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분과 가까운 곳에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12-12 |
홍수가 끝나고 땅들이 모두 드러난 후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여덟 식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무서운 심판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우선 두려움에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홍수 이전에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있어서 때로는 서로 돕기도 하고 때로는 의지하기도 하며 살았는데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사라져버리고 땅 위에는 무서운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주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땅들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멀리까지 돌아보지는 못했다. 서로를 잃어버릴까봐 겁이 났을 것이다. 그래서 아라랏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 중턱에 그들은 우선 자리를 잡고 살면서 파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것처럼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창8:21~22) 이렇게 해서 노아의 자손들은 다시 하나님께서 이르신 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창9:1) 땅 위에 퍼져가며 살기 시작했다. 그 동안 셈은 다섯 아들을 낳았고, 함은 네 아들을 낳았으며, 야벳은 일곱 아들을 낳았다. 물론 그들은 딸도 낳았겠지만 성경은 딸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홍수 이후에 태어난 노아의 손자들은 그들의 사촌 누이들과 결혼하였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번성하기 시작한 그들의 자손들은 분가를 거듭하면서 점점 더 먼 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함의 후손들은 산에서 내려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강들은 두강의 상류를 지나 윗바다(地中海)와 마주보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연결해서 보면 활처럼 휘어진 초생달 모양을 이루는데 학자들은 인류의 본격적 문명이 시작되었던 이 지역을 '비옥한 초생달(Fertile Cressent)'이라고 부른다. 야벳의 자손들은 서쪽이 타우루스 산맥을 지나서 바다를 끼고 좀더 전진하다가 결국 바닷가의 땅에 자리를 정하였다(창10:5). 형들이 산지와 들판을 모두 차지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멀리 나가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좀더 자유로운 그들만의 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모든 형제들이 다 새로운 땅을 찾아서 떠날 때에 그대로 산 중턱의 불편한 땅에 눌러앉은 것은 바로 노아의 장자, 셈의 자손들이었다. 그들은 왜 좀더 멀리 둘러보고 나서 좋은 자리를 골라서 정착하지 않고 산 중턱에 엉거주춤 주저앉았던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바로 그들이 종가(宗家)인 장자의 자손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것은 홍수 이전부터 셋의 가계(家係)를 통해서 내려온 전통이었고, 그것은 그대로 장자인 셈의 가문에 계승되어 장자권과 제사권을 맡게 되었을 것이다. 노아의 때로부터 전해 받은 절기 때마다 그들은 제사를 주관해야 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제사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은 높은데 계신다고 믿어서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렸다. 구약성경에 보면 노아가 홍수 이후에 첫 번제를 드린 곳이 아라랏 산정(山頂)이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바치려 했던 곳도 모리아산의 꼭대기였고(창22:2), 발람이 히브리 백성을 저주하기 위하여 제물을 드린 곳도 비스가산 꼭대기와 브올산 꼭대기였으며(민23:14, 28), 엘리아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의 제단을 쌓았던 곳도 갈멜산 꼭대기였다(왕상18:20), 예수께서도 늘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으며(눅 6:12,9:28),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드리신 예루살렘도 사실은 산 꼭대기에 건설된 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장자의 가문인 셈의 자손들이 절기 때마다 제사를 드리려면 당연히 제물을 준비하여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했다. 그러자니 산 아래로 멀리 내려가면 제사 때마다 다시 올라가기가 더욱 힘들테니까 아예 산 중턱에 주저앉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샘의 장자인 엘람의 이름은 '높은 곳'을 의미한다. 높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남자를 '사내'하고 하는데 이는 '사나이'의 준말이며 곧 '산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역사상 모든 셈족의 조상이 되는 종족을 산지에서 내려와 우르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수메를 사람으로 이야기하는데 이 '수메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이 '셈'이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즉 셈족은 모두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인 것이다. '셈'은 곧 '이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셨다.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창 2:19~20) 즉 아담이 모든 짐승들과 새들에게 이름을 주었다는 것은 곧 '언어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엄마' '아빠' '소' '개'부터 배우기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즉 '셈'이 '이름'을 뜻한다면 곧 셈의 언어, 즉 우리가 말하는 수메르어는 아담이 짐승들과 새들의 '이름'을 지을 때부터 있었던 원초적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수메르어를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인류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던 바벨탑 사건 (창11:9) 이전의 언어였음을 확인할 수 있게된다. 왜냐하면 이상하게도 세계 모든 종족의 언어 학자들이 수메르어를 자기네 언어의 원형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수메르어를 연구하고 있는 강신택 박사는 우선 수메르어에서 수없이 나타나는 우리말의 원형을 그 예로 든다. 수메르의 쐬기문자로 기록된 어휘의 발음을 편의상 알파벳으로 표현해보면 gir은 우리말의 '길'이며 bad는 '발'을 의미하고 nim은 윗분에게 붙이는 경칭이니 우리말의 '님'과 같은 것이다. '하늘'은 가장 높다는 뜻의 an-ur에서 온 것이며 아버지를 부를 때 ab-ba라 하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abi로 낮추는데 이것은 같은 셈계인 히브리어와도 공통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수메르어에서 우리의 고향을 느끼게 하는 것은 한국어와 일본어에서나 볼수있는 '토씨' 가 수메르어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어에 '~가' '~을' '~의' 등 토씨가 있는 것처럼 수메르어에서도 주격, 목적격, 소유격을 나타내기 위하여 명사의 뒤에 ke, ir, ak등을 붙인다. 게다가 수메르어의 문장구조는 놀랍게도 한국어와 같은 S-O-V형으로서 주어-목적어-동사의 순서로 서술되는 것이다. 그러나 야벳계의 언어인 유럽 언어학자들의 의견은 또 다르다. 그들은 수메르어가 유럽 언어의 원형임을 주장하는 이유로 수메르어에 '관계대명사'가 있다는 것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수메르어는 유럽의 언어처럼 관계대명사를 써가면서 얼마든지 설명을 덧붙여갈수 있는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그런가 하면 수메르어는 동남아 등에서 주로 사용되는 남방계언어의 원형도 가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사람을 '오랑'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랑우탄이라고 하면 '숲속의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 "오랑'이란 말을 두 번 반복해서 '오랑오랑'이라고 하면 '사람들'이라는 복수가 되는 것이다. 이 남방계의 말이 많이 들어와 섞여 있는 일본어에서도 '구니'는 나라(國)를 의미하는데 '구니구니'라고하면 '나라들'이 된다. 그런데 수메르어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kur(땅)를 두 번 써서 kur-kur라고 하면 복수인 '땅들'이 되는 것이다. 수메르어가 아담의 때로부터 전해온 바벨탑 이전의 언어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문자'의 역사도 역시 수메르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찾아낸 최고(最古)의 기호문자, 즉 기호로 발음과 뜻을 나타낸 문자는 바로 수메르의 '쐐기문자'뿐인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장자이 집안이었던 셈의 자손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불편하고 살기 힘든 조건을 무릅쓰고 하나님과 가까운 산 중턱에 머물러서 살았다. 그래서 훗날 셈 집안에 많은 잘못과 문제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그때의 수고를 인정받아 장차 인류의 죄를 대속할 '메시야'를 배출하는 집안이 되는 것이다. -성경으로여는 세계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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