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불법을 행하는 자들

은바리라이프 2008. 5. 7. 14:02
제목 : 불법을 행하는 자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2-01-31
하나님의 추수 때가 밀어닥치면서 세상에는 불치병이 만연하고 암과 중풍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지구는 온통 귀신들린 사람들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살려달라는 사람들이 팔을 벌리고 아우성인데 이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야 하는 사람들이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이 1천명이라고 하는데 그들 50명당 장로가 1명이라고 하면 전국의 장로수는 무려 20만명에 달하게 된다. 그런데도 장로에게 안수받아 나음을 입었다는 간증을 이 땅에서는 듣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들 20만명의 장로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문제는 일해야 하는 일꾼들이 놀고 있으니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판을 벌여놓고 날뛴다는데 있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즉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손을 얹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니까 필연적으로 「돌팔이」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하는 일을 자세히 보면 성경의 내용과 틀리는 것을 우리는 찾아낼 수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안찰(按擦)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어디를 보아도 예수님도, 그리고 사도들도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按手)했다고 되어 있지 안찰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소위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기도를 하c 환부를 주물럭거리는가 하면 심할 때에는 마구 때리기도 하는데 이것을 안찰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손으로 때려서 안되니까 마구 몸둥이로 때려서 사람을 죽게 하고, 신문이나 방송에 「사람잡는기도원」이 보도되기도 한다. 안찰이란 바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려하는 불법 때문에 저질러지는 오류인 것이다.
이런 것과 비슷한 것에 소위 「예언기도」라는 것이 있다.
필자는 어떤 예언기도를 잘 하는 사람이 인근에 왔다는 말을 듣고 그 예언기도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아내와 현장을 가 본적이 있다.
그 사람 역시 공인된 성경과 찬송가로 예배로 드리며 방 안에 들어 온 자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스르르 자리에 모로 누웠다. 이제부터 천사가 일러주는 대로 각자에게 예언을 준다는 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찬송가 405장을 많이 불러라』『시편 ○○편을 많이 읽어라』
얼핏 듣기에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문제가 있다. 찬송가의 어떤 장이나 시편의 어느 곳을 집중적으로 부르거나 읽다보면 다른 장의 찬송가에 소홀해지고 성경의 전체를 파악하는데 약해진다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천사가 일러준다는 예언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성전의 강대상을 새로 만들어 바쳐라 』『건강에 문제가 생길테니 기도를 열심히 해라』『사람을 믿지 말고 조심해라』
이쯤되면 완전히 점쟁이가 하는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본래 예언이란 성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시대에 있었던 계시의 전달방법이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많은 예언자 선지자가 활동했던 것이다. 신약시대에도 아기 예수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비둘기 한 쌍으로 감사했던 여 선지자 안나가 있었고(눅 2:36) 전도자빌립의 네 딸도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행 21:9). 그 외에 안디옥교회에도 선지자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행 13:1)아가보같은 선지자는 유대에 흉년이 들것을 예언하여 성도들을 안타깝게 했다(행 21:10).
이들 예언자 선지자가 있었던 AD58년경만 하더라도 신약의 네 복음서조차 아직 없었으며, 바울의 편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 그리고 고린도전·후서가 겨우 쓰여졌을 때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 5절에서 예언의 은사에 대하여 말했으나 그 내용을 엄격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기록했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않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고전 14:29:30)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예언은 대부분 인류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와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경고의 필요 때문에 전달되었다.
또 때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수행하는 중요한 인물들과 공동체에 대해 사랑과 격려를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예언들은 이미 39권의 구약성경과 27권의 신약성경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복을 받고 어떻게 하면 화를 입는다는 것이 신명기 28장에 다 나와 있고 선지자들의 예언과 예수님의 말씀에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계획도 상세하게 설명되어있다. 더군다나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은 모두 바른 자세로 분명한 상태에서 예언했지 드러눕거나 혼수상태에서 말하지는 않았다.
이 예언과 비슷한 것에 「계시」라는 것이 있다. 기도 중에나 꿈 속에서 특이한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듣고 이를 발설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 대하여 성경에는 아주 모범적인 자세가 나와있다. 바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릇의 환상을 보았던 베드로의 태도였다. 베드로는 이속된 물건이 담긴 그릇의 환상을 세 번이나 보고도, 그리고 그것을 먹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던,,,』(행10:17)
이때 가이사랴 이달리야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였으나 베드로는 아직도 자신이 본 환상과 음성을 점검하고 있었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행 10:19)
베드로가 코넬료가 보낸 사람들 따라 가이사랴에 이르러 고넬료가 본 환상에 대하여 듣고 자기가 본 환상과 대조, 검토한 후에 비로소 결론을 내린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4∼35)
더군다나 베드로의 이 결론은 바로 성경말씀(삼상 16:7;사64:5)에 근거한 것이었다. 베드로는 나중에 예루살렘의 교우들이 이방인에게 세례준 사실을 듣고 비난할 때에 가서야 자신이 받은 계시와 그에 대한 검토와 성경적 근거를 자세히 설명하여 그들의 찬성을 얻게 된다(행 11:1∼18).
이러한 베드로의 진지하고 침착한 태도는 함부로 자기가 본 것을 발설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자들이 얼마나 경솔한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사람이 보고 듣는 환상과 환청이란 얼마든지 자신의 환각에 의한 것, 또는 악령의 미혹에 의한 것이 있을수 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세 번이나 거듭 듣고도 이것을 발설하지 않고 침착하게 검토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불법이 횡행하는 세대에서 말씀을 모르면 어는 손에 잡혀갈지 모른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벧전 5:8). 이런 세대에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마 4:4).
이럴 때에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고, 아픈 자들에게 안수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지도자들이 할 일이다. 지도자들이 자기 양들을 돌보지 않고 있을 때 도둑이 나타나고 「다른 불」로 분향하는 이단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가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받아 분향하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