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먹지 말라 한 것을 먹었은즉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11-07 |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REE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담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자'(창 1:28)로서의 절제를 요구하신 것이었다. 선악의 분별은 교만과 탐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롬 2:7). 그런데 거짓말쟁이인 사탄은 하와에게 그것을 '먹어버리라'고 유혹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사탄은 자신의 거짓말에 신빙성을 싣기 위하여 '하나님'을 두 번씩이나 들먹여가며 하와를 미혹했다. 이 때로부터 '절제하지 목하게 하는 것'은 사탄의 고전적인 무기가 되었고, '자긍하여 교만하게 되는 것'은 패망의 함정이 된 것이다(딤후 3:2-3) '절제'는 다스리는 자로 하여금 정확한 통찰력과 판단력을 갖게 하는 최고의 도구였다. 그리고 이 절제야말로 만물을 빈틈없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도 했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권유하신 그 절제의 능력을 사람이 포기하게 된다면 그것을 다스리는 자로서의 자격가지도 포기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절제를 포기한 사람에게 남은 길은 다스리는 자의 자리에서 쫓겨나 가속화된 엔트로피의 증가와 함께 블랙 홀을 향해 달려가는 짐승 같은 삶뿐이었다. 이로부터 사람에게는 고난의 가시밭길이 예비되었다. 그것은 증가하는 무질서 때문에 사람이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물리적 반응이었다. 그리하여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을 얻게 되었고, 남자는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해야만 그의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을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징계'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바로 징계받는 자의 지혜이다. 징계하는 아버지를 미워하여 대드는 자녀는 영영 소망이 없지만 저 무서운 홍수의 심판 때에 하나님의 눈에서 사랑을 발견한 노아는 구원을 얻었던 것이다.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7-8) 이 말씀 중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하는 표현이 히브리어 원문 성경에는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사랑을 발견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매를 든 아버지의 무서운 눈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아이가 바로 소망이 있는 아이인 것이다. 어느 아버지가 그 아들을 미워서 때리겠는가?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그 아들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 매를 드는 것이다. 노아는 이것을 알았다. 그리고 바로 그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인류 최초로 받았던 그 징계에 대해서도 우리에게는 그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해내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다. 우선 하와에게 주신 말씀을 살펴보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자식을 낳게 했던 이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다.(창 1:28). 그러나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절제를 포기하면서부터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그 사람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절제를 포기하게 되고 그 결과로 사람의 역사가 멸망으로 끝나게 된다면 하나님의 창조는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서 '실패' 하였다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이세상에 보내어 인류를 멸망으로부터 구원해내기로 작정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의 이 새로운 작전은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즉시 가동되었다. 열매를 먼저 먹은 것이 여자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가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게 하셨다. 여자는 사탄에게 속았으므로 그에게 보복할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손으로 사탄을 징계해야만 그 죄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뱀)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다스리는 자'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이 하나님의 독생자가 오시는 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던 일에 대하여 많은 시련을 겪어가며 통화하고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갈망하게 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절제의 포기로 인하여 가속화된 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하여 사람은 그 시간이 이르기도 전에 죽어버리게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독생자의 구원사역이 임하기까지 견디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아담과 하와의 생명을 이어가는 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이어질 때마다 사람은 하나님의 충고를 소홀히 하였던 일과 그 아픔에 대해서 기억하는 일도 필요했다. 그래서 모든 여자들은 아이를 낳을 때마다 해산의 고통으로 울부짖게 된 것이며 모든 아이는 그 부모의 아픔을 물려받아 울음을 터뜨리면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고통의 기억은 구원의 날까지 이어가게 되었지만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는 그 기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또 하나의 비상조치를 취하시게 되었다. 절제의 포기로 인하여 나타나는 엔트로피의 증가와 급속한 수명 단축을 막기 위하여 사람에게 노동의 수고를 부과하셨던 것이다.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여 먹는 것을 탐하고 사람들 사이에 이로 인한 경쟁과 갈등이 나타나게 되면 콜레스테롤과 스트레스의 증가로 인하여 사람은 더 빨리 죽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노동'을 하게 하시는 것으로 그 대책을 세우셨던 것이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블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창 3:17-19) 사람은 노동으로 땀을 흘리며 절제의 능력을 회복해야만 콜레스테롤과 스트레스의 증가를 억제할 수 있었다. 또한 농사의 현장에서 일해 봐야 알맞은 비를 내리시고 결실의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수고하고 절제하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이 더 오래 살도록 조치해 놓으셨던 것이다. <김성일님의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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