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에스겔의 아픔과 소망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05-02 |
에스겔의 아픔과 소망 BC 579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여호야긴 왕을 비롯한 많은 정부요인과 기술자와 백성들을 사로 잡아갔을때 그 포로들 가운데는 예루살렘의 제사장 집안에서 자라난 25세의 청년 에스겔도 끼여 있었다. 이방인의 군대에 잡혀서 끌려가는 청년 에스겔의 심정은 매우 비통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요 여호와의 장자(출 4:22)라고 자부하던 나라가 이방의 군대에 마구 짓밟힌게 된 책임은 바로 백성들의 신앙생활을 재대로 지도하지 못한 제사장 집안에 있다고 그는 판단했던 것이다. 바벨론 땅 그발 강변의 정착촌에 우거하던 에스겔은 몰락해가는 조국의 비통한 최후를 예감하면서 에스겔서를 기록하기 사작했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몰락은 이미 그들의 전성기에세 시작되고 있었다. 예루살렘 축성(築城)공사장의 현장감독이었던 에브라임 지파의 여로보암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다가 마침내 세겜으로 올라가 별도의 나라를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두 조각으로 만들었다. 여로보암과 함께 분규를 일으켰던 가나안 노동자들이 북왕조 이스라엘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북왕조는 급속히 우상의 나라가 되어갔으며 특히 가나안 여자로 왕비가 된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모두 다 죽여 없애버렸다(왕상 19:1). 그에 이어 남 왕국 유다의 여호람 왕도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그의 왕비로 맞아들임으로써 마찬가지로 가나안 우상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왕하 8:18). 그러다가 먼저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했고(BBC 722) 남 왕국 유다는 BC 605년과 BC 597년 두번에 걸쳐서 바벨론에게 유린되다가 에스겔서의 기록이 시작되었던 BC 592년으로부터 6년만인 BC 586년에 결국 그 바벨론에 의해 숨통이 끊어지고 말았다. 에스겔이 파악한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던 탓이었고 결국 그 책임은 백성들의 신앙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던 제사장 집안에 있었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牧者)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겔 34:3-5) 그러나 자책과 비통에 잠겨 있던 에스겔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약속을 받고부터 비로소 다시 소망을 갖기 시작한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해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겔 34:23) 이 새로운 목자는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에스겔은 비로소 골짜기의 해골들이 다시 생기를 얻어서 일어서는 환상을 보게 되고 갈라졌던 두 나라의 통일을 꿈꾸게 된다.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어지 아니할지라』(겔 37:22) 이스라엘이 걸었던 전철과 흡사하게 우리 나라도 민족 분단의 역사를 겪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 6·25를 겪으면서 남쪽의 국가적 이슈는 계속해서 반공(反共)이었고 자유당의 독재에 이어 다시 군사정권이 등장하자 반독재(反獨裁)투쟁이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반독재 투쟁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 6·29선언이 나오자 마자 즉시 그들의 투쟁목표를 이 통일문제를에 맞추었고 정부도 이에 대응하여 북방외교라든지 남북교류협상 등을 최우선적 과제로 추진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면서 동구권의 붕괴가 시작되고 독일이 하루 아침에 통일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도 통일이 성취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여러 분야의 교류를 추진하면서 북쪽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 넣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대인 모양이고 서로 헐뜯지만 말고 공통점을 찾아내어 우선 합쳐놓고 보자는 것이 급진적인 운동권의 생각인듯 한데 또 어떤 사람들은 경제성장에 주력하면서 독일처럼 흡수식 통일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지금 돌아가고 있는 상황은 남쪽에 상당히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상당히 의존하고 있던 소련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더이상의 의지하기 어렵게 된데다가 중국은 달갑지 안게도 공산주의의 마지막 종주국이 되어버려 당황하고 있는 형편이라 북한을 자상하게 돌봐줄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 시점에서 흥분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통일을 위하여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점검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독일이라는 통일의 선례(先例)가 있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동유럽과 소련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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