 중·고등학교 6년, 이렇게 12년간을 소위 '공교육'개념에 의한 바벨론식 교육을 받는 것이다. 게다가 막바지의 몇년간은 대학 입시를 준비시키면서 마치 마법사가 최면술을 걸듯이 엄청난 분량의 '바벨론 문화체계'를 강제적으로 암기 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바벨론 세력은 B.C. 605년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게 한 것처럼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을 완전한 그들의 심복으로 만들버리는 것이다. 이 무서운 바벨론의 저력이 바로 '교육'이다.
어렸을 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에게 순종하고 모든 이웃에게 사랑스럽던 아이들이 바벨론 교육의 6년이 지나가면 교회에서 배우는 것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고 9년쯤 되면 부모를 불신하고 반항하기 시작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되면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손에 이끌려서 세상 길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미 바벨론의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이지만 우리는 다니엘이 했던 결심에 한 가닥 소망을 걸 수밖에 없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교육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 교육을 다 받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어려서부터의 믿음이 있었기에 바벨론이 잡혀가서 그들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다 배우고 복종하되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은 굳게 지키기로 '뜻을 정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두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단 1:8)
이렇게 뜻을 정한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의 굳은 믿음과 성실한 기도는 마침내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적국의 수뇌들까지도 감동시켰다. 바벨론에 이어 천하르 다스렸던 페르샤 왕 고레스는 마침내 이스라엘의 포로들을 본국으로 귀환시키는 데 동의했던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몰락한 이스라엘의 타락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그 자식들에게 신앙을 심어주었던 그들의 부모들과 교사들의 힘이었을 것이다. 결국 역사 속의 바벨론은 무너졌고 페르샤도 헬라도 로마도 다 물러갔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도 살아 있다. 비록 지금의 세상도 바베론의 세상이 되어 있지만 바벨론은 언젠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히 빛나게 될 것이다.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계 18:21)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