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와를 위하여 축배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11-04 |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탸"(창 3:1) 아담 같으면 말 같지도 않은 뱀의 이런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여자는 잘난 듯이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2-3)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말까지도 보태어가며 수다를 떨다가 여자는 드디어 뱀의 올무에 걸리게 된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 뱀은 바로 여자의 그 진취성과 그 모험심을 부추긴 것이었다. 과연 이것은 적중했다. 여자는 겁도 없이 손을 뻗어서 그 열매를 따고 말았다. 유대인 작가 엘리 위젤(Elie Wiesel)은 이 때의 상황을 두고 매우 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담은 그 시간에 어디 있었는가? 자기 아내가 우주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자신의 운명을 바꿔버렸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 뱀은 여자가 혼자 있을 때 그녀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여자가 인류의 운명을 선택하고 있던 그 심각한 순간에 아담이 어디 있었는가 하는 이 질문에 대해서 앨리 위젤은 몇 가지의 전승들을 소개하고 나서 자신의 유머러스한 견해를 적어 놓았다. 아담은 여자의 끊임없는 수다에 질려서 도망가 있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 중요한 현장에 아담이 있지 않았다는 것음 몹시 비극적인 일이었다. 아담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따지기 전에 이미 성경은 아담의 잘못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여자를 데려오면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렇게 지시하고 계신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함께 결정하고 함께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담은 이 중요한 결정의 현장에 있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내와 떨어져 있었으며 그래서 이 첫번째 범죄사건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쓴 장본인이 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마찮가지이다 아내를 버려두고 다녀서 잘된 사람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내를 버려두고 아니다가 에덴의 뱀과 같은 침입자에게 아내를 도둑질당하고 재산을 날리고 신문에 이름을 내어 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 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 즉 남자를 고독과 침체로부터 살려내는 '에셀 케네그도'로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여자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 반드시 남자와 의논해야 하며 남자가 고집을 부리면 설득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결정은 '한 몸된'남자를 살리는 걸정이라야 한다. 남자를 죽이는 결정은 곧 자기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와는 그 중대한 결정을 하면서 아담에게 의논하지 않고 혼자서 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담을 죽이는 결정이었던 것이다. 하와 이후로도 많은 여자들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인류사의 뒤안에 감추어진 비밀들을 추적할 때에 여자에 관한 조사는 아주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많은 여자들이 중요한 결정을 혼자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남자를 죽이는 걸정이기 일쑤이다. 부동산 투기를 하다가 가산을 날리는 사람, 일확천금을 꿈꾸며 허황된 사업에 투자했다가 뒤늦게 가족과 재산을 아 잃어버리는 사람······. 그 모든 사건들 뒤에는 여자가 있다. 여자가 혼자서 결정하고 남자는 창세기의 아담처럼 끌려다니다가 함께 죽음의 무저갱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여자가 유혹을 받아서 범죄하고 함께 부끄러운 존재가 된 후에 아담은 비로소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지어주었는데 이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어달라는 소망을 그 이름에 담은 것이었다. 비록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서 범죄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맡겨주신 '돕는 배필' 즉 남편의 생명을 살려내라는 그 역할에 대해서 아담은 소망을 걸었던 것이다. 비록 어떤 여자들은 인류사의 뒤안에서 인류를 죽음으로 이끌었지만 또 다른 하와의 후예들은 아담의 그 간절한 기도와 간구로 구원자의 오심을 기다렸으며 드디어 하와의 참회를 가장 아프게 물려 받은 받은 나사렛의 처녀 마리아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녀의몸을 통해서 태어났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마음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눅 2:35)을 견뎌내며 그 아들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렸다. 이 진취적이고 용기있는 모험적 여인들의 행진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골고다의 언덕에 마리아와 함께 있었던 여인들, 그리고 부활의 현장에 달려가서 예수를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해서 베드로가 살려 일으켰던 다비다,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 루디아, 아굴라의 아내 브리스길라, 위험을 무릅쓰고 바울의 편지를 로마에 전했던 뵈뵈 등 수많은 이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빛내고 있으며 많은 남자들이 그 아내, 또는 어머니의 믿음과 기도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사례를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잔을 들고 건배를 할 때에 "르하임!"하고 외친다. "하임'이란 곧 '하와'와 마찬가지의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생명' 또는 '생활'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곧 'For Life!'란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하와를 위하여!'라는 뜻도 되는 것이다. 필자는 모스크바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참석자 모두가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연설을 하고 건배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상석의 어른이 일어서더니 뜻밖의 건배를 제의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우리를 위해 집에서 수고하고 있는 우리들의 아내를 위하여!" 그 건배는 참으로 나를 감동하게 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위하여 수고하며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의 아내들에게 늘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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