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은바리라이프 2008. 5. 8. 21:21
제목 :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2-04-08
이제 「예수」의 이름을 없애기 위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바뀌지기 했던 사탄의 작전은 그 두번째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예수 믿는 자들의 무기는 기도이고 그 기도는 예수의 이름으로 드리는 것인데 이제 기도에서 예수의 이름을 빼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예배 시간에 대표기도를 드리는 목사나 장로들이 「예수의 이름」을 「주님의 이름」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예수란 이름을 잘 안쓰다보니 쑥스러워진 것인지 어색해진 것인지 모르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하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긴다. 그러나 이 주님에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므로 성자이신 예수도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성부(聖父)이신 하나님도 주님이 되신다. 그러나 기도를 드릴 때에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상대는 기도를 받으시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우리는 자신을 드려 하나님과의 통로를 열어주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요 16:26)
기도를 받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고 기도의 문을 열어준 분은 성자 예수님이시고 기도를 돕는 분은 성령이시다. 가끔 미숙한 주일학교 교사들이 이것을 잘 모르고 예수님께 기도를 드린다거나 예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실수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것은 애교로 봐준다 하더라도 공식 기도문에 이런 것이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91년 5월 21일 서울 YMCA는 사회혼란의 원인이 가정교육 실종에 있다고 인식하여 「올바른 가정 만들기 운동」행사를 갖고 어린이의 기도, 어머니의 기도, 아버지의 기도 등을 낭독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그 기도문에 문제가 있었다.
그 기도문의 상대는 「주님」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기고 하나님과 대화할 때 늘 『주여』하고 부르므로 거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 세개의 기도문은 모두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로 끝나고 있었다.
물론 이해가 깊으신 하나님께서 앞쪽의 주님은 「하나님」으로, 뒤쪽의 주님은 「예수」로 알아들으셨을 터이니 그렇다면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주님」이 예수의 이름과 대치(代置)되는데에 문제가 있다.
「주님」이란 히브리어의 「아돈」, 헬라어의 「큐리오스」,라틴어의 「도미누스」가 모두 종이 그 주인을 부를 때에 쓰는 말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께 부름받은 일꾼들이니 하나님을 부를 때 당연히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면 그도 역시 우리에게 그렇게 부를 것을 요구할 것이다. 실제로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록을 기록할 때 적그리스도의 모형이 되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주님이시며 신(Dominus et Deus)이신 황제 폐하라고 부르게 했다.
장차 사탄의 아들인 적그리스도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고 거짓 선지자가 통일된 세계종교를 관장하여 그에게 예배를 드릴 때 그 기도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의 습관 때문에 기도가 끝나려면 뭔가 마무리 말이 있어야 한다.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에게「···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가 귀에 익었기 때문에 결국 통일 종교의 거짓 선지자는 기도의 끝에다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넣게 될 것이다.
잘못된 것을 알면 빨리 고여야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 세련된 기도를 드린다고 하다가 사탄의 계략에 협조하는 수가 있게 된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마지막 때까지 「예수의 이름」을 사수(死守)할 의무가 있다.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8-19)
이 이름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이름이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비록 그 이름이 부르기에 촌스럽더라도 상관없고 사람들이 업신여겨도 부끄러워 할 것 없다.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저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 적혀 있던 이름이 바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였기 때문이다. 예수의 이름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그 이름이 아니면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도 헛것이고 모든 선행과 봉사도 다 헛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어떤 엄격하신 목사님들은 아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는 것을 우리는 가끔 듣는다. 예수란 이름도 동명이인이 있을 수 있으니 아예 그 출신자까지 붙여서 정확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베드로도 저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美門)앞에서 앉은뱅이를 잡아일으킬 때에 그렇게 기도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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