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가데스와 르비딤 사이

은바리라이프 2008. 5. 8. 23:48
제목 : 가데스와 르비딤 사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2-04-29
모세가 가데스에서 있�던 가건 때문에 하나님의 꾸중을 듣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좀더 호의적인 해석을 하기도 한다. 즉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동안 그 영도력이 너무나 탁월햇고 완벽했기 때문에 그가 백성들을 가나안까지 지휘하여 이끌고 들어가면 하나님을 제치고 백성의 우상이 되어버릴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리 모세로 하여금 실수하게 해서 가나안 진입을 못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결코 모세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은 그후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러서 그것이 증명된다. 모세는 예수께서 높은 산에 올라 빛나는 모습으로 변형되셨을 때에 엘리야와 함께 나타나 예수님과 장차의 일을 의논하였다고 했으니(눅 9:30-31) 그가 계속해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음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의 지휘권과 제사권을 박탈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 우리도 이런 실수를 해서 그들과 같은 일을 당하게 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느 이 문제를 철저하게 검토하고 넘어가기 위해서 한가지를 더 발견하게 되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서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에게 명하여···라고 말씀하셨지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하시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이나 치셨다. 반석에서 명하여···그렇다. 하나님의 능력은 반석에서 명령만 하여도 물을 내게할 수 있을 터인데 구태여 지팡이로 반석을 치거나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하셨던 대목이 틀림없이 어딘가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내 바로 40년전에 똑같은 사건이 르비딤에서 있었던 생각해 내고 부지런히 성경을 찾았다.
있었다! 분명히 르비딤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하셨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면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시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출 17:5-6)
그러니까 40년전 전 르비딤의 비슷한 상황에서 내리셨던 하나님의 명령과 40년후 가데스에서의 명령이 달랐던 것이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비슷한 상황인데도 다른 방법으로 명령을 내리셔셔 모세를 헛갈리게 하셨는가? 정말로 모세를 실수하게 만든시려고 함정을 만드셨는가?」
나는 다시 40년 전의 상황과 40년 후의 상황을 곰곰이 비교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40년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4백30년간의 종살이에서 해방된다는 기쁨과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던 유월절 밤의 무서운 사건에 떨면서 엉겁결에 보따리를 싸들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막상 광야로 나서자 그들을 맞아준 것은 광야의 거친 바람과 흙먼지뿐이었고 그 백성들은 겁을 먹고 우왕좌왕하는 오합지졸이었다. 이런 가운데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강력한 영도력을 쥐어주실 필요가 있었다. 그 상징이 바로 모세의 지팡이었던 것이다.
르비딤에서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에 엄청난 권위를 부여하셨다. 그 지팡이가 반석을 침으로써 물이 나오게 되자 백성들은 모두가 그것에 굴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론 반석에서 물이 나온것은 지팡이의 위력이 아니라 그 반석 위에 모세를 대하여 서 계셨던 하나님의 권능이었다.
그로부터 40년후···아직도 일부 생존하고 있던 광야1세대는 또 그 버릇대로 새 세대들 앞에서 물이 없는것 때문에 원망을 시작했다. 어차피 광야에서 죽어야 하는 그들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더 큰 권능을 보여주시고 또한 제 2차세대에게는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권능과 명령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실 필요가 있었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휘권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들고가되 반석에는 그냥 명령만 하도록 지시하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모세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모세의 능력을 더 크게 나타내시려고 그가 명령만 해도 반석이 복종하는 대사건을 보여 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너무나 지쳐있었고 짜증이 났고 화가 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기는 들었는데 그 일부만 듣고 나머지는 자기 나름대로 짐작을 해버렸던 것이다. 가데스도 르비딤과 비슷한 물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지팡이를 잡고 가라 하셨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뻔한 것이다···지팡이로 반석을 치라는 것이겠지.
그래서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쳤다. 모세의 이 돌연한 행동에 하나님도 놀라셨을 것이다. 하나님은···모세에게 몹시 섭섭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은 그에게 소홀히 하는 것을 섭섭하게 여기신다. 소홀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틈이 생겼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세와 같은 실수가 사람들 사이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오랫동안 잘 살던 부부가 생활의 분주와 타성 때문에 서로에 대한 관심에 틈이 생겨 돌이킬 수 없는 파경으로 치닫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성직을 감당하는 주의 종들도 마찬가지이다.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체험하고 막중한 사명을 받아서 주의 일에 동분서주하다가 자칫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을 귀담아 듣지 못하고 지팡이만 휘둘러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하나님은 멈추어 있는 자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사랑하는 자는 날마다 새롭게 되는 자인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새로우심을 발견하고 그 새로움으로 자신을 단장하지 않으면 언제 그분의 사랑이 나를 떠나실지 모른다. 수십년 전의 노트만 의지하면 되는 줄 알다가···지금도 공부하지 않다가···언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옷을 벗기실지 모른다. 언제나 우리는 신랑을 맞는 신부의 설레임으로 그분의 음성을 주의해서 들어야 할 것이다.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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