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린도에서 온 소식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05-09 |
실라를 데리고 두번째 전도여행에 나선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등지를 지나며 전도하다가 아덴을 거쳐서 해운(海運)의 중심지인 고린도로 들어가게 된다. 헬라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사이의 해협에 위치한 고린도는 서쪽의 로마와 동쪽의 소아시아를 이어주는 바닷길의 요충이었고 항구도시였다. 그래서 고린도는 온갖 장사꾼들, 뜨내기들과 뱃시장 술집 여관들이 번창하는가 하면 술꾼과 불량배와 창녀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고린도는 그토록 퇴폐한 도시여서 바울 같은 전도의 용사도 이 범죄와 음란이 우글거리는 도시에 도착하자 그 마음이 떨려을 정도였다. 그러나 주께서 밤에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나타나 그를 격려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 9-10) 주의 말씀을 듣고서야 바울은 비로소 이범죄와 음란의 도시야말로 전도의 「황금어장」이라는 것을 깨닫고 1년 6개월 동안이나 고린도에 머물면서 맹렬한 전도활동을 벌였다. 과연 고린도는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황금어장이었다. 많은 불량배와 창녀들과 포주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 회당의 회당장들을 비롯한 많은 유대인들까지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 바울은 이 고린도에서의 전도에 큰 성공을 거두고 나서 에베소를 거쳐 안디옥으로 귀환했다. 그 후 다시 2년동안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며 두란노서원에서 말씀을 강론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고린도교회에서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걱정스러운 소식을 전하였다. 바울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전도하고 개척해 놓은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일어나서 베드로파 아볼로파등 여러 개의 파벌이 생겼는데 심지어는 바울파 그리스도파까지 생겼다는 것이었다. 고린도교회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사소한 문제들이란 이를테면 과부가 다시 재혼을 해야 하는냐 혼자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아예 처음부터 바울처럼 혼자 사는 것이 좋으냐 결혼을 하느냐 안써도 되는냐 하는 문제라든가,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하느냐 안써도 되느냐 하는 문제, 우상의 제단에서 나온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 안먹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문제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교회 밖의 재판관에게 가서 송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급히 써서 보내었던 바울의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이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고전 6:1-2)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은 모두 그와 함께 세상을 다스리게 되어 있으므로(계 20:4) 성도들이 오히려 세상을 판단해야 하는데 교회 안의 문제를 가지고 세상의 재판관에게 들고 간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나무라면서 바울은 성도들의 분쟁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그밖의 모든 사소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언급을 시작했다. 교리상의 해석이나 교회의 지침들에 관해서 설명할 때에 그가 취하였던 판단의 기준은 바로 그러한 분쟁의 문제들이 「구원」의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한 바울의 판단기준으로 보았을 때 고린도교회에서 생긴 논쟁들은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다만 바울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추어 어떤 것들이 신앙생활에 더 유익한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언급을 했던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판단 기준은 오늘까지도 활용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도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권장하고 있는 몇가지 지침들에 대하여 고민을 하기도 하고 또 논쟁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에 우리는 바울처럼 그것이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먼저 상고하면 판단하기가 한결 쉬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술이나 담배에 관한 문제라든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라든가, 교회를 옮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 또는 결혼 상대자가 교인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들도 바울의 기준대로 보면 그것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 구원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도 성도들이 이런 종류의 고민에 대하여 상담을 해올 때 대개 그러한 바울의 기준에 의거하여 답변을 밝히면서 한편으로는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자세를 참고로 알려주고 있다. 그 사례 중의 하나가 바로 「우상의 제물」에 관한 그의 생각이었다.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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