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08-12 |
미디안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모세를 불러낸 하나님은 그를 40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사용하셨다. 출애굽기로부터 신명기에 이르는 그 40년간의 기록을 읽어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는 그 기간 동안 모세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매우 엄격하고 계율적인 주종(主從)의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준엄한 음성으로 모세에게 명령(命令)하시었고 모세는 그에 대하여 늘 절대 복종(服從)으로 응대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 관계는 참으로 덤덤하기 짝이 없는 상관과 부하, 또는 주인과 종의 관계였던 것이다. 민수기 9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떠오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서 이동하고 머무른 이야기들이 설명되고 있는데 그 18절과 23절 사이에 『여호와의 명(命)을 좇아・・・』라는 말이 무려 여덟 번이나 나온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에 얼마나 충실하게 복종했던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인 것이다. 그토록 하나님과 모세 사이의 관계는 명령(命令)일변도의 관계였다. 그런데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의 마지막 부탁을 남겨놓은 신명기(申命記)에 보면 어쩐일인지 그는 저 유명한 『세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의 대목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개념은 바로 플러스(+)에서 마이너스(-)쪽으로 흐르는 전류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참조). 즉 사랑은 강한 자에게 약한 자에게로 흐르고 높은 자에게서 낮은 자에게로 흐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어딘가 어색하게 들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 만물을 지으신 전지전능하신분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몰라도 사람이 어떻게 그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혹시 하나님을 경외(敬畏)한다고 표현하면 어느 정도 그럴 듯 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약하고 힘없고 유한한 존재인 사람이 전능하시고 위대하시고 영원하긴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은 아무래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라・・・」 어째서 모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표현을 했을까?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도 바리새인들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 율법 중에 계명이 크냐고 물었을 때 이 모세의 말을 인용하여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마 22:37~38) 늘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만 듣고 거기 복종만 해온 모세가 어째서 대답하게도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신명기의 가르침이 시작되기 전의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모세는 40년간 수없이 험난한 고비들을 넘겨가면서 드디어 가데스 바네아에 다시 도착하였다. 바로 40년 전에 정탐꾼들의 잘못된 보고도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철수하였던 장소였다. 이 가데스에서 물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해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40년 동안의 광야생활로 너무나 지쳐 있었던 모세는 또 원망하는 백성들 때문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내려치게 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은 모세의 직임을 거두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내 영광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이것은 모세에게 청천벽력이었다. 40년간이나 갖은 고초 끝에 가나안 땅 가까이 이르렀는데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40년 전 시내산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하셨을 때 차라리 자기를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버리더라도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던 모세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원망할 때에도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부르짖었던 모세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지나간 40년이 아까워서라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는 죽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복종했던 모세도 이번만은 잠자코 따를 수가 없었다.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신 3:25) 그렇게 간청해도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셨다. 그러나 모세가 하도 간절히 간구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만 모세에게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의 비밀을 가르쳐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경계를 말씀하시면서 요단강 동편까지도 거기에 포함시키심으로써 (민 34:1~12)가나안 땅이 종말론적 낙원이 아닌 것을 암시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섯 개의 도피성을 지정하실 때에 다시 확인되었다. 하나님은 도피성을 요단 서편에 세 개, 요단 동편에 세 개를 설치하게 하심으로써(민 35:13~14)그것을 재확인 시켜주셨던 것이다.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징적인 약속의 땅이었을 뿐 역사의 종착역이 아니며 다만 앞으로 이스라엘이 세계사의 나침반이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 모세는 황급히 이스라엘 회중을 집합시켜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그는 가나안 땅이 마지막 땅이 아니므로 모두들 정신차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잘못하여 화를 입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를 남겼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였던 것이다. 이 모든 조치를 다 해놓고 나서 모세는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직임을 거두기로 하신 모세에게 이 모든 비밀들을 알려주셨던 것일까? 늙은 모세의 기억 속에 하나님과 함께 했던 40년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마침내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때의 일이 생각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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