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로마교회의 뿌리 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1-12-17 |
성경에도 이 당시 로마 정부와 아그립바 사이에 있었던 신경전의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아그립바는 자신의 친구이며 후원자였던 칼리굴라가 암살되자 스스로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의식하고 모든 유대인들을 결속시켜 자신에 대한 지지를 굳게 하려고 하였다. 그가 유대인들이 미워하면 나사렛당의 박해를 시작하여 요한의 형 야고보를 처형하고 베드로를 체포했던 것도 모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위해서였던 것이다. 베드로가 탈옥한 이후 신경이 날카로워진 아그립바는 직접 가이사랴로 가서 로마가 파견한 주둔군의 목전에서 자신의 통치능력과 백성들의 지지를 과시하려 했다. 그는 두로와 시돈 지방의 지도자들이 식량원조의 문제 때문에 자신에게 화친을 요청해온 것을 기회로 대규모의 군중집회를 열어 자신에 대한 백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과시했던 것이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아그립바는 AD 44년 가이사랴의 군중집회가 열린 노천극장에 은으로 만든 옷을 입고 나타났다. 장내의 군중들은 그를 신(神)이라 부르며 환호했는데 관중의 열광과 찬사에 도취해 있던 왕은 갑자기 위에 통증을 느꼈다. 그로부터 5일 후에 그는 숨을 거두었다. 어쨌든 아그립바가 죽었으므로 가이사랴에 진주했던 이달리야대는 더이상 거기 머무를 필요가 없어 로마로 귀환했을 것이다. 성경은 그가 베드로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의 집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구원의 도리를 전한 것으로 보아 그는 아직 예수에 관해서 모르고 있었으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여 늘 기도하며 구제에 힘쓰고 있었다. (···로마의 청년 장교 코르넬리우스는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청년 장교 코르넬리우스는 이미 로마에서부터 유대인의 하나님을 믿었을 것이고 그것은 저 광란의 황제 칼리굴라 시대였을것이다. 아마도 그는 다른 장교들이 칼리굴라의 암살을 모의하고 있을때 이 세상 권세에 환멸을 느끼며 로마의 거리를 걷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과연 로마는 세계를 지배할 자격과 이상을 가지고 있는가?" 아마도 그것은 그가 세상권세의 수도이며 정치와 무역의 중심지인 로마의 한 복판에서 정의와 진실의 부재를 목격하며 방황하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인가? 그리고 신이 인간을 다스린다면 신은 또 무엇인가?" 고뇌에 잠겨 로마의 거리를 걷고 있던 코르넬리우스는 곳곳에 서 있는 수많은 신상(神像)들을 보았을 것이다. 이상적 공화정치를 표방하던 로마는 시민들과 각 속주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거리는 신들이며 아시아의 아르테미스, 에집트의 이시스신 등 온갖 신들이 모여드는 곳이 로마였다. 그 수많은 신상들에게 조차 더욱 회의와 환멸을 느끼던 그는 문득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난 것은 그에게 경이로운 발견이었다. 그는 거기서 모세의 오경과 선지자들이 기록한 예언의 말씀들을 들었을 것이다. 거기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로운 하늘과 땅이 있었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가르침이 있었고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있었다. 유대인쪽에서 볼때 이방인인 코르넬리우스는 점점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그 가르침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곧 군인다운 실천력으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다가 유대의 가이샤라지방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가이사랴에 이르렀을 때 그를 마중하는 코르넬리우스의 감격은 우리까지도 감동하게 한다.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행 10:24~26).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 이렇게 하여 코르텔리우스와 그의 가족들은 친구들은 베드로의 강론을 듣게 되었고 마침내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이 온 집안에 가득하게 되었으며 성령받은 모든 사람들이 세례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행 10:34~48). 그후 코르넬리우스는 이달리야대의 철수와 함께 로마로 돌아가서 열정적이고도 헌신적인 전도활동을 시작하였다. 로마교회는 엘리트 장교인 코르넬리우스의 영향을 받아 군대식의 강력한 조직으로 사회 각층에 파고 들었으며 폭넓은 구제활동과 사회봉사도 역시 그의 실천적인 믿음을 본받은 것이었다. 또한 로마교회는 그에게 세례를 주었던 베드로의 영향을 가장 강력하게 받았던 것이다. AD 37~41 : 칼라굴라 황제의 광란적 통치, 청년 장교 코르넬리스, 유대인 회당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다. AD 41 : 칼라굴라 피살, 클라우디우스 황제 즉위, 로마 정부, 이달리야대를 유대의 가이사랴에 파견 AD 43 : 코르넬리우스, 베드로에게서 세레받음 AD 44 : 베드로 체포, 탈옥, 헤롯 아그립바 1세 사망, 이달리야대 철수, 코르넬리우스 로마에 귀환, 로마교회 개척 AD 49 : 클라우디우스 황제, 유대인 추방령, 아굴라 부부 고린도에 AD 50 : 바울, 예루살렘 총회 끝나고 제 2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아굴라 부부를 만남,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 잔류. AD 54 : 클라우디우스 사망, 네로황제 즉위, 추방령 해제, 아굴라 부부등 유대인들 로마에 귀환. AD 56 : 바울, 3차 전도여행 중 로마서를 집필하여 뵈뵈 편에 전달. 예루살렘에 갔다가 거시서 체포됨. AD 58 : 바울, 로마로 압송됨. AD 59 : 바울, 로마에 도착. AD 62 : 베드로, 로마에 도착. AD 64 : 로마의 대화재 사건. 바울과 베드로 순교 코르넬리우스는 끝내 교회사의 표면에 그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교회사 속의 두 가지 기적을 말할 때 로마교회의 자생(自生)과 한국교회의 자생을 말한다. 그래서 2천년 전, 로마교회를 칭찬하며 또 충고했던 바울의 권면은 오늘의 한국교회에 주는 충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 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4~17). 그들은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 데 처하라고 충고한 바울의 가르침과 끝내 교회사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은 코르넬리우스의 전통을 포기하고 권력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되어가던 하나님의 나라를 암흑 속으로 끌어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세상권력과 야합하는 교회, 또는 그 권력을 탈취하겠다고 투쟁하는 교회들은 모두 다 심각하게 로마교회의 실패를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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