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여자가 혼자 있을때

은바리라이프 2008. 5. 20. 01:02
제목 : 여자가 혼자 있을때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2-11-01
추리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나 실제로 범죄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들에게는 한 고전적인 교훈이 있다. 바로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여자가 있다.'는 개념이 그것이다. 과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성경에 나타난 첫 범죄사건도 과연 여자와 관계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이 기록에 보면 남자는 수동적이었다. 남자는 그 열매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으며 가지고 싶다든가 먹고 싶다든가 한 적이 없었다. 아담은 참으로 형편없는 추종자가 되어 하와가 따서 주는 대로 그녀가 권하는 대로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담은 그 열매를 먹은 죄를 혼자서 뒤집어스고 말았다. 성경 어느 곳에 보더라도 이것을 '아담의 죄'라고 말하지 '하와의 죄'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사도 바울은 이렇게 쓰다 보니 아무래도 좀 억울하다고 느껴졌는지 여자들의 교만을 경고하는 글에서 여자가 면저 유혹에 걸렸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딤전 2:12-14)
어쨌든 아담은 하와가 따서 주는 열매를 수동적으로 받아서 먹었을 뿐인데도 이 범죄사건의 책임을 지고 인류 최초의 범죄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후로도 인류사의 뒤안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그 여자들은 실제로 역사를 움직이는 큰 사건의 배후들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역사의 수레바퀴는 마치 맷돌을 돌리는 삼손처럼 힘이 센 남자들에 의하여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뒤에는 채찍을 들고 서 있는 들릴라의 거대한 모습이 짙은 그림자들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초에 뱀이 하와를 먼저 유혹한 것은 매우 현명한 작전이었다. 뱀은 미련하게 맷돌이나 돌리는 남다 대신에 그 배후의 실세를 파악하여 여자 쪽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도대체 여자란 어떻게 지어진 존재이기에 그토록 남자를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인류사의 뒤안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신 이유를 두가지로 �혀놓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외로우신 하나님께서 아담의 외로움을 보시고 측은하게 여기신 일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외로움을 나눌 만한 상대로서 여자를 지으시사 짝을 이루게 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창세기 2장 18절은 여자를 지으신 이유 하나를 더 구체적으로 밝혀놓고 있다. 즉 여자를 아담의 '돕는 배필'로 지으신 것이었다.
'돕는 배필'이란 것은 가부장적 제도 속에서 살아온 한국의 남자들이 짐작하는 식의 '내조자'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돕는 배필이란 말의 히브리어는 '에셀 케네그도'인데 여기 나오는 '에셀' 즉 '돕는자'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미할 때 사용된 굉장한 말인 것이다.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에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시 115:9)
이 '돕는 자'라는 이름이야말로 남자의 운명을 쥐고 흔들 정도의 강력한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여자가 뱀의 유혹을 받아 금단의 열매를 먹고 그것을 아담에게도 주어서 먹게 할 위험한 존재인 것을 아셨을 텐데 무슨 까닭으로 그런 여자에게서 '에셀'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기대하셨던 것일까?
필자는 이미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을 지으실 때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거대한 드라마를 펼치기 위하여 천지창조에 착수하셨다는 소견을 피력한 적이 있었다. 그 하나님께서 '사람'의 속성을 둘로 가르실 때 그 가장 예민한 부분에서 갈빗대를 취하시고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는데 이는 바로 사람의 가장 소중한 부분으로 여자를 지으셨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사람에게 침착하고 보수적인 면과 모험적이고 진취적인 면이 모두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 위험부담을 각오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아담에게도 이왕이면 모험적이고 진취적이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가장 소중하고 예민한 부분을 떼어 내실 때 이미 여자에게 남자를 이끌 만한 진취성과 모험심을 주려고 작성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진취성과 모험심이야말로 사람에게 소중한 것임을 가르쳐주신 일이기도 했다. 장차 파멸의 위험에 처한 사람이 다시 하나님을 찾아오려면 엄청난 모험과 용기가 뒤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위험한 하와에게 이 일을 맡기시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남잔의 가장 예민한 부분에서 떼어낸 리모트 콘트롤러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여자가 이끌면 남자는 결국 따라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여자에 비하여 남자는 보수적이다. 직자에 다니는 샐러리맨들을 보면 점심식사하는 곳이 몇군데 정해져 있어서 그테두리 안에서 맴돈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늘 새로운 정보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장소를 개척하여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서울의 강북에서 살다가 집을 팔아가지고 새로 개발되는 낯선 강남으로 가자고 우기는 쪽은 대개가 여자들이다.
그리고 그 아내들의 말을 듣고 강남으로 따라간 남자들은 적어도 생활면에서 볼때는 대개가 성공하였다. 집값의 변화를 따라가면 몇 번만 이사를 하다 보면 큰 집을 장만하고 넉넉한 생활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이 사람을 파멸시키기로 작정하고 유혹의 손길을 뻗기 시작했을 때 바로 이 '위험한 반쪽'에 승부를 걸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탄은 여자가 혼자 있을 때를 노려서 그녀에게 접근하였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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