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01-14 |
구약시대의 제물(祭物)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사역의 대한 예표(豫表)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을 단번에 드려 속죄의 제사를 완성하심으로써 이제 그 제물에는 「감사와 나눔」의 의미만이 남게 되었다. 일평생 교회에 다니며 구원은 모르고 돈만 내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마치 점쟁이나 무인에게 가서 복채 놓고 다니는 사람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돈을 좋아하여 돈 달라고 손내미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려야 한다. 주께서 우리에게 그 생명과 몸을 주셨으니 우리도 자신을 주께 드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핵심이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그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신 분이었다. 그는 죽음을 걸고 우리를 사랑한 분이었다. 흔히들 우리에게 그래서 그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신 분이었다. 그는 죽음을 걸고 우리를 사랑한 분이었다. 흔히들 우리에게 그래서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감사의 조건을 붙여서 「헌금」하라고 권고한다. 「세상에······!」 돈을 얼만큼 내어서 주님의 그 엄청나신 사랑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한단 말인가? 주님께서 언제 우리에게 『너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네게 다 주었으니 너는 내게 감사하며 내게 돈으로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단 말인가? 우리가 만일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제단」에 돈 봉투를 들고 나와 「제물」로 또는 「예물」로 바치면, 그리고 가령 그것으로 주님의 은혜에 대한 「보상」이 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주님과 나 사이에서의 「거래(去來)」만으로 끝나버린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에서 이 연보(捐補) 즉 「주는연습」의 의미에 대해서 아주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첫째로, 우리가 주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연보(捐補)하여 필요한 곳에 도우면, 받은 이들은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된다. 즉 감사가 30배, 60배, 100배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이러한 감사의 연보로 「지극히 작은」이들을 섬기게 될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셋째로, 우리가 연보로 사람들을 돕게 될 때 저들은 「우리를 위하여」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연보」의 깊은 뜻이요, 거기에 들어있는 사랑의 비전(秘傳)이며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전략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카이로스의 시간은 이미 임박하여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는데 주께서 예비하신 고성능의 무기가 제사시대로 되돌아가서 녹이 슬고 있는 것이다. 틀린 줄 알았으면 빨리 고쳐야 한다. 나는 신앙간증을 요청해오는 교회들을 방문하는 일이 자주 있는데 아직 「연보」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는 것을 알고 매우 감격한 적이 있었다. 「십일조연보」, 「감사연보」, 「수재민 돕기 연보」, 「소년가장 돕기 연보」···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중에서> |
'성경역사 > 성경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목 : 불법을 행하는 자들 (0) | 2008.05.07 |
---|---|
제목 : 눈을 들어 밭을 보라 (0) | 2008.05.07 |
제목 : 양을 잡는 사람들 (0) | 2008.05.07 |
제목 : 갈릴리로 가라 (0) | 2008.05.07 |
제목 : 예수와 로마제국 (0) | 2008.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