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논쟁하는 사람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02-26 |
어느날 갑자기 태풍처럼 몰아쳐온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무너져버린 나는 성경을 허겁지겁 읽기 시작하였으며 새벽기도회에 나가고 교회의 모든 모임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애썼다. 아닌게 아니라 그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다시 주님께로 돌아온 내게는 그저 기쁘고 즐거웠다. 남선교회도 그렇고 교사회의도 그렇고 주님의 일을 한다고 모이는데면 무조건 참석했다. 그런데 어느날 난생 처음으로 제직회라는데 참석했다가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것은 집사 이상의 핵심적인 교우들이 모여서 교회의 여러가지 회무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모임이었는데, 그날은 무슨 예민한 안건이 있었는지 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분위기가 술렁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한분이 일어서서 그 안건을 꺼내자 장로와 집사들이 다투어 발언권을 요청했는데 논쟁이 격렬해지기 시작하고 음성들이 격해지더니 이번에는 많은 교우들의 면전에서 목사님을 공박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회의장은 수라장이 되었고, 우루루 일어서서 서로 삿대질을 하며 고함 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회의가 어쨌든 바깥세상의 세속적인 집회도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의논하려고 모인 것인데 교회의 중진되는 분들의 발언 내용에 성격적인 근거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왜 저분들은 성경에서의 가르침이나 성경적인 사례를 들어서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각 교회의 제직회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급들이 모이는 지방회, 그리고 전국의 대표들이 모이는 총회 같은 데서도 그런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목사와 장로들이 전국 총회에서 삿대질을 하며 언쟁하다가 마침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가 하면 발언자를 끌어내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까지 있다는데 그것은 마치 수준낮은 우리나라의 국회가 툭하면 서로 고함을 치고 멱살을 잡고 명패를 집어던지며 싸우는 것과 똑같았다. 교회가 이 나라 국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숫자적으로도 나타난다. 90년 9월 19일자 국민일보에 실린 국회의원들의 종교통계를 보면 국회의원 2백99명 중에 기독교가 95명, 천주교가 45명, 불교가 50명으로 되어 있다. 자칭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독교인 천주교인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국회에 대한 크리스천들의 영향력이 막강하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느날 아침, 자녀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다가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중세의 유럽은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신본주의의 세상이 밀려나고 인분주의가 고개를 들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 그만큼 역부족이었단 말인가···ㄴ」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서 세상이 잘 되는 것은 아니로구나···」 그러면서 나는 생각해 보았다.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들이 바라듯이 한국사람이 다 예수를 믿게 되어 총회장이 대통령 되고 목사들이 장관 재판장 되고 장로들이 국장 과장 된다면 어떻게 될까.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름이 끼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것이고 직분따라 사명이 달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허락하실리 없지만. 나는 지금 정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고함치고 욕설을 퍼붓는 교회의 회의는 바로 성경을 제쳐둔 채 사람의 생각을 주장하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성령의 가르친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사 34:16)과 성령이 간구해주시는 「기도」(롬8:21)인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가르치기를 사람이 말할때 성경과 기도에 근거하지 않는 것은 교만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교회의 웃어른들이 언성을 높여가며 토론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은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고, 중요한 일이라면 마땅히 장로드이 둘러앉아 기도하고, 이 일에 대하여 성경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가를 찾아 보아야 한다. 그것이 곧 교회의 회의방법이다. 성경을 찾아보지도 않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아마도 어떤분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른다. 『요즘같이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는데 성경에 그런 것이 다 기록되어 있나?』 그러나 성경에는 분명히 『빠진 것이 없다』고 되어 있다(사34:16). 또 어떤 분은 일일이 성경에 맞추어 살 수 있느냐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 기록되어 있는 명령이 어려운 것도 아니요, 멀리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성경에 가르친 대로 하지 않고 사람의 방법대로 하는 것은 신앙적 불법이다. 마땅히 교회의 일꾼을 뽑을 때에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행6:3)사람을 복수로 천거해 놓고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야 한다. 잘못된 줄을 알았으면 빨리 고쳐야 한다. 교회가 일꾼을 기도와 제비로 뽑을 때 분쟁은 사라지고 하나님으 두려워하는 종들이 교회를 말씀대로 치리(治理)하게 될 것이다. 많은 지도자들이 말씀대로 하지 않고 불법으로 행하면서『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교회지도자의 자녀들이 타락하고, 불법자가 되고 마약에 중독되고 암에 걸려서 죽어간다. 아비가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자녀도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런 교회 모임의 세속화는 아직 믿음이 연약한 초신자들을 실망시키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한다. 실제로 술 담배를 끊고 새벽기도회까지 출석하며 잘 믿어보려고 애쓰던 내 친구 하나가 교회의 제직회에 참석했다가 장로들의 분쟁을 목격하고 실망하여 세상으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세상으로 다니면서 서글프게 말한다. 『내가 이게 좋아서 교회에 안나가는 것은 아니야. 교회에 더 나가다가 이것보다 더 타락할까봐 겁나는 거야』 그의 비통한 고백을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해본다. 갈급한 마음으로 교회를 찾아나왔던 한마리 양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낸 그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천국에 가서 지옥에 가 있는 내 친구를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것인가. 성경대로 살자. 성경대로 사는것은 찜찜하게 천국에 가서 난처한 입장에 빠져 식은땀을 흘리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일이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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