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갈릴리로 가라

은바리라이프 2008. 5. 7. 13:46
제목 : 갈릴리로 가라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2-01-03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
과연 이 시대는 떡으로만 살지 못하고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우리 주위에는 평신도들의 성경공부 모임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시대는 급하게 되었다. 성경에서 말씀한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는 시대이다.
그런 이 시대에 등은 준비했어도 기름이 부족하다면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등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다섯 처녀들은 신랑으로부터 무서운 선고를 받았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2)
우리는 여기서 더 근본적인 한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등에 기름은 왜 준비하는 것인가? 그것은 곧 등불을 켜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다. 신랑이 언제 오시는지 알 수 있다면 그 등불을 꺼놓고서 기다릴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언제 오실는지 모르기 때문에 등불을 켜놓고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 12:35)
그런데도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다섯 처녀의 등불은 「꺼져가고」있었던 것이다(마 25:8)
등에 불을 켠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성경대로 사는것」이다
「성경대로…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하다가 벧엘의 광야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었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너 누은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 28:13∼14)
그러나 야곱은 하란땅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일하여 얻은 네명의 아내와 열한 아들과 수많은 재산을 이끌고 돌아오다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세겜이란 성 근처에 「자기를 위하여」(창 33:17) 집을 지었다.
그러자 세겜땅에 살고 있던 야곱의 집에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성 추장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였고 야곱의 아들들은 추장의 아들에게 디나를 시집보내겠다고 속여서 성안 사람들로 할례를 받게 한 다음 그들을 습격하여 참살하였다. 그러나 아들들의 폭행은 복수에서 그치지 않고 성 안의 가축들과 재산들과 부녀자들을 약탈하여 강도의 행위를 함으로써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하였던 것이다(창 34:30)
마침내 야곱은 그의 집 모든 사람들이 내어놓은 이방신상과 귀고리들을 땅에 묻어버리고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제서야 야곱에게 깨어질 뻔했던 계약을 다시 확인해 주셨으나 야곱은 네명의 아내 중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였던 라헬을 도중에 잃어버리고서야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다시 우리 믿음의 주변을 한번 더 살펴볼 때가 되었다.
한국의 교회들은 기적적으로 성장했고 그 기록은 온 세계가 놀랄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교회에서는 「냄세」가 나기 시작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부동산 투기에 나서고 교회의 돈이 어음할인에 동원되며 국세청이 엄포를 놓으면 교회가 제일 먼저 겁을 먹게 되었다. 또 한족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멱살을 잡고 서로 싸우며 「화목케 하는 직책」(고후 5:18)을 받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폭력혁명을 선동하기도 하고 젊은이들에게 분신 자살을 조장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그리스도인의 딸들은 디스코테크에서 인신매매범에 끌려가고, 화염병을 던지며 사람을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기름불로 태워 죽이는가 하면 신학교 학생들이 교수를 잡아 그 머리털을 깎고 돼지머리에 절을 하기도 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세운 대학에 장승이 서기에 이르렀다.
이 냄새는 모두 어찌된 것인가? 어디서부터 우리가 잘못되었는가? 신랑께서 오실 날이 임박했는데 등불과 기름은커녕 우리는 이렇게 온 집안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놓고 신랑을 맞으려 하는가?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셨을까? 갈릴리, 그 갈릴리에서 예수와 제자들의 만남은 아름다웠다.
그러던 것이,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침내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셨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였다.
『갈릴리로 가라』
우리에게서 냄새가 나고 우리가 잘못된 것을 알았으면 이제 우리도 어느 틈엔가 우리들 사이에 끼어들었던 모든 이방신상과 귀고리들을 땅에다가 묻어버리고 갈릴리로 돌아가자. 우리가 그분과 만났던 동산에 올라가서 그분과 다시 만나고 거기서 다정하게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면 어쩌면 아주 쉽게 우리가 잃어버렸던 사랑의 불씨들을 찾아내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의 등에 꺼져가는 불을 다시 밝힐 수 있게 될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자료출처 :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신앙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